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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Aug 11. 2018

고통만이 우리를 설득합니다

이영광의 다섯 번째 시집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

이영광의 다섯 번째 시집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이 나왔습니다. 

이영광,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

‘끝없는 사람’이란 무슨 뜻일까요. 인간은 아무리 가 닿으려 해도 타인은 도달할 수 없는 미지를 누구나 품고 있습니다. 언어로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사랑이란,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의 다른 말이죠. 아마도 내가 누군가를 ‘끝없는 사람’으로 부른다면, 아마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말과 같은 뜻일 겁니다. 그를 탐구하고 싶다, 그에게 반응하고 싶다는 욕망에 들린 상태니까요.


이 마음이 자신을 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나를 더 알고 싶다는, 내 안에 있는 미지의 힘들을 더 들여다보고 싶다는 갈망으로 나타나겠죠.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언어를 넘어서, 내 언어가 아직 가 닿지 못한 나를 향해 가고 싶다! 


자신이든, 타자든, 어떻게 하면 ‘끝없는 사람’에 이를 수 있을까요. 시인은 온 몸의 고통과 상처를 응시함으로써 ‘끝없는 사람’에 나아가려 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말했습니다. 


“아픈 사람은 앓습니다. 그런데 신음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말이지요. 하지만 신음만큼 인간의 고통을 잘 전해 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시인은 ‘피의 혀’로, 그러니까 ‘통증의 언어’로,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몸의 말들’로 시를 씁니다. “몸이 고깃덩이가 된 뒤에 육즙처럼 비어져 나오는” “푸줏간 집 바닥에 미끈대던 핏자국 같은”(「마음 1」) 말들입니다. 


단말마 이후의 여운 속에 있는, 몸이 기어이 말하지 못했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 남은 흔적이라고 할까요. 시인은 이를 “침묵의 미궁에 빠진 영혼이 어쩔 수 없이 타전하는 모든 종류의 기척과 신호”라고 부릅니다.


세계의 폭력에 지지 않고 견디면서 귀 기울이는 이만이 들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무릎은 둥글고

다른 살로 기운 듯

누덕누덕하다


서기 전에 기었던 자국

서서 걸은 뒤에도 자꾸

꿇었던 자국


저렇게 아프게 부러지고도

저렇게 태연히 일어나 걷는 

                                                _「무릎」 



이것은 끈질기게 아픔에 매달린 혀만이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입니다. 

아픔에 기울어진 귀가 희망을 만듭니다. 

희망은 마조히즘입니다. 

고통만이 우리를 설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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