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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래파파 Oct 15. 2019

직장에서의 나와 퇴근후의 나

 한국방송통신대에서 근무하면 개인 시간이 많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일이 많았다. 매일매일 주어지는 일의 양이 결코 적지는 않았다. 정확한 정보가 없이 그저 바꾸는 사람 이야기만 듣고 교류를 했던 것이 가장 큰 실수 였다. 물론 좋은 점도 있었다. 하나원에서 겪은 시도때도 없는 전화민원에서는 잠시 해방되었다. 업무에 따라 전화 민원을 끊임 없이 받는 곳도 물론 있다.



 직장인은 늘 고민한다. 하루의 시간을 보내며 시간을 내가 어떻게 사용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회사에서의 시간도 월급루팡을 하며 나를 위해 쓰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티안나게 조금씩하는 것은 그래도 용인이 되지만, 매일매일 직장에서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만은 없다.



 방통대에서 일하면서 좋았던 점은 퇴근 이후의 삶이 보장된 다는 것이었다. 야근도 많지 않았고, 대기나 불필요한 출근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퇴근 이후에 나를 찾기로 결심했다. 어차피 직장에서 나를 찾기는 글렀으니, 퇴근 이후의 시간을 잘 써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여유있는 직장이기에 퇴근 이후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쓰면 되겠다는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공부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였다. 하지만 퇴근 이후에만 내 모습을 찾는다는 것에 조금은 서글퍼졌다. 그렇다면 9시부터 6시까지 직장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 오히려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에서의 모습이 내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퇴근 후 3시간 정도만 내가 되는 것이면 나머지 하루 7/8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직장에서도 나였고, 퇴근 이후에도 나였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는 시기였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라는 마음은 확실했다.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면 하루 대부분의 나는 부인당하는 것이었다. 그 때부터였을까? 퇴직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공무원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다른 일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랐다.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고 해도 나를 받아줄 마음 넓은 직장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4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모르게 나도 공무원이 되어갔다. 변화가 필요했지만, 송두리째 삶이 변하는 변화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결국 1년만에 방통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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