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커피 열매, 제가 한번 먹어 보겠습니다

푸얼 유기농 커피 농장 탐방기

by Alice

모닝콜을 요청한 적도 없는데, 아침부터 3단 콤보 알람이 울렸다.

“꼬꼬댁! 꼭꼬꼬! 꼬꼭!”

수탉 울음소리가 여행객의 단잠을 깨운다. 농장에서 풀어 키우는 닭들이 요란하게 울어대는 통에 강제 기상을 했다. 커튼을 젖히니 앞마당 수영장을 둘러싼 파과 나무 뒤로 안개가 가득했다. 두꺼운 후드티를 걸치고 아침 산책에 나섰다. 목적지는 우림 커피 농장. 온통 운무로 뒤덮인 산. 마른 길인데, 길가의 식물은 모두 젖었다.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진 것처럼 나뭇잎도 풀잎도 물을 머금고 축 처졌다. 숲에서는 후드득후드득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한참을 걷고 있는데 ‘또각또각’ 뒤에서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아침부터 인적 드문 우림에?’

한적한 길에서는 사람을 만나도 무섭고 사람이 없어도 무서운 법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또각또각’ 소리는 등 뒤로 조금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다시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지나가려면 빨리 가던가. 뭐 하는 거야?!’

순간 부아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뒤를 휙 돌아보았다. 형형하게 빛나는 커다랗고 검은 눈. 상대와 눈이 마주쳤다. 낯선 산책자를 따라오던 호기심 많은 당나귀 한 마리가 갑작스레 돌아본 나 때문에 흠칫 놀라 멈춰서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인적 드문 시골마을에선 이렇게 동물들마저도 순박하다. 그 후로도 발굽소리는 한참 동안 계속됐다. 혼자가 아니어서 스릴 넘치고 푸근한 산책이었다.


걷다 보니 우사가 눈에 들어왔다. 일찍부터 밖에 나온 소 한 마리도 낯선 사람을 보고 얼음이 됐다. “이렇게 일찍, 누, 누구세요?”하는 표정이다. 남의 집 방문도 시간을 봐가며 해야 하는 법. 소의 아침 명상을 방해하지 말아야겠다 싶어 발걸음을 돌렸다. 운무가 걷히고 나면 다시 커피나무를 보러 가기로 했다.


가만 보니 아침에 뒤따라온 당나귀는 어제 산책 때 마주친 녀석 같은데요? 종을 넘어서는 이 놈의 인기는 우림에서도 계속됩니다.


열대우림에서 커피 열매 찾기


햇볕에 수증기가 증발하면서 마을과 숲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10시쯤이면 해가 쨍쨍하고 가시거리가 모두 확보된다. 스쿠터를 타고 아침 산책길을 다시 달렸다. 10분쯤 지났을까? 직원이 “커피나무 보이죠?”라고 물었다. 두리번거려 봐도 뭐가 커피나무인지 도통 모르겠다. 스쿠터에서 내려 가까이 가보니 그제야 짙푸른 잎 사이로 빨간 열매가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생태를 파괴하지 않고 기존 수목 사이에 커피나무를 심어서 언뜻 봐서는 커피농장인 줄 알아차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숲을 모두 밀어버리고 커피나무를 줄지어 심은 일반적 커피농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아이니 가든 전체 면적 3만6천무 중 6천무(약 120만평)가 이런 우림 커피농장이다.


멀리서는 커피 농장인지 알아차리기 힘든 우림 커피원. 자세히 보니 커피 열매가 빨갛게 달린 나무가 즐비합니다.


커피 재배에는 일조량이 중요하다. 부족해도 문제지만 넘쳐도 나무가 고사한다. 일조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더 많은 열매를 맺는다. 커피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려면 더 많은 물과 영양도 필요하다. 공급이 부족하면 잎이 누렇게 황백화하며 고사한다. 합성비료가 개발된 후부터는 뙤약볕 아래에서도 얼마든지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수확량을 늘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니 가든 같은 유기농 농장에서는 여전히 일조량 조절을 위해 나무 그늘이 중요하다. 우림에서 자라는 커피나무는 하루 일조량이 적다 보니 커피 열매 성숙기도 늦다. 일반적으로 커피 열매는 8~9월에 성숙하는데, 이곳에서는 11월 이후에나 성숙한다. 수확기는 11월부터 이듬해 2~4월까지다.


이곳은 원래 국영 농장이었다. 적자가 심해 민간에 매각했고, 이 지역 출신으로 커피 무역을 하던 사업가 류밍후이(刘明辉)가 인수해 10여 년간 개간을 했다. 2~3년 차 되던 해 미국에서 유기농 커피 시장의 가능성을 발견한 그는 아이니 가든을 유기농 커피농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소의 분뇨와 커피 껍질을 발효시킨 유기비료를 사용해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상업형 커피농장에 비해 수확량이 10분의 1도 안 되지만, 자연의 순환을 통한 친환경 농업을 이어가겠다는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사업 분야를 확장하게 된 사연이다. 유기비료 충당을 위해 소를 키우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소가 너무 많아져서 소고기 식당까지 열게 되었다고 한다. 친환경 자연 방목 고품질 소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다니 손님도 인산인해. 이미 직영점이 30개에 달하고, 2019년 12월엔 쿤밍에 1호 가맹점도 문을 열었다.


