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을 생각하며
“나는 혼자서 이 공허 속 어두운 밤에 도전할 수밖에 없다. 비록 내 몸 밖의 청춘을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 내 몸 안의 황혼만은 떨쳐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_루쉰
강의를 앞두고
루쉰을 읽으면서 생각한다.
루쉰은 아무 희망도 없이 절망과 싸웠다.
루쉰에게는 유토피아가 없었다.
그에게는 도달해야 할/도달할 수밖에 없는
이상향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어디론가 가려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 높이뛰려 했다.
루쉰이 싸운 것은 세계의 지독한 어둠이었지만,
그 어둠은 또한 자신의 끝없는 황혼이기도 했다.
따라서 루쉰에게 세상을 계몽하는 일은
영원한 자기 부정 또는 자기 파괴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고통과 절망, 좌절과 허무가 그 끝에 있었다.
하지만 루쉰은 겁쟁이가 아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자가
이길 줄 알고서야 싸우는 자다.
우리는 이를 자기 기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루쉰은 이길 줄 모르고도 잘 싸울 줄 알았다.
싸우는 지금 이 순간에만 가치를 두었다.
그래서 루쉰의 삶은 전투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사상가 왕후이는 말한다.
"‘앞길이 무덤인 줄을 분명히 알면서도
기어이 걸어가는 절망에 대한 반항’의 인생 태도가
루쉰의 궁극적 지향이었다."
이길 수 없을 때에도 싸우는 자만이 위대해진다.
희망 없이도 사랑할 줄 아는 자만이 고귀해진다.
인생의 마지막은 어차피 무덤이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목적지다.
인생에는 그 밖에 어떠한 지도도 없다.
인생은 앞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길은, 가면 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