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두커종고성과 구이산공원
2019년 5월, 고원지대 샹그릴라는 아직 쌀쌀했다. 관광 비수기라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신축 건물에는 객잔, 식당, 슈퍼마켓뿐이라 유령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해 10월 다시 찾은 샹그릴라에서는 고성 주변 도로 정비가 한창이었다. 고성 중심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까지 객잔과 상가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현지인뿐 아니라 최근 타지에서 온 사람도 많다고 한다. 이들은 샹그릴라-리장 간 고속철도와 고속도로가 개통되는 2020년 관광 특수를 예상하며 기대에 부푼 표정이었다. 2001년 이름까지 바꾸며 관광산업으로 일어선 샹그릴라는 20년 만에 또 한 번의 일확천금을 꿈꾸는 외지인들의 유토피아였다.
‘내 마음속 해와 달’ 샹그릴라에서 내 시야 속 해와 달은 CCTV였다. 샹그릴라 두커종고성(独克宗古城, 독극종 고성) 곳곳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카메라다. 사각지대는 1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2014년 대형 화재로 1,30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의 3분의 2가 불타버리는 비극이 있었다. 그래서 고성 복구 이후 화재 등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CCTV가 설치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유라면 리장고성도 비슷해야 할 텐데, 그곳에선 대놓고 감시받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리장이 카메라를 잘 숨기는 걸까, 내가 샹그릴라에서만 눈이 밝아지는 걸까?
중국은 전체 인구의 91%를 차지하는 한족 외에도 인구 6,000명 이상 소수민족이 55개나 된다. 6,000명 이하의 진짜 ‘소수’민족은 공인된 55개 민족에 포함해 분류한다. 리장 외곽 루구후의 모쒀인 같은 경우도 스스로 모쒀족이라 말하지만 나시족으로 분류되고 있다. 55개 소수민족은 언어, 종교, 문화도 다르고, 중국에 병합된 시기도 다르다. 리장의 나시족 같은 소수민족은 체제 순응적이고,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소수민족은 분리 독립을 추구한다. 샹그릴라는 티베트와 같은 민족인 장족의 집단 거주지다.
이곳 장족은 라마불교 전통을 공유하고 있지만, 티베트에 비해 이미 상당히 한족화 된 사람들이다. 중국 소수민족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표준어인 보통화를 배우고, 학교에서도 한족 중심의 중국 역사를 배운다. 후대로 갈수록 소수민족의 고유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신 딱지는 어디든 따라다닌다. 유명 대학 입학 가산점 같은 우대 혜택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무슬림 소수민족 위구르족이 대표적이다.
2014년 3월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윈난성 최대 기차역인 쿤밍역에서는 신장위구르 독립운동단체의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다. 위구르 전통 장칼을 휘둘러 30여 명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 부상을 입은 사건이었다. 이후 인민해방군이 신장위구르 지역에 대규모로 배치되었고, 그 후유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족이지만 신장위구르 호적을 가지고 있다는 객잔 사장은 2015년 경 태국 여행 때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입국심사 창구에서 앞선 중국인 두 명은 간단히 통과를 했는데, 자신만 봉변을 당했던 일이다. 출신지를 보더니 상급자를 불러 20분 동안 따로 질문을 하고, 강력범 식별용 얼굴 사진인 머그샷(Mugshot)까지 찍었다는 것이다. 모욕적인 차별대우 때문에 며칠간 분을 삭일 수 없었다고 한다. 여행 기분을 망친 건 두 말 할 나위 없다. 신장위구르 출신 중학생들이 중국 남부지역 선전(深圳, 심천)으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는 예약해둔 호텔에서 이들의 출신지 때문에 투숙을 거부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겨우 중학생이 무슨 위험인물이라고, 객지에서 밤에 길에 나앉게 하느냐고요!”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까지 붉혔다.
얘기를 듣다가 비슷한 시기 쑤저우에 갔을 때가 기억났다. 당시에는 정세를 알지 못해 무심코 지나쳤던 일이다. 친구가 숙소를 잡아주면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주변에 신장위구르인이 많이 사는데, 최근에는 위험할까봐 투숙객으로 받지 않는다고 했다. 안전한 곳인지 확인 후 예약을 했다면서, 체크인 할 때 반드시 한국인이라고 먼저 얘기를 하라는 것이다. ‘신장위구르’라는 지명을 정확히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베이징 체류 시절 중국인들로부터 신장위구르인이냐는 얘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햐얗고 한족과 조금 다른 느낌인데다 중국어를 하는데 어쩐지 서툰 것이, 베이징 사람이 보기에는 영락없는 소수민족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는 중국인이나 중국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신장위구르인입니다.”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신장위구르인이란 말이 누군가에게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두커종고성 중심부 구이산공원(龟山公园, 귀산공원)에는 세계 최대 마니통이 있다. 최소 성인 6~7명이 함께 돌려야 움직일 만큼 거대하다. 본래 경통에는 불경을 새겨서, 한 번 돌릴 때마다 불경을 한 번 읽는 것과 같다고 여긴다. 그런데 샹그릴라 대경통에는 불경 대신 중국 56개 민족의 화합과 단결을 의미하는 문양이 장식돼 있다. 관광객은 저마다 소원을 빌며 힘을 모아 마니통을 돌린다. 불경은 속세의 번뇌를 잊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읽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곳 경통은 기복신앙 성격이 강하다. 국가는 국가의 안녕을 비는 경통을 만들고, 국민은 개인의 복을 빌며 경통을 돌린다. 샹그릴라는 고산지대라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숨이 차기 때문에 마니통 돌리는 데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나마 이것이 가장 불경의 도리에 가까운 점이다. 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올라갔다 대경통을 보고 내려오는 길, 나는 ‘돈오돈수’를 경험했다.
‘그래, 저건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육체적 고행을 경험하게 하려는 큰 그림이었을 거야.’
욕망의 유토피아 대신 진정한 샹그릴라의 정취를 맛보려는 배낭여행자는 조셉 록의 1928년 도보 탐사 코스를 찾아간다. 쓰촨 성 무리(木里, 목리)에서 출발해 다오청 야딩(稻城亚丁, 도성 아정) 등지를 거쳐 공가링(贡嘎岭, 공알령) 산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아직 사람의 손때를 타지 않은 천혜의 풍광이 감춰져있는 곳이다. 광활한 초원, 거대한 만년설산과 순박한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사람들은 ‘조셉 루트’를 여행한다. 그들은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샹그릴라라고 생각할 것이다.
샹그릴라의 모델이 된 지역에 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었지만, 어원에 대해서는 티베트어 샴바라가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견은 언제나 중요한 법. 사실 조셉 록의 베이스캠프였던 리장에서 그 어원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리장 지역에서 ‘샹그리’라는 지명이 사용됐고, 나시족 언어에는 예측이나 겸손의 뉘앙스로 어미 ‘라’를 붙이는 습관이 있기 때문에, 리장에서 나시족과 오랜 시간을 보낸 조셉 록이 ‘샹그리’에 ‘라’를 붙여 표기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공교롭게도 샹그릴라의 영문 표기는 정말 ‘Shangri-L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