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서 일하는 직원의 연락을 받고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곳이면 조금은 더 편하게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곳이던 힘들기는 마찬가지이지만 그 당시에는 절박했기에 통일부를 특히 하나원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쪽지가 몇차례 오고 가고, 전화통화를 하면서 방통대의 장단점에 대해서 들었다.
국립대의 장점은 역시 부담없는 업무였다. 시급성을 필요로 하는 일도, 큰 정책을 결정하는 일도 없었다. 물론 직접 와서 일을 해보니 또 그 안에서 큰 일도 있었고, 급한 일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비교일 뿐이었다. 또한 방통대 본부는 서울에 있었다. 16개 시도에 지역대학이 있었지만, 크게 희망하지 않으면 본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단점은 역시 느린 승진이었다. 아무래도 소속기관이고, 규모가 작은 곳이다보니 승진이 느렸다. 통일부는 승진이 꽤 빠른 곳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포기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어야 했다. 승진은 먼 일이었고, 민원과 업무는 당장 눈앞에 있었기 때문에 멀리 있는 것을 포기 했다. 교류를 하기로 결정했다.
당사자 두명간에 의사가 합치되었다고 해서 교류가 당장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각자 상대방의 부처에 가서 면접을 봐야 한다. 딱히 절차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처입장에서도 한명을 보내고 다른 한명을 받는데 누가 오는지, 어떠한 사람인지 보는 것은 당연했다.
혜화에 위치한 방통대 본부에 가서 면접을 봤다. 인사과장, 인사팀장님 등 몇분이 자리에 앉아계셨다. 몇가지 의례적인 질문과 왜 이곳에 오고 싶은지를 물어봤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서로가 답은 알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말하지 않고 온갖 좋은 말로 그 답을 감추기에 급급했다. 내가 어떠한 큰 꿈이 있어서 방통대에 오는게 아니었다. 단지 힘든 현실에서 벗어날 새로운 곳이 필요했다. 나도 알고 있고, 면접을 보는 분들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한국 교육에 대한 큰 꿈을 피력했고, 그분들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상대방도 통일부에 와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상대방 또한 방통대 일이 힘들고 안맞아서 옮길 다른 곳이 필요했고, 통일부 면접 위원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 또한 통일의 거대 담론을 논했을 것이며 면접관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을 것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면접이 끝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부처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발령이 났다. 문서 한장으로 공무원의 거취는 결정된다. 나는 한순간 통일부 직원에서 방통대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곳으로 출근해야만 했다.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곳에서의 도전과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