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를 치르고 와서는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 한곳의 결과만을 마냥 기다리고 있기에는 4학년이라는 압박감이 너무 컸다. 사람인, 취업뽀개기 등 구직 사이트에 인턴, 신입직원 모집 공고가 올라오는 족족 지원서를 썼다. 100군데는 넘게 지원을 한 것 같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귀하의 자질은 매우 우수하오나...'로 시작하는 정중한 거절이었다.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가서도 구직은 계속됐다. 특히 상반기 공채시즌이 시작하면서 대기업들도 신입사원 모집을 시작했다.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에도 당당히 지원서를 냈다. 하지만 내 자질이 정말 부족해서였을까?지방대의 핸디캡이었을까? 서류에서 대부분 탈락했다. 삼성만 지금은 GSAT으로 이름이 바뀐 SSAT시험을 치를 기회를 줬다.
SSAT시험을 치르는 날, 학교에서 대절해준 버스를 타고 대구에 가서 시험을 봤다. 문득 수능날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도 시골에 있어서 수능을 보려면 근처 도시로 버스를 타고 나가야했다. 각 반별로 한대씩 버스를 타고 학교를 빠져나가고 있노라면, 후배들이 교문 주위에 길게 줄을 서서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을 해줬다.
SSAT는 전국적으로 치러졌다. 마치 수능같았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취업 준비생들이 같은 날 같은 문제를 대한다. 문제는 사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 수준을 벗어나지 않는다. 삼성에 더 적합한 사람을 골라내고자 하는 시험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어떤기준으로 사람을 뽑는지는 삼성내부인밖에 모른다.
내가 삼성이랑 잘 맞는 사람이었을까? 운좋게 SSAT에 합격을 했다. 난 삼성형 인간인가? 라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다. 이맘때쯤 어느덧 먼 기억으로 사라져 있던 공무원 시험 필기합격자 발표가 났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내 수험번호를 찾는데, 눈에 딱 들어오는 익숙한 번호.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전해드릴 때 철철 울면서 전화를 했다. 단지 필기 합격을 했을 뿐인데 마치 공무원이 된듯...
부랴부랴 면접준비를 시작했다. 삼성과 공무원 면접을 동시에 준비했다. 삼성면접이 먼저였고, 몇주 후 공무원면접이었다. 주제가 조금 다를 뿐 유사한 형식이었기에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사실 공무원 면접은 스터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선 지역적인 제한이 가장 컸다. 그나마 가까운 곳인 대구에서 구성되는 스터디에 문의를 했었는데, 동일한 직렬이 있다는 이유로 스터디에 들어가지 못했다. 결국 기출 주제를 바탕으로 혼자 준비했다. 혼자 준비하다보니 한계가 있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공무원 면접장에 도착했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도형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저게 왜 필요한지, 왜 다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 기술서를 쓸 때 도형을 예쁘게 그려서 내면 도움이 된다고 면접학원에서 코칭을 해줬다는 것이었다. 난 그냥 줄글로 줄줄 써내려가기만 했는데...
( 합격자 60명 중에서 나를 포함한 다른 한명 동기만 빼고는 모두 면접학원&스터디 출신이었다. 내가 얼마나 아무 정보 없이 준비를 했었던 것인지 명확하게 드러났다.)
감사하게도 삼성과 공무원에 모두 합격을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큰 고민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남들이 보면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겠지만, 나름대로는 정말 고민을 많이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월급이었다. 삼성이 공무원보다 두배정도 많았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인지도도 삼성이라는 대기업이 훨씬 더 멋있어 보였다. 물론 공무원이 주는 안정감과 연금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많은 고민끝에 결국 공무원을 선택했다.
지금 돌이켜봐도 그 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공무원 사회에서 특히 중앙정부부처에서는 비주류의 삶을 살아야 한다. 삼성으로 갔으면, 정규직 공채이기 때문에 주류 멤버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었겠지...그래도 공무원으로 왔기에 지금의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위안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