직업의 선택에 있어서 부모님의 영향도 꽤 크다. 공무원이셨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어릴적 부터 많이 들었다. 공무원을 하면 안정적이고, 정년도 보장되고, 큰 돈은 못벌어도 먹고사는데 지장도 없다...등등. 실제로 어머니는 정년까지 공무원을 하시고 지금은 연금을 받으시며 멋진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신다.
중고등학교 때는 꿈이 없었다. 뭐가 딱히 되고 싶은것도 없었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물론 이것저것 다해보고 싶었다. 겉에서 보기에 멋진 직업들, 예를 들면 외교관, 의사, 선생님 등등,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지 그것들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지도 않았다. 의사가 되고 싶었으면 이과를 가야했는데, 난 문과를 갔다. 외교관이 되고 싶었으면 영어공부에 더 매진했어야 하는데 난 아직도 영어에 콤플렉스가 있다.
대학 지원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선생님이 되려고 국어교육과를 지원했다. 국어에 엄청난 흥미가 있었다기 보다는 다른 과목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읽고 쓸줄만 알면 국어 전공을 해도 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써보니 어린 나는 참 생각이 짧았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국어교육과에 떨어졌다. 서울로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결국 다 떨어지고, 안정권으로 지원한 지방에 위치한 학교에 합격했다. 선택권은 그곳에 가거나 재수를 하거나. 재수를 하기 싫어서 진학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정말 아무 생각없이 흘러갔다. 물론 그 안에서 열심히 했다. 토익공부도 열심히 했고, 학업도 열심히 했다. 뭔가 목적은 없었고, 성실히 공부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열심히 했다. 놀기도 많이 놀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군대를 갔다.
일반병사로는 가기 싫었다. 조금은 편하게 군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다가 '의무소방'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무소방은 현역대체복무로 의무경찰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의무경찰은 경찰서에서 경찰업무 보조를 하는 역할을 한다면, 의무소방은 소방서에서 소방업무 보조를 한다. 군이라는 고립된 곳에서 생활하는 것 보다는 도심에 있는 소방서에서 근무를 하는게 훨씬 좋을 것 같았다. 체력검정, 필기시험, 면접을 통해 의무소방에 선발 되었다.
2년2개월간 소방공무원들과 동거동락했다. 의무소방으로 일하며 여러가지를 경험했다. 화재, 구급, 구조, 말년에는 1호차 운전까지 했다. 남의차로 긁어가며 운전배웠다고 부모님은 아주 좋아하셨다. 소방서에서 공무원들의 삶을 접했다. 물론 소방공무원은 일반 공무원에 비해서는 조금 특수했다. 내가 복무할 당시 2교대 근무를 했기 때문에 삶이 안정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업무를 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쳤다. 실적이나 영업의 압박이 없어서 그렇기 때문이지 않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공무원으로 사는게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되었다. 난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물론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난 더더욱 싫어한다. 그래서 도전도 사실 잘 안한다. 그래서 긴 수험기간을 필요로 하는 공무원 시험에 선뜻 도전하지 못했다. 아니 도전하기 싫었다. 긴 수험의 끝에 합격이 기다릴지 불합격이 기다릴지 매우 불확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전역이 다가올 수록 서서히 고민이 되었다. '난 뭐하고 살아야 하지?' 직업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때 "지역인재 추천전형"을 알게 되었다. 학교 성적, 영어점수 등을 고려해서 학교에 배당된 인원만큼을 총장이 추천하고, 추천 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봐 선발되면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있는 제도였다.
그래! 저거다!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어차피 취업을 하려면 학점 관리는 해야하고, 영어점수도 필요하니 별도의 시간과 재정이 필요 없이 병행하며 준비할 수 있는 공무원 입직 루트였다.
난 2년 2개월을 복무했기 때문에 전역하고 복학하기 까지 4개월의 시간 공백이 있었다. 그 때 집중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고 토익점수를 먼저 만들었다. 지역인재 추천전형을 목표로 학교 생활과 병행하는 공무원 준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