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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Nov 01. 2020

리장 망명

전혀 다른 두 번의 여정

나는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었다. 낮 동안 직장동료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철저한 이중인격이었다.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젖은 빨래처럼 소파에 걸쳐져 있다 겨우 씻고 잠드는 날들의 반복이었다. 집에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퇴근 지하철을 타기도 전에 이미 너무 지쳐서, 세종문화회관 벤치에 한참을 앉아 있다 광화문역에 들어가곤 했다. 가을 무렵엔 죽겠구나 싶을 정도가 되었다. 6일간의 추석연휴 중 당직을 피해 고향에 다녀올 수 있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아 서울에서 쉬기로 했다. 친구에겐 좀 이상한 부탁도 해두었다. “연휴 기간 중에 나한테 전화 한 통만 해줘.” 혼자 집에 있는 동안 돌연사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도 아픈 상태였다. 감각이 무뎌져서, 무엇을 보아도 무엇을 들어도 좀처럼 감흥을 느낄 수 없었다. 반투명 코팅된 창으로 밖을 보는 기분, 두꺼운 장갑을 끼고 콩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머릿속은 엉망진창이었다. 스타킹부터 등산양말까지 갖가지 양말이 뒤죽박죽 섞여있는 서랍장 같았다. 하나씩 짝을 맞추고 계절별로 정리하는 일은 영원히 미루고만 싶었다. 말은 초라해져서 입 밖으로 내놓기 부끄러웠고, 내 생각을 글로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상처받은 자아는 내 안으로 침잠하며 대화의 프로토콜을 잊어버렸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처럼 고통의 기억만을 거슬러 올라가며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당위를 쌓는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성공의 순간이 없지 않았을 텐데, 선명한 것은 왜 온통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뿐일까.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국민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라는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태의 내가 중요한 일을 해도 되는 걸까, 나의 우울이 내가 한 일을 타고 많은 사람에게 전염되면 어떡하지, 두려운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주말 근무를 위해 출근한 초가을 어느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그날, 사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6개월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출마하러 가시나 봐요?” 퇴직 인사를 도는데 동료들이 덕담을 할 태세로 말했다. “선거 안 하고 어디 가?” 외국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지인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퇴직을 하니 전 직장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분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얘기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만나서 매번 입을 닫을 수도 없다. 내가 뭐라고 비싸게 굴며 자리를 피하기도 어렵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어딘가로 떠나는 것 밖에. 범죄자만 해외 도피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는 심리적 망명이 간절히 필요한 순간이었다.


마침 리장을 알게 되었다. 위룽쉐산(玉龙雪山, 옥룡설산)과 객잔,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신비한 이름을 듣는 순간 목적지는 결정되었다. 계획 없이 비행기 표를 끊었다. 날씨 좋은 봄, 리장으로 한 달 살기를 떠났다. 조용한 시골마을 객잔에서 유유자적 시간을 보냈다. 전화도 단톡도 없는 아침의 고요를 만끽했다. 늦잠은 꿀맛 같았다. 햇볕을 쬐며 책을 읽고 설산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기운이 나는 날은 윗마을까지 걷고, 힘이 생기는 날은 좀 더 먼 곳까지 구경을 다녔다. 편한 신발을 신고 아주 천천히 걸었다. 자신의 영혼이 미처 뒤쫓아 오지 못할까봐 이따금씩 달리던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는 인디언의 기다림 같은 시간이었다. 매일 아침 뉴스를 살피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획하고 실행하고 지시하고, 세상 모든 일에 마음 졸이며 사는 동안 뒤쫓아 오지 못한 그 무엇을 그곳에서 기다렸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향수병과 상사병의 중간 어디쯤, 낯선 곳이 이렇게 그리워지긴 처음이었다. 5개월 만에 홀린 듯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두 달 동안 윈난 전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다시없을 기회처럼 전투적으로 일정을 짰다. 가보고 싶은 곳을 모두 목록에 넣고, 중복되지 않게 동선을 짰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북쪽부터 다녀와서 12월에 남쪽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만년설산부터 아열대 우림까지 극과 극의 기후 조건을 가진 지역에 가야하니 무엇보다 옷이 문제였다. 패딩은 과감하게 포기했지만 그래도 짐이 간소하지 않았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닐 자신이 없어 캐리어를 택했다. 울퉁불퉁한 고성 돌바닥을 바퀴가 잘 버텨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전혀 다른 두 번째 여정이 시작됐다.



중국판 땅콩회항 위기(?)에도

빛을 발한 한류


경유지 베이징에서 짐을 부치고, 몇 달 전보다 한층 까다로워진 보안검색을 마쳤다. 별 생각 없이 어슬렁어슬렁 탑승구를 향해 걷는데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리장행 항공기 탑승을 곧 마감할 예정이니 승객께서는 A16 탑승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헐레벌떡 도착한 탑승구에는 직원 두 명뿐. 승객은 모두 탑승을 마친 상태였다. 아직 시간은 좀 남아있었지만 나는 탑승교 안으로 뛰었다. 나무 밑동으로 미끄러져 들어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새로운 모험으로 가는 통로에 빨려 들어가듯.


