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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Apr 24. 2016

구조된 자는 구원된 인간일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에 대하여



#1.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를 아시나요?

긴급피난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신과 마주한 급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한 행위를 말한다. 정당방위와 비슷하다. 카르네아데스의 널빤지는 이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예화다. 다음은 이야기의 전말이다.



기원전 2세기 그리스에서 배가 난파되어 승무원 전원이 바다에 빠졌다. 이 중 '혼자'만이 매달릴 수 있는 널빤지 한 조각을 붙잡고 간신히 살아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두 명이 매달릴 경우 널빤지가 가라앉아 둘 다 죽게 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허우적대며 매달리던 사람을 밀어내어 죽게 만들었다. 이후 그는 구조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지만, 무죄를 선고받았다. (위키백과)




카르네아데스의 판자, Plank of Carneades



널빤지에서 매정히 사람을 밀어낸 생존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타인의 생명권이라는 법익을 침해했지만,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도가 달리 없었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용서받는 살인행위라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그래서였을까. 이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에피소드 '비련호 살인사건'을 관통하는 모티프로도 사용되었다. 하키 마스크를 쓴 살인마 제이슨은 '널빤지' 덕분에 홀로 살아남은 이를 제거하기 위해, 자신의 방식으로 단죄를 해 나간다.





그런데, 살아남은 자는 과연 안도했을까. 자신이 무죄라는 사실에, 무사히 생환했음에 조건 없이 기뻐할 수 있었을까?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 베르톨트 브레히트




살아남은 자도 기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살아버렸기에 이미 스러져 간 사람들의 몫까지 괴로워한다.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1차 대전 중에 위생병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육군병원에서 일하며 수많은 부상자들을 저편으로 떠나보내야 했다. 그는 무결했음에도 생존이라는 결과에 괴로워했다. 위생병이라는 그의 보직을 생각해보자. 외려 소중한 목숨들이 그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로는 이런 계산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감정들이 있다.




목숨을 건 희생을 통해 천백 명의 유대인을 구했음에도 울부짖던 오스카 쉰들러가 생각난다.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엔딩씬에서 그는 생명을 더 구하지 못했음에 죽을 만큼 괴로워하였다. 살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살렸다는 기쁨을 잠식하고도 남을 만큼 무겁다.




<쉰들러 리스트>의 엔딩씬.







하물며 살린 자가 이럴진대. 살아난 자의 기억 역시 온전할 수는 없다.






#2.

생존자는 진정 '구조된' 자인가?




프리모 레비 최후의 육성




이탈리아의 작가 프리모 레비(Primo Levi)는 아우슈비츠라는 지옥 굴에서 기적처럼 생환한 이력을 지녔다. 그는 <이것이 인간인가> <주기율표> 등의 책을 통해 과거를 담담히 회상하였다. 문학과 비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풀어낸 그의 용서는 위대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 내지 못했다. 1987년 4월 11일, 69세의 레비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끝내 가라앉아 버렸다.




Primo Levi



프리모 레비 최후의 육성,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여러모로 한 사건을 떠올리게 만드는 책이다. 시퍼런 바닷물에 잠겨있는 듯한 일러스트.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로 나뉜 생사의 운명. '저격'처럼 똑 닮았다. 그래서 이 책은 애초의 출판 예정일에 맞춰 나오지 못했다. 2014년 4월 중순에 출간 예정이었고, 책 커버 역시 한참 전에 의뢰해 제작이 끝난 상태였지만, '그 사건'에 발맞춰 내놓은 느낌을 줄까 봐 꼬박 한 달을 더 기다리고서야 서점에 놓일 수 있었다.





레비의 수기는 정말 담담하다. 절제되어 있다. 건조하기까지 한 텍스트에 빠져들다 보면 문득 놀라게 된다. 이 사람이 과연 수용소에서 살아온 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너무나 끔찍하다. 그는 극도로 사실적인 형태로 아우슈비츠라는 참극을 비춘다. 효과적이다. 나는 그런 레비가 용서를 해낸 줄 알았다. 아니면 적어도, 극복 비스름한 무언가를 이루었다 생각했다. 그의 저작을 보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역시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의 끔찍한 기억들이 그를 괴롭혔을지도 모른다. 전쟁에서 살아온 군인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며 평생을 고생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나는 레비가 모종의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약일 수 있겠지만 그가 살아난 과정을 꼼꼼히 읽어보면 납득할 만한 가설이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는 구절처럼 레비는 강한 사람이었다. 그는 우수한 화학자였기에 다른 유대인들과는 달리 수용소에서 극한의 노동으로 체력을 소모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안전한 실험실로 빠져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강했기에 살아남았다. 본인도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자기 대신 다른 사람들이 살 수 있었다는 사실을. 그가 차지한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레비만큼 뛰어나지 않았기에, 상대적으로 약했던 경쟁자들은 영양실조로, 소각로에서 한숨의 재로 으스러졌다. 이런 와중에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어마어마한 위안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말 그대로 정신을 차려 보니 살아 돌아온 것이다.




