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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Aug 23. 2018

교양인은 책을 읽은 후에 변화하는 사람입니다

페터 비에리, 독서를 말하다

교양인은 책을 읽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책벌레나 유식한 사람,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으로 불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교양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배우지 못한 학자도 존재합니다. 교양인은 책을 읽은 후에 변화하는 사람입니다. 

“휴머니즘이 결국 그 무엇으로부터도 우리를 보호하지 못하는 겁니까?”

[독일의 작가] 알프레트 안더시가 묻자, 중산층 휴머니즘 가정교육을 받고 자란 [스승의 아들이자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대답했습니다.

“휴머니즘은 인본주의적 사상을 담은 책을 그저 소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자, 다시 말해 책을 읽고 난 뒤가 읽기 전과 다른 자만을 지켜 줍니다.”

지식이 그저 정보들로 이루어진 더미나 시간 때우기의 수단,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장식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와 확장을 이끌어내서 결국 행위로 이어지는 것, 이것이 교양이 가진 뚜렷한 특징입니다. 이는 꼭 도덕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할 때로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교양을 쌓아 가는 사람은 시 한 편으로도 변화합니다. 이 점이 교양을 갖춘 시민과 교양의 뒤꽁무니를 좇는 속물의 차이입니다.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문향심 옮김, 은행나무, 2018)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문향심 옮김, 은행나무, 2018)을 읽는 데에는 하루 이상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두 편의 생각 깊은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은 불과 88쪽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의미는 깊고 또 넓다. 위에 인용한 글은 첫 번째 에세이 「교양이란 무엇인가」에 실려 있다. 교육이 대량으로 속물들을 길러내는 시대에 이 에세이는 교양이 왜 여전히 가치 있는가를 진지하게 묻고 답한다. 


비에리에 따르면, 교양은 자신을 특정한 상태로 변화시키는 힘이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세계를 더 잘 이해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어리석은 편견을 물리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또한 흘러간 이야기를 한없이 우려먹지 않고 자신을 더 우아하게 표현하고, 더욱더 큰 관용으로 타자를 이해하며, 그리하여 누군가 자신을 도구로 부리려 할 때 자신을 지킬 줄 안다. 


교양 있는 사람은 돈이면 뭐든지 다 된다는 식으로 인간을 수단으로 삼는 것들에 불같은 분노를 느낀다. 교양은 돈이나 권력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어떠한 종류의 유용성도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힘러의 말은 자기 비난이다. 나치의 하수인이 된 그야말로 책을 읽고 행하지 못한 자, 책을 소비만 한 자에 해당한다. 그는 자신을 저주했을 뿐이다.


요컨대, 교양이란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만들고 이를 다듬고 매만져서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게 하는 힘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종의 ‘자기 축조술’ 같은 것이다. 교양을 쌓는 방법은 아주 다양하지만, 비에리는 독서를 강조한다. 


페터 비에리[은행나무 홈페이지에서]

비에리에 따르면, 지식을 담은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머릿속에서 “여러 목소리로 이루어진 합창”을 듣는다. 책을 읽을 때 우리 마음에서는 무언가 신비로운 일이 벌어진다. 그러고 나면 “세상을 이전과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보고 다른 행동을 하게 되고 다르게 이야기하고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더 많은 연관 관계를 알아채게 된”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 조금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문학을 읽는 것은 영혼의 언어를 배우는 것”으로, 작품을 읽은 후에는 “같은 것을 놓고도 이전과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랑과 다른 미움을 배운다.” 문학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이 경험을 전혀 다른 언어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즉 과거와는 다르게 겪을 수 있도록 우리의 감수성을 훈련시킨다.


책을 읽고 나서 삶의 변화도 가져오지 못하는 이는 교양 있는 사람이 아니다. 교양이 있는 사람은 독서를 통해 “자아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쌓아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아의 고갱이에 도달하는 데에는 끝이라는 지점이 있을 수 없음을 알기에” 독서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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