좌석에 앉아 핸드폰 ‘에어플래인’ 모드를 켜는 것으로 출발 준비를 마쳤다. 몇 가지 식사 메뉴가 한정 수량으로 준비되어 있으니 서둘러 주문을 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국내선에 기내식이 있다니! 베이징에서 1년 반을 살았고 동부와 중부 내륙을 수차례 여행했지만 중국 국내선은 처음이다. 한 시간이면 서울에서 제주까지 가는 한국과 달리, 국토 면적이 한국의 100배에 달하는 중국은 국내선도 비행시간이 길다. 기내에서 끼니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 주변을 보니 컵라면 용기를 하나씩 안고 있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처음엔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잠시 후 의문이 풀렸다. 비싼 기내식 대신 준비한 비상식량이었던 것이다. 컵라면을 준비 못한 처지라 마음이 급해졌다. ‘한정 수량이라니, 동나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홈쇼핑 매진 임박 알람이라도 들은 사람처럼 나는 반사적으로 주문 행렬에 동참했다. 자장면을 시켰다. “밥도 사먹는 거냐”고 혼잣말을 하던 옆 자리 여성도 흘깃 나를 보더니 덩달아 덮밥을 주문했다.


출발 시간이 지나고도 비행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중국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하는 법이 없다. 2017년 전 세계 항공편 정시 운항률 조사에서 하위권을 독차지해 당국을 곤혹스럽게 했을 정도다. 가장 붐비는 공항으로 꼽히는 베이징 서우두 국제공항은 출발 지연으로 악명이 높다. 지난번 귀국길에는 탑승하자마자 잠이 들었는데, 눈을 떠보니 활주로 위에 있었다. 이착륙하는 줄도 모르고 꿀잠을 잤다 생각했는데, 창 밖 풍경이 그대로였다. 비행기 안에서 꼬박 2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예정시간을 고작 20분 넘겨 일찌감치(?)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항공기가 안정고도에 진입했음을 알리며 안전벨트 등이 꺼지자 기내 여기저기서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났다. 포장을 뜯고 스프를 털어 넣느라 컵라면족의 손길이 분주했다. 너도 나도 승무원에게 컵라면을 건네며 뜨거운 물을 부어달라고 한다. 한국이라면 진상 갑질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지만, 중국이니 결코 이상하지 않은 모습이다. 차(茶)를 일상적으로 마시는 중국에서는 차가운 음료를 사기는 힘들어도 뜨거운 물을 구하기는 쉽다. 웬만한 곳에 가도 반드시 전기 물통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수기 온수 정도가 아니다. 펄펄 끓인 물이다. 비행기에서도 뜨거운 물은 공짜인 모양이다.


잠시 후 기내식 배달이 시작됐다. 돈을 쓴 보람이라 해야 할지,  컵라면보다 자장면이 먼저 도착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중요한 의식을 치르기 전 경건하게 마음을 가다듬는 무의식적 행동이랄까. 하지만 생애 최초 중국 국내선 기내식 먹부림이 시작되기도 전에 소란이 생겼다. 옆 자리 여성과 승무원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 것이다. 물을 한 잔 달라고 하던 아주머니는 생수 한 통에 5위안이라는 답을 듣고서 폭발하고 말았다.

“밥도 사먹고, 심지어 물까지 사먹으라니, 이런 경우가 어디 있어. 항공 서비스가 도대체 어떤 지경이 된 건지!”

“퍼스트클래스는 무료지만, 이코노미 좌석은 구매를 하셔야해요.”

승무원의 설명에도 아랑곳 않고 그녀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다 중국판 땅콩 회항 사건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숨죽인 채 곁눈질을 했다. 

“예약해주는 대로 탄 거지. 알았으면 퍼스트클래스로 했겠지. 그건 그렇고, 식사를 시켰는데 물 한 컵까지 돈을 받는 게 말이 되냐고!”

뜨거운 물은 공짜인데, 차가운 물은 유료라니. 그녀와는 다른 각도에서 나 역시 의아함을 느꼈지만, 소란 속에 의문은 금세 잊혀졌다. 


한 바탕 말싸움이 끝나고 승무원이 뜨거운 물 한 컵을 가지러 간 사이, 씩씩거리며 밥뚜껑을 여는 아주머니에게 한 마디 건넸다.

“한국은 국내선에 기내식이라는 게 없어요. 국제선도 저가항공의 경우는 무료 식사를 제공하지 않아요.”

색다른 정보에 아주머니가 호기심을 보이며 반색했다.

