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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작가 Feb 04. 2021

경찰관이 바라본 소설 속 경찰관
<섬에 있는 서점>


파출소가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지.


나는 경찰관인 탓에 소설 속에 경찰관이 등장하면, 그가 주인공이든 아니든 내가 스토커가 된 것 마냥 유독 관심을 가지고 그의 뒤를 집요하게 쫓게 된다. 과연 그가 '경찰관'으로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게 될지, 등장인물들에게 '경찰관'이라는 이미지를 어떻게 심어줄지 무척 궁금했다. 개브리얼 제빈의 장편소설 <섬에 있는 서점>의 책장을 펼친 순간, 나를 기다렸다는 듯 경찰관 한 명이 등장한다.


책 <섬에 있는 서점>

  그의 이름은 '니콜라스 램비에이스'. 주인공은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올라프처럼 없어서는 안 될 감초 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미국 경찰이다.

나는 '미국 경찰'하면 가장 먼저 다부진 체격에 어느 정도 두툼한 배가 나온 이웃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항상 한 손엔 도넛, 다른 한 손엔 커피를 들고 있는. 램비에이스가 딱 그런 경찰이다. 저자는 그를 불도그처럼 다부지게 생겼다고 묘사했다. 굵은 근육질 목, 짧은 다리, 떡 벌어진 가슴, 납작한 코.(아.. 램비에이스는 근육질 몸이었군;;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램비에이스 ⓒ뽈작가


<섬에 있는 서점>은 제목 그대로 미국의 한 작은 섬에 있는 ‘아일랜드 북스’라는 서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학창 시절부터 책을 멀리했던 램비에이스는 딱히 이 서점에 방문할 일은 없었다. 서점 주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서점 주인이 아내의 자동차 사망사고로 램비에이스에게 조사를 받게 되면서 둘의 운명 같은 만남은 시작된다. 나는 그저 형식적인 조사였기에 이 두 남자가 앞으로 서로 볼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에게 경찰에 신고해야 할 사건들이 계속 터지면서 둘은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게 되고 결국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된다.


주인공과 램비에이스는 무척 다르다. 외모(특히 체형), 취향뿐만 아니라 성격까지. 램비에이스가 수더분한 성격임에 반해 주인공은 매우 까칠하다. 그런 주인공의 냉랭한 가슴에 램비에이스는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자상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를 쓰는 전형적인 산타 할아버지 같은 인물이라는 건 아니다. 어쩌다 자신도 모르게 따뜻한 말을 툭! 하고 내뱉다가 본인이 뻘쭘해서 헛기침을 하는 상남자 스타일이다. 주인공이 워낙 까칠하다 보니 상남자인 그가 다정한 성격으로 비치는 걸지도 모른다.


경찰은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까?

한 번은 뭐든지 삐딱하게 보던 주인공이 램비에이스에게 묻는다. 경찰일하면서 점점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밑바닥까지 내려가지 않냐고. 그 순간 나는 주인공이 어쩜 경찰의 마음을 그렇게도 잘 알까? 하고 작은 탄성을 질렀다. 직업 특성상 경찰처럼 여러 사람들(출판사 직원, 서점 손님 등)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만큼 실망하는 경우도 많은 법.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에게 상처 받지 않으려고 더욱 까칠해지고 삐딱한 시선을 유지했던 건지도 모른다. 경찰일을 할수록 불만 분자가 되어가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자 램비에이스는 "아니. 나쁜 사람들만큼이나 착한 사람들도 많이 보는데."라며 "자네 같은 사람 말이야, 친구."라고 대답한다. 하아.. 이런 마인드를 가진 경찰관. 또 어디 없나요? 같은 물 잔을 보고도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가 아니라 "물이 반이나 찼네"라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런 경찰관을 찾습니다!!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모으는 곳. 경찰도 올바른 사람?

램비에이스 또한 주인공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다. 주인공을 감시하기 위해 서점에 정기적으로 방문할 당시, 감시한다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이 추천해 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점점 흥미가 생기더니 나중에는 경찰 독서토론 모임까지 만들어 경찰 동료들을 서점으로 모이게 하는 독서광이 된다.

그는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라고 말했는데, '경찰도 올바른 종류의 사람'이라는 저자의 믿음이 반영된 게 아닐까? ^^(물론 세상에 나쁜 경찰도 있다는 건 나도 인정한다)


경찰의 숙명이란 무엇일까?

올바른 종류의 사람 중에 하나인 램이베이스는 주인공이 크고 작은 시련을 겪게 될 때 가족들에겐 말 못 할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였고, 주인공이 한 가닥 남은 희망을 붙잡을 수 있도록 남몰래 뒤에서 일을 처리해 주는 해결사였다.

에이제이의 인생에서
중대한 고비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그 남자의 숙명인 듯했다.
- 본문에서 -

※'에이제이'는 주인공의 이름이고, '그 남자'는 램비에스임


주인공은 인생에서 중대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파출소로 달려갔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에게 어김없이 등장하는 건 경찰이었다.(물론 이후에 파출소에 갈 필요가 없는 고비가 닥칠 때도 램비에이스가 등장했지만 ^^;)

이것이 경찰관의 숙명 아닐까? 사람들의 인생에서 중대한 고비가 있을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


경찰을 꿈꾸는 이들에게 추천해 주고픈 책 <섬에 있는 서점>

이처럼 인간미 넘치는 경찰관 한 명으로 인해 이 소설이 더욱 흥미진진하고 따뜻한 이야기들로 채워진 것 같아 경찰관으로서 매우 흐뭇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경찰을 꿈꾸는 자이거나 경찰관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램비에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서점이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파출소가 없는 동네는 동네라고 할 수도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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