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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작가 Feb 08. 2021

경찰관보다 호랑이가 필요해요

동료 경찰관이 교통사고조사요원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겪은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승용차 한 대가 저수지로 돌진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119 구조대원들은 저수지 한가운데에서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차를 발견했다. 차에 타고 있던 운전자는 가까스로 빠져나와 차 트렁크 위로 올라가 양손을 흔들며 "살려주세요!!!"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뽈작가

구조대원들은 지체할 틈도 없이 곧바로 구명보트를 타고 저수지를 가로질러 간 다음 운전자를 구조해냈고 경찰관은 그가 진정되기를 기다린 후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어떻게 하다가 저수지로 돌진하게 됐나요? 교통사고가 난 건가요?”


온몸이 흠뻑 젖은 그는 담요 자락을 손으로 꼬옥 끌어안은 채 추위에 덜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자살.... 하려고 했는데, 너무 추워서.... 못 죽겠더라고요"


그렇다. 그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어흥!!

갑자기 웬 호랑이냐고?


법륜스님이 강연 중에 하셨던 얘기다.

자살하려고 산속으로 간 사람도 나무에 매단 줄에 목을 거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 호랑이가 “어흥!!”하고 나타나면 “엄마야! 나 살려라”하고 도망친다고 한다. 죽고 싶었던 마음이 싹 달아난다는 것이다. 저수지로 돌진했던 그 운전자가 호랑이(차가운 물, 정신을 확 차리게 할 정도로 위급한 상황)를 만나 자신도 모르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처럼.


이런 순간마다 호랑이가 등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12 신고를 받은 우리 경찰들이 등장하기 전에. 우리가 손 쓸 수도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그러나 현실에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호랑이를 불러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일단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생각하고..’는 더욱 불가능하다. 그들은 호랑이를 불러낼 의지조차도, 희망마저도 보이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 하나. 누군가 대신 호랑이를 불러주면 어떨까?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의 저자이자 심리학 교수인 토머스 조이너는 ‘소속감 단절’이야말로 자살 욕망을 키우는 큰 요소라고 꼽는다. 그들에게 나는 혼자가 아니고, 내 곁엔 호랑이를 불러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제 나는 다리까지 걸어간다. 도중에 누군가가 내게 미소를 지어준다면 나는 투신하지 않을 것이다.”(금문교에서 투신자살한 남자의 유서).  <왜 사람들은 자살하는가?>中


그러고 보니 호랑이를 불러주는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정도의 강력한 상황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저 누군가의 작은 미소, 누군가의 작은 관심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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