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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Sep 08. 2018

수명혁명과 인생시간표





레이 커즈와일, 『특이점이 온다』, 장시형, 김명남 옮김(김영사, 2007)

구석기시대 크로마뇽인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18세였다. 고대 이집트인은 25세, 중세 유럽인은 30세, 산업혁명 시대 영국인은 37세, 상하수도 등 인프라가 갖추어지기 시작한 1900년의 미국인은 48세였다. 하지만 정보기술과 생체기술이 발달한 2002년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무려 78세가 되었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김영사)에 나오는 통계다.


인간은 점차 ‘물리적 수명’을 정복해 가는 중이다. 지난 100년 동안, 인간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늘었다. 노화와 생명의 비밀을 탐구하는 인간 공학이 발달하면서 최근 들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보편적 건강보험 등 덕분에 다른 나라보다 더욱더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는 기존의 ‘인생시간표’를 고집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허물고 다시 짜는 게 현명하다.




1800년 세계 평균 수명은 32세였다.  2012년에는 70세로 119% 늘어났다.(출처 : 유엔)


학생들한테 강의할 때, 여러분들은 부모 또는 조부모의 인생 시간표에 맞추어 살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한다. 현재 청년들의 기대수명은 최소한 평균 100살이 될 것이다. 아직 5분의 1 정도밖에 인생을 보내지 않은 것이다. 2015년 출생아의 경우, 기대수명이 142년이라는 믿기지 않을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야말로 ‘수명혁명’이 일어나는 중이다.



건강에 대한 공적 투자(보편적 건강보험) 덕분에 한국이 가장 가파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1970년 이후 전 세계 국가들의 생명표(출처 : 이코노미스트)


30년 전 인생 시간표는 완전 달랐다. 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을 얻자마자 연금보험에 가입했는데, 보험사 쪽 설계에 따르면 정년 축하금이 55세, 장수 축하금이 70세였다. ‘이 축하금 정말 탈 수 있겠느냐’면서 설계사와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27년을 배우고, 27년을 일하면서 이자 붙여 사회에 돌려준 후, 은퇴해 10년 정도 노년을 누리다 땅속에 한 칸 집을 짓는 것이 당시의 인생 시간표였다. 인생이 짧다고 생각했기에 더 깊이, 더 많이, 더 넓게 배우지 못하고 취직을 조급해했다. 대학만 졸업하면 일자리가 널렸는데도 그랬다.


해마다 증가 중인 한국인의 기대수명 및 건강수명 추이(출처 : 통계청)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그다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생의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 실업을 빌미로 그들을 닦달할 이유가 없다. 어차피 베이비붐 세대 대부분이 은퇴하는 10여 년 후엔 청년들이 승리할 것이다. 한 번도 인구가 줄어드는 세계에서 살지 않았기에 모두들 감각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못할 뿐이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청년들은 부모들보다 공부를 더 오래 하고 세상을 더 겪어도 상관없다. 청년들의 인생은 아주 길다.


‘건강수명’을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 들어도 몸과 뇌가 병들지 않는 상태”를 향한 인류의 투쟁도 시작되었다. 청년들이 노년에 접어들 때쯤 되면, 인간을 강화하는 여러 기술이 질병과 노화를 압도할 것이다. 의지만 있다면 70대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더 느긋해져도 괜찮다. 억지로 청년들을 질 나쁜 일자리로 몰아넣어, 시간과 열정을 착취할 필요가 없다. 차라리 기본수당 등을 지급함으로써, 청년들 스스로 여유를 갖고 부모 세대와 다른 삶의 양식을 창조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 낫다. 수명혁명 시대의 인생 시간표는 다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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