이런 죄의식은 레비 류의 '수용소 문학'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옥 혹성의 죄수>는 아우슈비츠를 다룬 만화 <쥐>를 그려낸 아트 슈피겔만이 젊었을 적 그린 작품이다. <쥐>의 중간에 외전 격으로 삽입되어 있는 본 작품은 슈피겔만의 어머니 아냐의 자살을 다룬다. 수용소에서 살아나온 유대인 아냐는 평생을 죄책감과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손목을 그어 인생을 마감한다. 재기 넘치던 청년 블라덱-아냐의 남편-은 그녀의 자살 이후로 불안증세에 시달리는 고약한 노인이 된다. 아냐도, 블라덱도 평생에 걸쳐 생환 이후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이 사라졌음을 담담히 풀어내는 그들의 얼굴에는 회한이 서려 있다.








그들은 생존자이기 이전에 피해자고, 환자였다.









#3.



구조된 자들도 구원받지 못했다




오다 에이치로의 만화 <원피스>에는 피셔 타이거라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있다. 그는 영웅이다. 영웅이기 이전에는 노예였다. 그는 세계정부의 비호를 받는 귀족 천룡인들의 밑에서 고통받았다. 그 굴레를 직접 깨고 나와서 구조되었고, 다시 돌아와 남들을 구조하였다. 그렇지만 피셔타이거 자신은 구원받지 못하였다. 그는 끝까지 인간에 대한 증오를 버리지 못해서 결국 목숨을 잃는다. 절망의 우물에서 건져졌다 해서 그전의 일이 없던 게 되는 건 아니다. 살아났다는, 살려 냈다는 사실들마저도 치유가 되지 못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견뎌야 했던 지옥 같던 순간들은 고스란히 남는다. '그 사건'에서 속수무책으로 잠겨가는 배를 보며 고통스러워했던 것처럼.




피셔타이거




이제 더 이상 '그 사건'이라고 지칭하지 않겠다. 세월호. 세월호를 말하고 싶다. 세월호에서 우리는 304명을 떠나보내야 했다. 304명이라는 숫자는, 그리고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실종자 9명은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잊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꾸준하다. 그렇지만 세월호의 생존자가 몇 명이냐고 묻는 질문에 바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72명. 172명이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을 생존자라고만 못 박아두고 싶지는 않다. 단지 구조되었을 뿐이다. 그들은 생존자이기 이전에 남은 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갈 피해자이며 환자다. 구원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구조되었지만 구원되지 못했기에, 앞으로의 인생이 마냥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의 종말로 인해 간신히 구조된 위안부 여성들이, 구원받지 못한 채 여생을 비참하게 살아왔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미지 출처 : http://ybpress.tistory.com




심지어는 승객들을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친 이준석 선장과 선원들도 피해자의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그들은 무책임했다. 악마적 모습이 얼핏 얼핏 비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 역시 혼자만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성선론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도주는 나부터 살고 봐야겠다는 이기심의 발로였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수장시켜야 자신이 살아날 수 있는 비정상적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더욱 그렇다. 다시 그 상황으로 돌아가서 기회를 준다면 '가만히 있으라'는 무책임한 지시를 하는 대신, 적극적인 탈출을 유도했을 것이다. 사회적 부조리의 총체였던 세월호 사건이지만 책임은 가혹하리만치 이들에게만 집중되었다. 혼자 살아왔다는 죄책감에 가뜩이나 힘들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십자포였겠다. 납득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들 역시 피해자고 구원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4.



매몰과 침전의 어드메에서





피해자는 생존자들뿐만이 아니다. 이 사건을 보며 고통을 느낀 시민들 역시 잠재적 피해자들이다. 세월호는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사회적 참사였다. 2차 대전의 아우슈비츠가 충격이었던 이유는, 문명화된 사회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수백만에 의해 자행된 참극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에 대한 신뢰를 통째로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세월호도 같은 맥락이다. 발전할 대로 발전했다고, 세계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대한민국에서, 20년 전의 삼풍백화점 붕괴 수준에서 한치도 발전하지 못한 대참사가 벌어졌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너무나 무기력했다. 골든 타임이 지나가면서,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많은 이들은 물에 잠겨 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172명의 생존자는 슬프다. 누군가 말했듯이 세월호는 304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명이 죽었다는 온몸이 찢겨나가는 슬픔이 304번이나 있던 사건이다. 그런 복합적 슬픔이 매일같이 반복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남았지만 괴로울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재앙에 무너지듯 매몰되지도, 서서히 잠겨가듯 침전되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우리 모두가 그런 슬픔을 이해했으면 좋겠다. 살아남았음에도 슬플 수 있다는 것을, 구조됐지만 구원받지 못했음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렇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렇기에 나는 기억을 멈추라는 요구를 거부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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