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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Jan 11. 2020

전염병 괴담 키우는 중국의 비밀주의

우한 폐렴을 보는 불안한 시선

중국 후베이성 우한(湖北省武汉, 호북성 무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제2의 사스 사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제(春节, 춘절) 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이 고향을 찾거나 여행을 떠나면서,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도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한은 “이미 통제 불능의 상황"이며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감염 규모는 최종적으로 사스보다 10배 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사실 이 불안감의 밑바닥에는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간 전염병 발생 때마다 정보 차단 속에 사태를 덮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2000년대 초 ‘사스 사태’가 대표적인데요. 광동성에서 최초로 발견된 것을 쉬쉬하는 바람에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아시아 전역이 위험에 빠진 바 있습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는 관련 정보가 이전보다 신속하게 공개되고 지역 폐쇄라는 강력한 조치까지 취해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물론, 군, 민간기업까지 힘을 보태며 총력 대응을 하는 모습입니다. 조금 더 빨리 이같은 조치가 취해졌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뎅기열, 흑사병 등 최근 일 년 사이 발생한 치명적인 감염병 대응에서 중국의 비밀주의는 여전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동남아에 뎅기열이 대유행하면서 천 명 넘는 사망자가 나왔는데요. 미얀마, 라오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중국 윈난성 남부 시솽반나(西双版纳)에도 뎅기열 감염자가 발생했습니다. 모기를 토해 감염되는 뎅기열은 치료법이나 백신이 없는 감염병입니다.


10월말 운남 북부 리장(丽江)에 머물던 저는 우연히 이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여행 계획을 듣던 현지인 친구가 시솽반나에 뎅기열이 심하다며 방문을 만류하고 나선 것이죠. 친구도 SNS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곳에 놀러가려한다는 게시물을 올렸더니 인근 지역에 거주하는 지인들이 상황이 심각하다고 댓글을 단 것입니다. 길거리에 사람이 없다, 병원에 환자가 넘쳐나고 있다, 이미 감염자가 수만 명이고 사망자도 수백이라고 한다, 멍하이(勐海) 지역은 출입이 차단되었다 등 무시무시한 얘기들이 SNS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가만 가만, 멍하이 인구가 33만인데 감염자가 수만 명이라고?’ 뭔가 이상합니다. 아무래도 팩트 체크가 필요해보였습니다. 우선 한국 포털에서 관련 기사를 검색해보았는데요. 뎅기열이 발생했다는 보도는 있었지만 후속 기사는 전혀 없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해외감염병NOW’, 외교부 홈페이지에도 정보가 없습니다. 당연히 해외여행 시 외교부에서 보내주는 해외 감염병 안내 문자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지요. ‘한국에서 너무 먼 지역이라 그런가?’ 중국 검색엔진을 뒤졌습니다. 역시나 거의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역 정부 홈페이지에는 방역활동과 예방법 홍보 내용뿐이었습니다. 감염병 발생 정보가 제대로 공개 및 전파되지 않으면서, 진위를 확인할 길 없는 괴담들만 인터넷으로 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쯤 되면 각자도생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중국인 친구가 왜 그렇게 SNS 소식을 맹신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공개 정보는 없고 카더라 통신은 횡횡하니, 믿을  있는 지인을 통해 얻은 정보가 가장 중요해집니다. 모바일 시대에도 역시 ‘꽌시(인맥) ’가 중요한 중국입니다. 저도 운 좋게 꽌시로 현지 소식통을 확보했습니다. 쑤저우에서 다실을 운영하는 친구가 멍하이에서 차 도매를 하는 복 사장을 소개해주었습니다. 복 사장은 자신도 상황 판단을 할 정보가 없어서 근처 병원 의사 친구에게 전화를 해보았다고 합니다. 의사는 “자세한 얘긴 할 수 없지만, 상황이 좀 심각하니 외출을 삼가라.”고 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겁이 난 복 사장은 곧장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모기장, 모기향, 모기퇴치제, 전자파리채까지 4종 세트를 구비했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위험 지역에서 배달을 해야하는 택배기사를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저처럼 꽌시를 트지 못한 중국인 중에는 인터넷 게시판에 질문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우리나라 네이버 지식인 같은 곳 말입니다. “거기 뎅기열이 심각한가요? 아이를 데리고 여행갈 계획인데, 괜찮을까요?” 금방 댓글이 주르륵 달렸습니다. “심각해서 방역을 할 수가 없어요. 우리 삼촌댁에서 3명이 모기에 물려 뎅기열이 걸렸고, 작은 삼촌도 감염됐어요. 병원에 사람이 꽉 찼고, 링겔 맞으려는 줄이 어마어마해요. 입원하려면 멍하이로 가야해요.” 이렇게 상세히 알려주는 사람도 있지만, 욕부터 퍼붓는 사람도 있습니다. “상황이 이런데 애를 데리고 놀러온다니, 미친 거 아니야?”     


한 달 후쯤 시솽반나에 갈 계획이던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작정 갔더라면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었을 터. 내 목숨은 차치하고 ‘모국에 감염병을 퍼트린 숙주는 되지 말아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메르스 사태가 남긴 트라우마 같은 것입니다. 다행이 11월말쯤 되니 현지 상황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기온이 낮아지면서 모기도 줄었다고요. 12월 초 방문을 무사히 마치고 푸얼로 넘어가는 차에서 젊은 기사가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달 만에 일하러 나왔네요. 그동안 일이 없어서 고향집에 가 있었어요. 이상하게 사람이 없더라고요. 경기가 안 좋아 그런가 여행객도 엄청 줄었고요.” 그 얘길 듣던 승객 세 명은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외쳤습니다. “뎅기열 때문이죠!” 위험한 감염병 정보를 현지인이  모르는 웃지 못할 현실입니다.

    

뎅기열이 수그러든 11월, 네이멍구(内蒙古, 내몽골)에서 북경으로 온 환자 2명이 흑사병 확진을 받으며 시민들이 다시 한 번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보건 당국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여론을 안심시켰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흑사병도 무섭지만 더 무서운 건 정보가 공개되지 않는 것”이라는 어느 누리꾼의 말이 공감을 샀습니다. 이 무렵 상하이에서는 한·중·일 감염병 예방관리 포럼이 개최되고 있었는데요. 매년 3국 보건 당국이 감염병 유행 대비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로, 13회째를 맞이하는 행사였습니다. 그간의 교류로 협력에 진전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11월의 대조적 두 장면은 진정한 공조를 이뤄내기까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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