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난 자가 과거로의 회귀를 원한다면.
프로파간다는 오늘날 욕으로 쓰이는 경우가 허다한 단어이다. 나야 작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탈주>를 선전 영화적 성격을 들어 좋아하는 등 프로파간다 영화에 대한 상당한 선호를 지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할리우드 리버럴 선전물로써의 <미키17>의 선전적 성격에 대해서는 이것이 과연 승리를 정말로 확신하고 있느냐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봉준호의 이전작 <설국열차>에서 멈추지 못하고 질주해야만 하는 열차는 그 자체로 끊임없는 성장인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은유를 담는다. 미키17에서는 '휴먼 프린팅'으로 칭해지는 인간 복제 기술이 설국열차에서의 그 컨셉을 대신한다. (㉠) 휴먼 프린팅은 기차가 오랜 시간 담아 온 그 특유의 나아감의 속성과 근대성을 대신할 정도는 못되지만 음식물 쓰레기, 시체 등 용광로에 버려지는 유기물을 통해 인간을 생성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착취적 질서를 공격하는 듯 작용하기도 한다. 봉준호 본인이 밝힌 원작 소설 『미키7』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이유 중 하나인 휴먼 프린팅이라는 말이 함의하는 비인도적 성격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휴먼 프린트 장치가 폭발되는 엔딩은 극복의 서사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가질 터이다.
외계 행성 니플하임의 광활한 평원의 원주민은 공벌레를 닮은 '크리퍼'라는 지적 생명체이다. 지하에 존재하는 원주민, 그러니까 지하 속에 은밀히 서식하는 크리퍼라는 존재가 도사리는 거대한 니플라임이라는 설원이라는 무대는 동굴에서 제시된다. 조사대가 동굴에 들어가기 전, 영화는 넓은 설원 가운데에 선 우주 모함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롱쇼트로 화면에 영사한다. 미키의 수많은 죽음의 반복을 통해 모함의 과학자들이 외계 행성의 바이러스를 연구하였듯 미키의 복제판을 끊임없이 내보내는 거대한 개척 모함이라는 집단은 그렇게 설원의 위에 침입자로서 존재한다. 가장 유명한 최근 작품 중에서는 <아바타: 물의 길>의 오프닝씬이 비슷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바타 2가 착륙하는 우주선의 불꽃에 정글이 산화되는 모습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착취당하고 파괴되는 땅의 모습을 전시한다면, 미키17에서 설원은 무한한 개척이 예정된 공간이자 미지의 공간으로 여겨질 뿐이다. 미키의 회상, 개척 행성 니플하임으로 떠나기 위한 이민자들의 행렬은 기자의 인터뷰를 통해 방송국의 카메라로 전유된다. 고향을 재건하자는 반이민주의자들의 주장이 패배했다며 '당신은 케네스 마샬을 지지하나요?' 따위의 질문을 이민자들에게 던지는 기자의 인터뷰라는 상황은 서구 미디어를 통해 비치는 미국 혹은 유럽으로의 거대한 이민자 행렬과 연결된다. 우주선이 미국 혹은 자본주의 체제를 형성화 하고 있음은 설원을 짓밟은 우주선이라는 형상과 연결돼 곧잘 미국이 개척 정신을 토대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을 싹 다 죽이며 서부로 나아간 국가라는 사실과 결부되기도 하지만 앞서 언급한 우주선으로의 이민 행렬을 감안하는 경우, 어쩌면 이는 제3세계에 대한 서구 자본의 착취를 표현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독일의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최근 2월 독일 총선에서 대략 20% 정도의 득료율을 기록하며 2위로 약진하였다. 작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는 인권, 친이민 등을 내세운 민주당의 해리스를 끝내 무찌르고 당선됐다. 서구 미디어가 '극우'라는 표현을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보수 진영의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극단성이 afd 정도의 수준이 되면 해당 집단이 극우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일은 너무 구차해지는 감이 있다. 그리고 본 작품에서 연상되는 집단의 성향을 하나하나 따지는 건 피곤한 일이니 일단 이를 우경적 현상이라고 하자. 독일과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서 발견되는 우경화 현상은 누가 무어라 하든 대개 이민에 대한 반감을 기반으로 한다. 미키17은 반이민으로 대표되는 외부자에 대한 배격과 우경화 현상, 그리고 이에 맞서는 리버럴 세계를 리버럴 진영의 시각에서 그저 정직하게 그대로 그리고 있을 뿐이다. AfD는 상대적으로 중도적인 중앙당에 비해 지방 조직이 굉장히 문제시되는 케이스의 정당이다. AfD의 실질적 지도자로 평가되는 사람이자 "독일은 부끄러운 구조물(홀로코스트 추모비)을 수도에 세운 유일한 국가."라고 발언하는 등의 행보로 反유대주의자 극우로 언론에게 지칭돼 온 비외른 회케가 AfD의 지방 조직 쪽 사람임을 생각해 보자. 이것은 중앙이 아닌 인간을 다루고 있는 미키17이 과연 세계의 승리를 확정하고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물론 AfD의 주 지지층이 저소득층보다는 중산층에 가깝다는 걸 상기할 필요는 있다.)
봉준호의 <괴물>에서 '괴물'은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형상화한 듯한 생명체이다. 이 괴수로 인해 작중 강두의 딸과 부친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어느 고아와의 동거라는 유사 가족의 형성과 총을 매만지는 강두의 태도 변화를 통해 이 비극적 구조가 극복될 가능성이 염두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반면 <기생충>의 엔딩은 다르다. 가족과 투쟁의 가능성이 약간이나마 제시되는 괴물의 결말과 달리, 기생충의 끝에는 가족과 저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기우는 호화주택 지하실에 아버지가 있음을 알 수 있으나, 훗날 해당 주택을 구매해 부친을 해방시키겠다는 그의 목표는 너무나도 허황됐다. 감동적인 부자 상봉 숏 이후, 반지하라는 현실에서 웃는 기우가 등장하며 기우의 목표가 시궁창에 처박히게 된 자의 망상 정도로 치부됨은 당연하다.
