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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뽈작가 Feb 19. 2021

SNS를 하는 경찰수험생의 마음


come back!

토종 소셜미디어 ‘싸이월드’가 부활한단다.


싸이월드 세대인 나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반가움과 기대감, 그리고 박수칠 때 떠났으면 됐지 어쩌자고?라는 염려스러운 맘들이 뒤섞였다.


어쨌든 싸이월드의 힘은 정말 대단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전, 나에게 컴퓨터를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싸이월드에 접속하기 위함이었고 디지털카메라를 구매하는 가장 큰 이유도 싸이질을 하기 위함이었다. 


문득 싸이월드 앞에서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24살의 내가 떠오른다. 


노량진에서 경찰공무원 임용 시험을 준비하던 때였다. 필요한 자료가 있어서 고시원에 마련된 공용 컴퓨터실로 갔다. 당시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수단은 컴퓨터밖에 없었다. 고시원의 컴퓨터는 몇 대 없었지만 무료(수험생들에게 PC방 가는 돈이 아까웠다)라는 점 때문에 자리 잡기가 치열했다. 미리 사용 신청을 해야 하지만 원하는 시간은 하늘에 별 따기였다. 그런데 이게 웬 떡이냐! 마침 비는 자리가 있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인터넷에 접속 시간이었다. 자료를 다 찾고도 사용 시간이 남았길래 머리도 식힐 겸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친구들의 사진들을 즐겁게 감상하고 파도타기를 몇 번 하다가 연락이 닿지 않던 옛날 친구의 계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라? 00네?” 수더분했던 그 친구는 스타일이 많이 바뀌어 못 알아볼 뻔했다. 흥미로웠다. 멋진 옷을 입고 멋진 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사진들을 하나하나 훔쳐볼수록 내 몸속에 무엇인가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흥미는 부러움으로, 부러움은 질투로, 질투는 열패감으로 변해 부피가 커지더니 몸속에 꽉꽉 들어차서, 누가 나를 툭하고 건드리면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았다.


ⓒ뽈작가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이 보였다. 푸석푸석한 쌩얼에 고무줄로 질끈 맨 머리카락. 하루 간격으로 바꿔 입는 추리닝. 지금 난.. 뭐지?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 깜깜한 미래를 위해 갑갑한 고시원 안에서 꽃 같은 시절을 보내고 있잖아? 억울하고 화가 났다.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분이 생생하다. 24살 나의 등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펑! 하고 터지지 않을 정도로만..

“그랬었지. 그래도 잘 극복했네.” 이렇게 웃으며 회상하게 될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런데 24살의 수험생 나는 그 괴로운 감정을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 “파이팅! 난 할 수 있어!”라며 일부러 나를 쥐어짜며 극복하라고 부추기진 않았다. 극복을 한 것도 아니고 겸허히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끄 때 내 감정에게 무언가를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날 끝내야 할 범위가 있었지만 공부할 맛이 안 났기 때문에 재꼈다. 단 게 당겨서 과자를 사 먹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씻지도 않고 누웠다. 눈을 감아도 이런저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평소 공부하느라 잠이 모자랐던지 금세 잠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원에 가서 수업을 듣고 점심도 먹고 고시원으로 돌아와 공부하고 저녁을 먹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냥 일상으로 되돌아갔다. 바뀐 건 없었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건 나와 같은 수험생들이었다. 꽃 같은 시절을 꼬질꼬질한 추리닝을 입은 채 책상에 앉아 보내기로 한. 그들은 지금 당장의 행복은 겉모습을 멋지게 꾸미는 게 아니라 내 머릿속에 공부한 내용을 조금이라도 더 집어넣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었다.


  어느새 내 몸을 꽉 채우던 열패감들이 풍선 안에 있던 공기처럼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질투심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다. 나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건 어디에든 있었다. 지친 영혼들이 거쳐 간다는 노량진 학원가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질투의 화신이 될 수 있다. 학원에서 알게 된 수험생 친구와 마주할 때마다 넌 고시원 비 걱정 없어 좋겠다, 나는 아르바이트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등등 질투심은 끝도 없었다. 


그래도 수험생 친구에 대한 질투심은 내 팔자려니.. 하고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친구의 싸이월드를 보다가 느낀 열패감은 왜 그리도 컸던 것일까? 


SNS는 우리의 시각을 왜곡시킨다.

한동안 연락이 끊겼던 친구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SNS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그녀는 누구보다 행복하고 화려해 보인다. 예쁜 옷을 사느라 큰 빚을 졌을지, 가족들과 크게 싸웠을지 누가 아는가.

반면에 수험생 친구는 나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한다. 학원 복도에서, 노량진 골목을 거닐며, 밥을 먹으며... 공부 스트레스를 수다로 푼다. 그러다 알게 된다. 그녀는 허리가 아파 의자에 오래 앉을 수 없고, 가족 중에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남동생이 있다는 걸. 


SNS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친구의 삶은 ‘속사정’이 걸러져 완벽해 보였고, 나는 그런 완벽한 삶에 질투가 나고 열패감에 휩싸였던 것이다.  


다행이라면 경찰 임용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SNS를 하지 않아 열패감 구덩이에 다시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공부하는데도 1분 1초가 아까운데 SNS를 하려고 고시원에서 컴퓨터 사용신청을 하고 컴퓨터실 앞에 서서 내 차례를 기다릴 여유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기다린다는 게 뭐예요? 당장, 언제 어디서든 스마트폰으로 SNS에 접속을 할 수 있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나와 비교해야 할 지경까지 이르렀다. 멘탈 유지의 최고의 방법은 SNS를 안 하는 것인데, 어디 그게 말처럼 쉽나? 


 지금도 SNS를 자주 하는 나는 최근에 철칙 하나를 세웠다. 동창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팔로우를 하지 말자. 인간관계 정리 중인 나에게 만날 일도 없는 동창생의 사진 구경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에 오프라인으로 만나 얘기를 나눴거나 학창 시절 가까운 사이였다면 팔로우한다. 그러니까 내가 속사정을 잘 알 수 있는 가까운 지인만 팔로우하자는 게 내 SNS 철칙이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지인이 아닌데도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롤모델들이다. 철학자, 시인, 소설가, 화가 등등. 그중엔 만나본적 없는 나이 어린 경찰 후배도 있다. 그들의 SNS는 나에게 동기부여가 된다. 그 사람이 잘되면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3월에 컴백하는 싸이월드는 어떠한 새로운 서비스를 들고 등장할지 궁금하다. 

나와 같은 유저들의 멘털 유지를 위해 화면 상단 또는 하단에 담뱃갑처럼 “경고! 사진이 전부가 아닙니다”라는 경고 문구가 보이면 어떨까?

멋진 사진 한 장 올리려면 무조건 힘들어 보이는 ‘속사정’ 사진도 함께 첨부해야 하는 서비스라면 대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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