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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래파파 Aug 28. 2019

우리의 역사, 고구려


  백두산 등반 일정을 마치고, 다시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동하였다. 북한과 중국의 교류 현장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도시는 단동이었다. 그곳에서 북한의 현실을 다시한번 눈으로 보기로 하였다.


 단동으로 이동하던 중, 고구려 유적지가 많이 남아있는 집안 지역을 들렀다. 고구려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기를 자랑했기도 했고,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나라였다. 역사를 배우며 신라가 통일을 하지 않고, 고구려가 통일을 했으면 지금 우리 나라의 땅이 압록강 너머 만주 지역까지 차지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봤던 곳이다.




 고구려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흔적을 찾았다. 장수왕이 묻혀있다고 알려진 장수왕릉과 광개토대왕비가 남아있었다. 특히 광개토대왕비는 김진명 작가의 소설 '몽유도원'에서도 다뤄진 소재로서 일제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했던 유적이기도 하다. 


 

유적만 찍은 사진이 없고, 꼭 저런 표정과 저 포즈로 함께 사진을 찍었네요...


 광개토대왕비는 유리벽에 둘러쌓여 보존되고 있었다. 실내도 들어가 볼수는 있었지만, 촬영은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문제가 되었던 지워진 문구를 두눈으로 확인해 볼 수도 있었다. 우리의 유적이, 중국땅에서 중국정부에 의해 보존 혹은 훼손 되고 있는 것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장수왕릉입니다. 얼핏 보면 정말 돌 무더기를 쌓아놓은 것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그 오랜 세월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정교하게 쌓았습니다.

 고구려 유적을 보면서 우리의 것이지만 우리가 잘 지키지 못하면 결국 남의 나라에 의해서 우리의 것도 좌지우지 된다는 것을 생각했다. 분명 고구려 유적은 우리의 역사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땅을 지키지 못했고, 지금은 중국땅에 와야만 고구려 유적을 확인하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사람들은 마치 이것들이 자기것인양 행세를 하고 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되어있다.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신라, 백제의 문화유적으로 인해 신라, 백제에 대해서는 관심도 있고 친밀하다. 하지만 고구려는 국사시간에만 배웠지 고구려의 역사를 눈으로 본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유적이 북한과 중국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에서도 조금 멀어져 있었다.




 캠프가 막바지로 향해가면서 북한에 대한 실상을 확인하는 면도 있었지만, 잊었던 고구려의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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