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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Aug 10. 2018

인간은 이성이 아니라 어림짐작으로 모든 걸 판단한다

“훌륭한 과학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을 보되, 누구도 말한 적 없는 것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의 두 주연 배우 중 한 사람인 심리학자 아모스 트버스키의 말이다. 또 다른 배우의 이름은 대니얼 카너먼, ‘행동경제학’의 창시자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이다. 두 사람은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는 것”, 즉 ‘인간이 생각하는 방식’에 관심을 쏟았고 “누구도 말한 적 없는 것”, 즉 ‘인간 정신의 규칙’을 밝혀내 세상에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기존 학문은 모두 인간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라고 가정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오렌지보다 바나나를 좋아하고, 바나나보다 사과를 좋아한다면, 그 사람은 오렌지보다 사과를 좋아한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같은 사람에게 오렌지와 사과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내놓을 때, 오렌지를 선택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두 사람에 따르면, 인간이 어떤 것을 판단하고 무언가를 결정하는 과정에는 ‘이성’이나 ‘합리성’이 아니라 ‘심리’나 ‘감정’이, 즉 ‘체계적 편향’이 결정적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타고난 편향을 고려하지 않는 모든 과학은 ‘비과학적’이다. 두 사람의 이론이 경제학, 행정학, 의학, 법학 등 여러 영역에서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퍼져 나간 것은 이 때문이다.

마이클 루이스,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8)


저자는 ‘머니 볼’로 잘 알려진 미국의 저널리스트 마이클 루이스. 이 책에서 그는 1960년대 말 두 사람이 만나서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이룩하고 서로 갈라설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한다. 


두 사람은 성향이 완벽하게 달랐다. 카너먼은 “항상 자기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트버스키는 “항상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트버스키는 “비논리적 주장에 철퇴를 가하는 사람”이고, 카너먼은 “비논리적 주장을 들으면 ‘거기에 어떤 진실이 있을까’를 묻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죽이 잘 맞았다. 인간의 진짜 진실을 찾으려 하는 카너먼의 아이디어는 끝없이 솟아났고, 트버스키는 이를 받아들여 단숨에 명료한 핵심에 도달하곤 했다. 두 사람이 밝혀낸 인간 마음의 진실은 놀라웠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여섯 남매로 이뤄진 가정이 있다고 하자. 이들의 출생 순서가 ‘남, 여, 남, 남, 남, 남’일 확률과 ‘여, 남, 여, 남, 남, 여’일 확률 중 어느 쪽이 더 높을까?”


사람들은 후자가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니다. 두 경우는 확률이 완전히 같다. 흔히 빠지는 인지 함정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왜 후자가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가 하는 점이다. 통계 같은 공부를 하면 달라질까. 아니다. 학자 같은 전문가들조차 일반인들과 똑같은 대답을 한다. 인간은 본래 오류를 저지르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간은 확률을 정확히 계산하도록 타고나지 못했다. 우리는 확률 법칙을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어림짐작으로 대체한다.” 


두 사람은 이러한 어림짐작에 ‘대표성’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인간은 머릿속에 대표적 모델을 미리 가정한 후 실제 확률과 상관없이 거기에 기반을 두고 판단을 내린다. 전체 인구비율에 비춰볼 때 5남 1녀인 가정은 대표성이 떨어지므로, 사람들은 실제로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아이가 아인슈타인과 닮았다면, 과학을 잘할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인간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지 않는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놓고, 그 이야기가 마음을 움직이는 강도에 따라 의사를 결정한다. 판독 사진을 보고 암 여부를 결정하는 의사나 전투 중 민간인 여부를 판단하는 폭격기 조종사들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아니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 인간은 어림짐작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


하지만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면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 사람은 실수하는 존재다. 하지만 자신이 실수에 얼마나 취약한지 모른다면 끔찍한 일을 맞는다. 


사람들은 휴대전화를 손에 들지 않고 이어폰 등을 이용하면, 운전하면서 통화해도 안전하다고 여긴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운전 중 통화는 손에 들든 말든 사고를 유발할 확률이 네 배나 높다. 운전 중 휴대전화 통화를 금지하면 해마다 수천 명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


두 사람의 삶 역시 자신들의 이론을 반영한다. 논문을 발표한 후 트버스키에게 모든 영예가 집중되자, 두 사람의 우정도 서서히 금이 간다. 감성이 이성을 압도한다. 두 사람은 불화 끝에 결별하고, 트버스키는 이른 죽음을 맞는다. 


그 후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다. 카너먼에게 노벨상이 돌아가자, 사람들은 빠르게 트버스키를 잊었다. 인간은 공정하지 않다. “마지막 인상이 마지막까지 남은 인상”이 되기 쉽다. 세상은 살아남은 자의 것이다. 사람의 판단은 정점이 아니라 종점에 좌우된다. 이 편향을 밝혀내 ‘정점과 종점 원칙’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대니얼 카너먼이다.


이 책은 인간의 타고난 오류 가능성을 통해 인간 존재를 새롭게 이해한 두 학자에 대한 흥미진진한 드라마이자, 대중의 눈높이에서 행동경제학을 아주 멋지게 해설하는 데 성공한 입문서이기도 하다. 자신이 어떤 편향을 타고났는지를 알고 싶다면, 누구나 이 책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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