“아, 그래요? 중국에서는 예전에 다 무료였단 말이에요. 그런데 한국인이세요? ”

조금 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안색을 바꾼 그녀는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품격 있는 말투로 말했다.

“제가 워싱턴 DC에 있을 때 집주인이 한국인이었어요. 근처에 한국식당도 많았죠. 이민호를 알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배우인데. 한국 드라마는 정말 재미있어요. 남자 주인공도 모두 멋있고.”

‘정녕 이런  상황을 잠재우는 데도 한류가 통한단 말입니까!’

“제 친구들은 전부 한국 화장품을 써요. ‘후’ 하고 ‘설화수’를 쓰는데, 서양 제품 보다 동양 여성에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한국 여자들은 모두 피부가 좋잖아요. 당신은 무슨 화장품을 써요?”

‘한류 팬인 그녀의 기대를 깨트릴 수는 없다. 지금 내 화장품 파우치에 들어 있는 프랑스산 기초화장품과 일본산 선크림, 너희의 존재는 그녀에게 영원히 비밀이어야만 한다.’

당황한 기색을 간신히 감추고, 중국인이 알만한 한국 브랜드를 대충 둘러댔다. 그녀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이어진 교양인(?)의 한류 토크쇼는 한국 음식과 드라마, 연예인 얘기가 두  바퀴를 돌고도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스튜어디스가 기내식을 내오고 나서야 겨우 그녀의 수다를 멈출 수 있었다.


반가운 기분 탓인지 기내식 자장면은 맛이 괜찮았다. 볶은 당근, 데쳐서 하얗게 무친 콩나물, 찐 양배추 잎을 통째로 올린 중면 위에 다진 고기와 볶은 춘장을 토핑으로 얹은 중국식 자장면이다. 미리 조리된 것을 감안하면 면도 많이 불지 않아 먹을 만했다. 중국에는 없는 중식, 달콤 짭조름한 한국식 자장면이 잠시 그리워지긴 했지만, 저녁 전까지 유일한 끼니가 될 테니 든든하게 먹어두어야 한다.

그릇을 비우고 한 숨 돌리려는 찰나, 시끄러운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중요 공지인가 싶어 귀를 쫑긋했다. 기내 물품 판매 안내였다. 평소 비행기에서 듣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이 익숙하다.

“제가 들고 있는 이 우산으로 말할 것 같으면, 3단 접이식으로 무게도 가볍고 휴대성이 아주 좋은 리장 여행 필수품입니다. 고산지대 날씨는 변덕스럽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경우가 많죠. 이때 작은 우산을 휴대하고 계시면 참 유용합니다.”

쇼핑호스트도 울고 갈 화술이다. 이런 식으로 항공기 모형에서부터 선글라스까지 5개 품목에 대한 소개가 10분 가까이 이어지고 나서야 승객들은 겨우 고요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계 가모장 사회 루구후의 모쒀족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어머니의 나라』에 흠뻑 빠져있는 동안 비행기 바퀴가 덜컹 하며 활주로에 닿았다. 드디어 그리워하던 리장에 돌아왔다.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마침내 고향땅에 도착한 것처럼 안도감이 들었다.

‘과장 광고가 아니었구만!’

승무원 말이 맞았다. 일기예보와 달리 리장 산이공항에는 먹구름이 이따금씩 빗방울을 흩뿌리고 있었다. 날씨 탓에 시계가 좋지 않아 오늘은 앞산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이곳에 왔던 날, 공항 창밖으로 펼쳐져 있던 드라마틱한 풍경이 떠올랐다. 짙은 잿빛과 붉은 벽돌색이 뒤엉킨 거대한 산, 그 원시적 매력에 나는 압도당하고 말았다.


우기가 끝나고 가장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라는 리장 친구의 말대로 산이공항은 여행객으로 붐볐다. 짐을 찾아 공항버스를 탔다. 한 시간 남짓 시내로 가는 길에는 계절의 변화를 보여주는 시골풍경이 펼쳐졌다. 옥수수대가 눈에 띄었다. 누렇게 마른 채 서있는 것도 있고, 부지런한 농부가 이미 베어 눕혀 놓은 것도 있다. 수확물은 엮어서 처마에 걸어놓았겠지? 농가를 구경할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고속도로 건설 공사가 한창인 구간을 지나면서는 울퉁불퉁 흙길로 우회했다. 고급 리무진 버스로 비포장 길을 달리는 기분이 묘하다. 시내로 들어서자 차가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리장도 몇 년 전부터 수시로 교통정체가 일어난다고 한다. 관광산업 부흥과 함께 찾아온 부작용이다. 창밖을 보니 중국어 간체자로 쓴 가게 이름 위에 동파문자가 표기된 간판들이 눈에 들어왔다. 드디어 동파문화의 발원지, 나시족의 고장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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