푸얼시 쓰마오 중심가 아이니 뉴러우(爱伲牛肉)에서 1인용 훠궈 시식. 유기농 자연 방목 소고기를 무한리필이라니, 대륙의 스케일!


12월 초, 우림 커피원에서는 커피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통통하게 익은 열매를 카메라로 찍고 있으니 직원이 직접 먹어보라고 권했다. “유기농이라 그냥 먹어도 괜찮아요.” 잘 익은 것을 하나 따서 입에 넣었다. 막연하게 시큼한 맛이 나지 않을까 상상했는데, 사각사각 상큼한 것이 체리 같다. 쓴 커피콩을 감싼 과육이 이렇게 달콤하다니! 커피 중독자 이십 평생 중 처음 알게 된 놀라운 발견이다. 열매를 오물오물하다 보니 딱딱한 씨가 두 개 씹혀 손에 뱉었다. 신기하기도 해라. 우리가 자주 보던 그 생두 모양이다!



커피 열매 따기는 고된 노동이다. 가지마다 달린 손톱만 한 열매 중에 빨갛게 잘 익은 것들만 골라서 일일이 손으로 따야 한다. 어떤 가지는 높고 어떤 것은 너무 낳게 달려있어서 쪼그려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해야 한다. 며칠만 시기를 놓치면 갈색으로 말라서 못쓰게 되기 때문에 익은 열매를 제 때 수확하는 게 중요하다. 밭에서 만난 커피농 부부는 날이 밝는 대로 농장에 나와서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다고 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수확하는 양이라고 해야 드럼통으로 몇 통 되지 않는다. 나처럼 손이 느린 사람은 하루 종일 양동이 하나 채우기도 힘들다. 직접 열매를 따보라는 말에 일손을 도와볼까 하고 나섰다가 민폐만 끼치고 말았다.


커피 열매 수확하는 커피농 부부

가공장에 간 커피무식자


다음날 아침 8시 반쯤 도착한 커피 가공장에선 이미 커피 열매를 씻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산 경사면 가장 위쪽에 자리 잡은 대형 수조에서 전날 수확한 커피 열매가 헤엄치고 있었다. 수조와 연결된 수로를 따라 열매가 흘러가면서, 여러 단계를 거쳐 과육이 벗겨지고 세척된다. 커피전문점 벽에 걸린 사진에서나 보았던 장면을 직관하니, 놀이공원에 처음 간 날처럼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커피 가공장 구경 중에도 직업병은 예고 없이 발병했다. 탱크 아래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하얀색 거품이 레이더에 포착된 것이다. 화학약품을 쓰는 건가? 유기농 커피라면서 가공 과정에서 설마 세제를 사용하는 거야? 의심의 눈초리로 함께 온 호텔 직원에게 물었다.

“저건 무슨 거품이죠? 세제를 사용하나요?”

커피 문외한인 그녀가 당황하며 사태 파악을 위해 가공장 직원에게 달려갔다. 잠시 후 만면에 미소를 띠며 돌아온 그녀가 말했다.

“과육을 제거하면서 나오는 점액질 당분이래요.”

호기심 반 의심 반 질문을 던졌던 나는 머쓱해졌다. 이것이야말로 커피를 책으로 배운 무식자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로스팅 된 원두나 추출된 커피만 접하는 소비자가 어떻게 그런 걸 알겠어.’ 자기 합리화로 민망함을 달래 보았다.


세척 가공을 통해 껍질과 과육, 점액질 제거가 끝난 커피 열매는 속껍질 파치먼트가 감싸고 있는 딱딱한 씨만 남게 된다. 이것을 수분함량 10% 내외까지 말려서 보관했다가 파치먼트를 제거하면 생두가 된다. 가공방식에 따라 연두 빛을 띠는 것도 있고 좀 더 노란 것도 있다. 목욕재계를 마치고 경사진 선반 위에서 건조 중인 파치먼트 생두를 멀리서 보니, 어릴 적 시골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메주콩 말리는 풍경 같다.


세척 가공을 거쳐 건조되며 생두로 거듭나는 커피 열매


드디어 커피를 맛볼 시간이다. 호텔 로비에 있는 바 선반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여러 품종의 원두가 비치되어 있어 마음껏 맛볼 수 있었다. 전날 우림 커피원에서 구경했던 카투라 원두 20g을 분쇄해 핸드드립으로 내렸다. 금세 산미가 풍성한 커피 한 잔이 나왔다. 윈난 커피는 대체로 끝맛이 길지 않다. 바디감이 조금 부족하다는 인상이 들지만, 맛이 깔끔하다는 장점도 있다. 스페셜티 커피로 알려진 게이샤 원두도 시음해보았다. 드립 방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탓에 그 비싼 커피가 온 몸을 전율시키는 식초물이 되고 말았다. 너무 시큼해서 한 잔을 다 마셨다간 생명에 지장이 생길 것 같은 맛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또 하나 할 일이 생겼다. 생명보험용 핸드드립 클래스 수강.



글 한 편을 마쳤으니 커피를 한 잔 마셔야겠다. 아이니 가든에서 한국으로 가져온 풀시티 로스트 원두 한 봉지를 개봉해 드립 커피를 내릴 참이다. 아로마밸브에서 풍겨 나오는 쌉싸름한 원두향을 맡는 순간, 내 마음은 이미 서울을 떠나 윈난 남부 우림 커피농장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다.

푸얼.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