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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걷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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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수 Nov 03. 2018

치욕과 굴욕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이 정녕 부끄럽다. 이 공기를 아울러 들이쉬고, 이 물을 함께 마시고, 이 땅을 같이 딛고 있다는 엄연함을 견딜 수 없다.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전직 직원 폭행 및 엽기 행각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한 후에 든 참담한 느낌이다. 대한항공 사건이 머리에서 채 가시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도대체 인간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고 어디까지 폭력과 고문을 견딜 수 있는가. ‘밥이란’ ‘인간이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치욕과 굴욕은 다르다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여문책)에서 일본의 철학자 사사키 아타루는 부끄러움을 굴욕과 치욕, 두 종류로 나눈다. 굴욕은 “자신이 이 사회에서 이렇게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감정”이다. 굴욕을 느끼는 사람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또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참혹한 일을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어째서 이런 일이…’를 반복할 뿐이다. 한마디로, 나는 깨끗한데 세상이 더럽다고 느끼는 것이 굴욕이다. 인간으로 차마 견딜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 벌어졌는데도, 남을 바꾸려 할 뿐 나를 바꿀 생각이 없을 때 우리는 굴욕을 느낀다.


치욕은 이와 다르다. 치욕은 “자기 삶 자체의 변혁을 포함”하는 부끄러움이다. 자신 또는 타인이 “이렇게 마지못해 사느니, 비굴하게 목숨을 부지하느니, 이용당하고 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는 절대적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제대로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엄중한 책임감을 포함한 감정이다. 사악한 이들이 국가나 기업을 운영하면서 직원을 종처럼 생각해 부린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몰랐던 사람은 없다. 반인간적 사건이 이 땅에서 연이어서 벌어진다면, 우리 모두의, 즉 ‘나’의 묵인 없이 불가능하다. 모두들 내 일이 아닌 양 일조하고, 방관하고, 견뎌 왔을 뿐이다. 

사사키 아타루, 『바스러진 대지에 하나의 장소를』, 김소운 옮김(여문책, 2017)

소수 사이코패스한테 책임을 ‘전가’하고 내 손을 깨끗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굴욕에 불과하다. 굴욕은 반복된다. 대한항공에서 보았듯이, 세상이 떠들썩한 순간에만 잠시 잦아들었다 세간의 관심이 멈추면 ‘갑질’은 또 등장할 것이다. 도돌이표는 이제 그쳐야 한다. 이렇게 더러운 세상을 용납하는 데 쓰인, 오염된 내 혀와 피로 물든 내 손이 무엇보다 견딜 수 없을 때 치욕이 찾아온다. 그런 나 자신을, 사회 자체를 고쳐 쓰려 하지 않는 한, 갑질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우리만이 우리를 통치하도록 용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일터라고 예외는 아니다. 갑질이 끊이지 않는 이 따위 일터를 지금껏 묵인했다는 사실에 치욕을 느끼자.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노예질에 길들여진 나와 세상을 반드시 바꾸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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