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면서도 나는 영화를 추종하겠다는 류의 영화다.
예고편이나 시놉이나 바빌론이랑 거리 있는 영화인거야 당연한데 왜들 그렇게 바빌론 찾았는지 전혀 모르겠고. 영화를 대하는 태도 역시 정반대. 바빌론이 영화 찬가라면 이건 조금 더 겸손함.
그런데 거미집의 겸손함에 의문이 드는 까닭은 영화 자체가 너무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추종하였으나 걸작을 만들지 못한 자전적 이야기라기에는 이야기의 힘이 너무나도 약하다. 작중 신상호 감독의 말대로 과감하게 밀어붙였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듦.
물론 200억짜리 영화라는 점과 전작 성적을 생각하면 본작이 어중간하게 만들어진 이유 역시 추측할 수 있겠지. 허나 김지운이 처한 전후사정이라는 외부의 정보는 영화 내의 방해요소와 맞물려 오히려 썩 좋지 못한 영향을 자아냄. 이해의 여지가 생기긴 커녕 어중간한 영화로 어중간한 영화를 옹호하는 요상함으로 상황을 무마하려한다는 인상이 듦. 난
이런 류의 영화는 <드라이브 마이 카>가 확실히 가장 설득력을 가지는 듯 하다. 거미집보다도 더욱더 과격하게 거울에 비친 잔상은 실질적인 소통을 할 수 없을 거라는 잔혹한 이야기로 영화 매체에 공격을 퍼붓지. 그러면서도 無聲설원의 시도를 거쳐 비록 잔해지만 反戰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내는 히로시마 원폭돔을 보여주며 어쩌면 영화는 거울 속의 像 이상의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로 종결. 나는 도로 저너머로 달릴 거라고.
<거미집>의 감독들이 몸을 불살라가면서도 영화에 투신하는 광기의 모습에 내가 오로지 공감하기 힘듦은 영화 자체의 질도 있겠지만 내가 창작경험이 없다는 요소 역시 한몫하리라 생각함. 드마카는 3시간 내내 매체 자체를 공격하니 받아들이기 쉬웠음.
거미집이나 드마카와는 다르게 영화의 가능성에 대한 확실한 답을 내놓은 최근작이 장예모가 찍은 <원세컨드>. 사막이라는 모래대지가 지닌 유동성에 빗대어 영화가 지니는 한계인 소실이야말로 영화의 본질이라는 답을 이끌어냈음. 필름에서 디지털로 전환대는 현시대에 대한 장예모의 대답이기도 하지. 하마구치도 나이 먹으면 장예모처럼 영화매체에 대한 뚜렷한 대답을 하지 않을까하는 기대가 있다.
(2023년 9월 29일에 작성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