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신지요
남영역에 내렸다. 서울역에 가기 전에 시간이 조금 남았다. 언제 와도 복잡한 동네다. 역 주변의 빌딩들이 리모델링을 했다. 못 보던 상점이 생겼다. 크리스피 크림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그덕에 조금 깔끔해진 것 같긴 했지만, 도떼기시장같은 면모는 털어낼 수 없었다.
트럭이 간신히 지나갈만한 높이에서 전철이 지나다닌다. 귀가 먹먹할만큼 가까이서 울려대는 전철의 소음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 굉음을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남영역을 지나는 전철의 굉음을 기억했다. 철로를 지나는 무시무시한 소리가 가까이서 울려퍼졌다. 어둠 속에서도 역 근처란걸 막연히 짐작할 수 있었다 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서울시내의 지하철은 대부분 땅속을 훑고 지나다닌다. 말 그대로, 지하철이다. 그래서 육상을 질주하는 전철은 낯설다. 1호선의 일부 노선에서나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다.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낸다 해도 일부 구간뿐이다. 그나마도 다리를 통해 강을 건너는 모양새기에, 우리 곁에 두고 볼 일이 별로 없다. 소음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남영역의 소음은 특징적이다. 가장 오래된 노선이어서 그런지 보행자들과 굉장히 가까운 거리에서 전철이 지나간다.
그래서 나도 그를 기억했다. 소음 때문에. 그에겐 악몽이었을 전철 소리 덕분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데 있었네. 찾았다.
남영역 플랫폼 너머로 경찰청 인권센터가 보였다. 저 네모반듯한 건물은, 이전에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2002년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판도를 꽤나 소상히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생에게도 새천년민주당의 국민경선 과정이 월드컵만큼이나 흥미진진할 수 있었다. 사실 당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지금까지 회자될 만큼 드라마틱하긴 했다. 경선의 승자는 바람을 불러온 노무현이었다. 모두들 그 경선에서 노무현만을 기억한다. 그럴만 했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한사람을 더 기억한다. 아직까지 정치생명을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이인제도, 정동영도 아니다. 김근태다.
김근태는 경선 초반부터 최하위에 머물다가 조기 사퇴를 했다. 그의 이름값이나 능력을 생각하면 많이 아쉬운 결과였다. 그렇지만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근태다운 퇴장이었다. 그는 경선 즈음에 민주당의 실세였던 권노갑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양심 선언을 하였다.
바보같은 짓이였다. 그는 현실정치에 몸을 담그기에는 지나칠만큼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어머니는 그렇게 바보같이 굴다가 경선에서 겨우 열표 남짓 가져가던 김근태를 보고 어떡하냐며 발을 동동 굴렀다. 어린 마음에 나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어딘가 이상해보이는 거동에 어눌한 말투때문인지 연설도 잘 못하는 아저씨가 마음에 걸렸다. 그 어눌함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겪은 처절한 고문 때문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남영역에서 김근태를 생각하는 사람은 나 혼자는 아니겠지.
나의 작은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하시다. 물론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몸이 둔해지고 허리가 굽게 마련이다. 늘 20대같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수십년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 가면서 이루 말할 수 없이 고생을 하셨다. 젊었을 적 당한 고문의 후유증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비서로 일하며 모셨던 정치인도 똑같이 당했다. 아니, 훨씬 더 심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정치계에서 완전히 발을 뗐지만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 위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고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뻔하기도 했다. 결국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역경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섰다. 그렇지만 건강했던 신체는 돌려받지 못했다.
남영역에서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몇년에 한 번 뵐까말까한 먼 친척이지만, 그 분이 새삼스레 생각났다.
남영역에서 그분을 생각하는건 나뿐이려나.
먼 발치에서 흘끗거리며 대공분실을 쳐다봤다. 건축가 김수근이 악마적 재능을 십분 발휘했다는 좁디좁은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공포심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폐쇄성을 부각했단다. 그 곳에 사람들이 갇혔겠지. 고통에 몸부림 쳤을 것이고.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마주친 적은 없음에도 나는 그들에게 빚을 진 기분이다.
평범하게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괜시리 시큰해졌다.
안녕들, 하신지요.
누군가는 아직까지도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겠지. 어쩌면 이 땅을 이미 등졌을 지도 모른다. 어디에서든 부디 안녕하시길 바란다. 생색처럼 쥐어짜내는 생각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덜 부끄러울 것 같았다.
무뎌지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도망치듯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왠지 귀가 먹먹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