두 번의 폭발이 영화의 마지막에서 반복된다. (㉡), (㉢) 한 번은 실재로, 한 번은 재현으로. 지도자가 된 나샤의 기념사에서 행해진 휴먼프린트를 폭발시키는 퍼포먼스가 과거 미키18이 케네스 마샬을 죽인 것을 모티브로 하고 있음은 너무나도 명백하다. 이들이 두 번째 폭발을 재현하는 방식을 보자. 첫 번째 폭발은 '마더 크리퍼'의 요구에 따라 미키18과 케네스 마샬이라는 인간 두 명이 희생하게 되는 순간으로 폭발의 현장에는 주위를 맴도는 크리퍼만이 존재할 뿐이다. 반면 재현의 현장은 다르다. 재현의 현장에는 나플라힘의 토착민인 크리퍼 대신 마치 생전 마샬이 말한 '끊임없는 진출과 번식'을 상기시키게 하는 수많은 기계 장비들이 놓여 있다. 기존 마샬 체제의 무도함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새로운 지배자들이 펼치고 재현하고 숭배하는 장이란 기본적으로 넓은 설원을 막연한 개척의 장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존 체제의 방식과 별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의 승리 행위란 결국 윌포드가 커터스에게 설국열차의 기관장 자리를 물려주는 데에 성공한 경우의 설국열차의 if식 대안적 결말에 준할 뿐이다.
완전해 보이지 않는 이 승리에는 마샬의 유혹이 도사린다. 행사에서 미키가 꾸는 꿈처럼 제시된 갑작스러운운 마샬 부부의 재등장이 그러하다. 영화의 마지막 순간 영화 타이틀이 '미키17'에서 '미키 반스'로 변하듯 비로소 숫자가 붙는 소모품이 아닌 사람 인격체으로서의 변화를 겪게 된 미키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된다. 휴먼 프린팅은 영화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할 만큼 중요한 지점이지만, 영화에서 이 기술이 사용되는 사례는 미키와 노숙자 연쇄살인범인 앨런 메니코바, 그리고 마지막 미키의 꿈일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케네스 마샬의 재등장이 전부이다. 만일 사건의 나열 조건에 '사람이 프린팅 되는 순간'을 더한다면 이는 미키와 마샬의 경우로 추려질 것이다. 마샬이 프린팅 되는 과정은 그 중에서도 예외적이다. "(크리퍼도) 싸구려 햄인걸 아는가 보지."라고 미키를 조롱하는 일파 마샬의 대사가 그러하듯 인격이 재생산되는 과정이 어떠한 육체의 반복임은 기계의 설정을 설명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거지만, 그 육체의 조직을 처음으로 보여주는 건 마샬의 경우가 유일하다. 이로서 다시 나타난 마샬의 육체는 스스로가 수많은 장기 조직의 집합체임을 모두에게 보여준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샬 부인은 미키에게 새로운 소스에 대한 제안을 하며, 케네스 마샬을 휴먼프린트기를 통해 다시금 이 세상으로 소환해 낸다. 스산한 분위기의 씬에서 더 이상 그들이 무섭지 않다고 독백하는 미키는 그들에게 저항없는 소모품으로서만 사용되던 과거와 다른 존재이다. 이로서 미키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 정신을 얻었음을 알 수 있으나, 미키의 태도와 무관하게 그의 머릿속에 그들이 나타났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불안하다. <괴물>에서 미군에 의해 베트남 전쟁에서 사용된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에서 이름을 가져왔음이 분명한 영화 속 미군의 무기 '에이전트 옐로우'가 한강의 괴물을 공격하는 용도로 정부에 의해 사용됨과 유사하게 우주선의 통치자 마샬이 크리퍼들에게 독가스를 뿌리라는 장면이 등장하듯 미키17에는 괴물의 모티브가 다시금 발견되고는 한다. 아무것도 아닌 아래 계급의 주인공이 비로소 사회와 싸워볼 용기를 가지게 됐다는 점에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일종의 유사 가족을 형성한 괴물과 달리 미키17에는 가족이 없다. 엔딩뿐만 아니라 미키17의 그 어디에서도 가족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관계란 미키17과 미키18와 나샤의 난교가 당연하게 연출되는 것처럼 지극히 '합리적인' 쾌락 내지는 가벼운 연대 수준의 영역에서 이뤄진다.
그런 한편 가족의 결원이라는 불완전한 현실과 대비되는 상상이 '현실 - 망상 - 현실'의 구조로 드러나는 기생충의 엔딩 구조와 미키17 결말부의 '현실 - 꿈(혹은 상상) - 현실'이라는 구조는 중첩된다. 기우의 가족 상봉이라는 망상이 결국 실패될 수 없는 세계, 즉 가족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세계를 예언하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미키17에서 더이상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이유를 짐작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된다. 자본 질서에 의해 가족 구조는 붕괴됐고(기생충) 그 세계에서 존재하는 건 홀로 존재하는 외로운 한 개인이다. 기생충에서 기우는 '가족'을 상상하나 미키는 상상을 통해 이제 '마샬'을 떠올린다. 미키17의 여러 후기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트럼프라는 인물의 1기 집권은 분명 소외받았던 러스트벨트의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그렇게 영화는 언제든지 미키가 마샬의 통치를 그리워하는 보수주의 세포조직의 일원으로 돌변할 일말의 가능성을 남기며 미완된 결론만을 가상된 착취의 땅인 설원에 폭발로서 투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