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뽈작가 Feb 13. 2021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던 경찰관의 마음

두근두근... 부우웅.. 두근두근.. 부우웅..

지난 1월 저녁. 가족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서울 인왕산의 구불구불한 비탈길을 올라갔다. 초입부터 설렘으로 가득 찬 심장소리가 자동차 엔진 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 “엄마아~ 언제 도착해~” 짜증 섞인 소리가 끼어들어 경쾌한 리듬을 와장창 깨부수고 말았지만.. “거의 다 도착했어. 우와! 얘들아 창밖을 봐봐” 산 밑으로 반짝거리는 도시의 불빛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아이들을 달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자동차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들과 나는 통유리로 된 2층짜리의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건물을 올려다보며 “우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건물 내부의 따스한 불빛이 은은한 재즈 선율에 맞춰 유리창을 통과해 밖으로 퍼져 나오고 있었다. 건물 외벽의 글자 간판은 조명 설치가 되어있지 않아 좀처럼 읽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이 건물 출입문을 찾아 부지런히 헤매고 있는 동안 간판에 가까이 다가가 한 자 한 자 소리 내어 읽었다. 아이들이 들릴 정도로 크게.

“인. 왕. 산. 초. 소. 책. 방. 더. 숲. 투(Ⅱ)”  

우리 가족의 2021년 첫나들이 장소이자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외출을 감행하게 한 곳. ‘초소 책방’을 마주하게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뽈작가

  하루 전날 아이들을 데리고 집 근처 도서관에 갔었다. 문화+서울(서울문화재단에서 발간한 잡지)을 뒤적거리다 사진 한 장에 시선이 고정됐다. 밤하늘을 날던 새가 내려다본듯한 각도에서 찍힌 건물이었는데, 뭐 하는 곳일까 하고 기사 제목 쪽으로 시선을 옮긴 순간! 내 두 동공이 커졌다. ‘초소와 책방이 만나 주민에게 쉼터를 제공하다_ 인왕산 초소책방 더숲’. 인왕산 자락에 있었던 경찰초소가 멋진 책방으로 변신한 것이다. 기존 건물이 경찰초소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찰관인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1968년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북한군들이 서울에 침투했다. 무고한 시민들이 사망하고 그들을 막으려던 종로경찰서장이 순직했다. 이 사건(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청와대와 가까운 인왕산 지역은 일반인에게 통제가 됐고 그곳에 경찰 초소가 설치됐다. 그 후로 50년 뒤 2018년에 인왕산이 전면 개방되자, 2020년엔 경찰 초소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된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어머머, 여긴 당장 가 봐야 해!”


  책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사실 책을 보러 갈 목적은 아니었다. 곳곳에 남겨진 경찰초소의 흔적들도 보고 싶었고, 끝내준다는 서울 야경을 즐겨보고 싶었다.


  초소책방에 도착하자마자 뽈뽈뽈 뛰어 돌아다니던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 벽돌로 된 외벽 일부, 철제 출입문, 기름 탱크 등 초소의 흔적들을 용케도 잘 찾아냈다. 이 흔적들 앞에서 나는 뭔지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뭉클한 것 같기도 하고 헛헛한 것 같기도 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 말이 툭하고 튀어나왔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두근두근... 드디어 초소책방의 하이라이트, 뷰가 끝내준다는 야외 테라스로 올라갔..... 예상대로 방문객들이 스마트폰으로 끝내준다는 뷰를 배경 삼아 인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시끌벅적한 소음과 재즈음악이 뒤섞여버렸다. 다행히 추운 날씨 탓에 그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얼른 따뜻한 실내로 들어갔다. 회전율이 좋다고 해야 되나? 뻘쭘히 서있는 것도 잠시, 순식간에 명당자리가 비었다. 주문한 토스트와 빵을 아이들에게 챙겨주느라 살짝 정신이 없었지만, 배를 채운 아이들이 뛰놀러 가준 덕분에 남편과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서울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끄음.. 주문한 카페라테는 영 내 입맛에 맞지 않았다.)


반짝반짝반짝반짝...

초소 책방을 둘러싼 울창한 나무들 건너편엔 새까만 하늘을 배경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들이 앞다투어 불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내가 예전에 근무했었던 서울지방경찰청 건물도 보였다. 반가워!!) 그 뒤로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타워가 우뚝 서 있었다.

ⓒ뽈작가

그러고 보니 서울 전체가 마치 화려한 3단 케이크처럼 보였다. 나무들이 1단, 빌딩들은 2단, 남산은 3단, 남산타워는 초. 그래서 나도 모르게 생일 케이크 앞에 있는 아이처럼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피식, 웃음이 났다.

“와.. 제주도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제주도에서 살 줄 말 알았던 내가 경찰이 되고, 여기서 서울을 내려다보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 남편도 그러게? 하며 피식, 웃었다.


  출입이 통제됐었던 인왕산길이 어느새 전면 개방되고, 폐쇄됐었던 이 공간은 시민들에게 되돌아갔다. 역시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누구는 사라지고 누구는 나타난다. 좀 전에 경찰 초소의 흔적들 앞에서 느꼈던 헛헛함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와 같은 곳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을 예전의 경찰(의무경찰 혹은 전투경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경찰초소는 사라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책방이 들어설 거라고 상상이나 해 봤을까? 나처럼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통일을 염원했을는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이전글 경찰관보다 호랑이가 필요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