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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Sep 06. 2018

‘책’이 없다

베스트셀러가 민망하다... 가슴 뛰는 책, 정말 없습니까

지난 주말, ‘마을 축제’가 열렸다. 도서관, 지역단체 등이 함께 모여 책을 이야기하고 공부를 고민하는 잔치였다. 올해 주제는 ‘금서, 지금은 읽을 수 있는 책’. 노원 FM의 공개방송에 나가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한 후라서인지, 청중들 반응이 뜨거웠다. 권력의 비위를 거슬러 ‘금지된 책’인 금서(禁書)들이, 시대가 지나면서 ‘황금의 책’인 금서(金書)가 되는 전복의 과정을 살피면서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1559년부터 1966년까지 400년 넘게 유지된 가톨릭 금서목록은 사실 필독서 목록이나 다름없다. 스피노자, 사르트르, 졸라, 지드 등은 신성모독을 빌미로 모든 책이 금서였다. 『신곡』, 『실낙원』, 『적과 흑』, 『레미제라블』, 『보바리 부인』, 『군주론』, 『수상록』, 『팡세』, 『순수이성비판』, 『사회계약론』 등도 목록에 올랐다. 


모두 자기시대의 문제를 첨예하게 끌어안았기에 ‘반시대적인 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들이다.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얼마 전 지인과 식사하다 들은 말이 뇌리를 떠돌았다.


“‘책’이 없다” 


베스트셀러가 너무 민망하다는 소리였다. 초연결사회 이후, 책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구조가 변하면서, ‘감식안’ 대신 ‘마케팅’이 악령처럼 출판을 사로잡고 있다. 책의 가치란 상대적이라서 저마다 다른 법이니 독자를 타박할 필요는 없다. 


독자들이 ‘펀딩’에 참여하고 같이 떡볶이를 먹고 싶든, ‘전자책 무료’ 덕분에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을 좋아하든, ‘방송’ 이후 자칭 ‘지식장사꾼’을 더 사랑하든, 다섯 해 이상 계속 잡화점에서 기적을 사든, 스테디셀러의 ‘리커버 특별판’만 애정하든…… 무슨 상관 있으랴. 


카프카의 표현대로,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같은 책들이 꾸준히 출판되기만 한다면 말이다. 독자의 입맛을 달콤하게 만들기보다 독자의 뇌리를 파고들고 가슴을 때리는 비판정신으로 날이 시퍼런.


“요즈음 왜 가슴 뛰는 책이 없습니까.”


며칠 전, 소셜미디어에서 한 기자가 일갈했다. 올 게 왔다는 느낌이었다. ‘출판이 이제 정말 위기로 들어섰구나.’ 출판의 목이 졸리고 있다면, 양적 위기는 아닐 것이다. 


책은 쏟아지고 있다. 도전자도 넘친다. 출간 종수는 어느새 한 해 8만 종을 넘어섰고, 매년 1종 이상 출간하는 실적 출판사 숫자도 이미 7,775곳에 이른다. 한 편집장 표현에 따르면, 늘어나지 않은 것은 몇 해째 제자리걸음인 산업 전체 매출액과 직원 월급뿐이다.


저출산 고령화에 모바일 충격으로 인한 낮은 독서율로 고전하는 와중에도 좋은 책을 만들려고 원고를 찾고 편집에 공들이는 이들이 출판계에 적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현행 출판에 불만이 쏟아지는 걸 보면, 기꺼이 손들어 주고 싶은 책들의 전반적 고갈도 심각한 듯하다.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한 책들이 유행 타고 범람 중일 뿐, 문단 놀음에 고독을 잃어버린 문학은 완연히 힘을 잃었고, 인문사회는 자기계발을 밀수하면서 거의 예능화했으며, 과학은 수입상을 좀처럼 넘지 못하고 있다. 편집의 위기가 심각한데 편집자를 우대하는 문화는 없어 해마다 베테랑 편집자들이 회사를 잃는 중이다. 출판의 ‘질적 위기’가 본격화되었다.


‘책의 해’를 맞이해 30억 원 이상 예산을 들여 각종 포럼과 행사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편집자를 북돋워 ‘반시대적인 책’을 만들도록 격려하지 못할 때, 관계자들이 보여준 모든 분투와 노력도 허무할 뿐이다. 이제 출판의 기본을 확인할 때가 왔다.




《서울신문》 문화마당에 쓴 요즈음 출판문화에 대한 칼럼입니다. 여기에 옮겨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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