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적 감성을 흠뻑 맞은 아이돌 뮤직
키치 (Kitsch)적 감성
키치(Kitsch)는 본래 저속한 대중적 취향의 문화들을 지칭하는 단어다. 대중의 취향을 싸구려라고 매도하는건 굉장히 위험하지만, '키치적 감성'이라는 테두리 안에 묶일 수 있는 문화는 실재한다. 적어도 이 사회에는 그런 키치문화에 대한 일반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한국의 아이돌 음악 역시 키치라는 키워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너무 주류화되어 있기에 인지하기 힘들 뿐이다. 즉각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키며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음악들이 대부분이 아니던가.
그렇다 해도 자신들의 코드가 'B급'이란걸 대놓고 보여주는건 좋은 전략이 아니다. 보통은 꽤나 교묘한 방식으로 드러내기 마련이다. 아이돌 음악이란 장르 때문에 태생적인 한계는 있을지 몰라도, f(x)의 4 Walls 같은 곡은 참 세련됐다.
그래서 EXID는 참 신기한 그룹이다. 왜냐면, 이들의 감성은 키치의 바다에 풍덩 빠진 수준이기 때문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nDSODY7bVE
EXID 의 신곡 <L.I.E (엘라이)>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평범한 노래다. <위아래>,<AH YEAH>에서 그랬듯이, 특징적 인트로를 보유하고는 있지만 그뿐이다. 귀를 잡아 끌만한 인트로를 통해 어필을 시도하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그들의 전작 <HOT PINK>부터 시작된 슬럼프다.
흔히들 EXID 최대의 무기로 팀의 메인보컬 솔지를 지목한다. 분명 쭉쭉 잘 뻗어 내는 수준급의 보컬이긴 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 이상의 매력은 찾아내기 힘들다. 아무래도 기획사의 급이 떨어져서 그런걸까. 음색이 매력적이지 않다. 씨스타 효린이 보여주던 시원스러움이나 소녀시대의 태연처럼 청량감이 있는 보컬은 아니다. 오히려, 올드해보이기까지 하는 솔지의 보컬은 팀의 음악을 90년대로 퇴행시키는 듯하다. 그럭저럭 세련된 인트로에 개연성 없이 이어지는 후렴구는 그만큼 매력이 없다. 트렌디한 척 하다가 트로트 감성으로 빽 지르는 것 같달까.
보통의 아이돌뮤직은 후렴구(싸비)가 핵심이다. 가장 '잘 빠진' 대목이다. 그래야 귀에 박히고, 입에 잘 붙으니까. 그런데 EXID의 노래에는 그런 후렴구가 없다. 우리의 머리속에는 '위아래 위위아래'라는 인트로뿐이다. 코러스를 버리고서는 제대로 된 노래를 뽑을 수 없다. 그런데 EXID의 곡에서 코러스는 사실상 빠져도 무방한 대목이다. 어쩔 수 없이 시간때우기 용으로 넣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https://www.youtube.com/watch?v=E0ZHXVp_wUE
6과9를 끊임없이 보여주는 저급한 연출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정도로 뜬 그룹을 그런 식으로밖에 소비를 못 하는 걸까? 이쯤 되면 프로듀서의 역량 문제다. 암시라기 하기 민망할정도로 노골적으로 존재하는 섹스어필. 누구를 위한 코드란 말인가.
물론 모든 아이돌 그룹은 정해진 타깃을 가진다. 집중공략층이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EXID가 그렇게 치밀한 계산 위에 대중 앞에 내놓인 그룹은 아닌 것 같다. 어쩌다 얻어 걸린 <위아래>라는 노래의 후광에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다.
키치는 그저 그렇게 부정적인 단어는 아니다. 단어의 의미가 확장되면서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사회적 기능까지 함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EXID에게 붙여지는 키치라는 타이틀은 막연히 부정적인 낙인 그 이상으로 기능하기 힘들 것 같다.
본인들이 이정도 유명세에도 만족하고 그치고 싶다면야 더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