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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Jun 27. 2016

절대적 맛이라는 문화권력

'면麵스플레인'에 일침 놓기



면(麵)스플레인



페미니즘이 저변을 넓혀가면서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다. 남자(man)와 설명하다(explain)을 합친 신조어로, 우월한 위치를 점유하여 여자들에게 설교하려고 하는 남자들의 특성을 비꼬는 말이다.  페미니즘 운동가 리베카 솔닛은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남성들에 통렬한 일침을 가한다. 


그만큼, 일방적인 설명은 폭력으로 작용한다.



이런 '맨스플레인'에서 또 하나의 신조어가 탄생했다. '면(麵)스플레인'. 평양냉면(麵)이 최고의 풍미를 지닌 음식이라고 찬양하며 이를 설파하려는 사람들에게 붙는 꼬리표다. 평양냉면은 최근 몇 년간  SNS에서 가장 힙-한 음식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평양냉면이 그토록 '절대적인 맛'을 지닌 음식일까?






나는 음식을 전문적으로 평하는 맛 칼럼니스트가 아니다. 수요미식회에 나오는 황교익씨처럼 공부를 많이 하지도 않았고, 그걸 이론의 박학함과 유려한 말솜씨로 풀어내지 못한다. 그렇지만 말할 수 있다. 내게 평양냉면은 그리 즐거운 기억이 아니었다. 


살면서 제대로 된 평양냉면을 먹어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나름대로 유명 프랜차이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다진 '봉피양'에서였다. 항상 지나다니던 길에 있어서 맛이 궁금했다. 벼르고 벼르다가 결국엔 맛을 보러 들어갔다.



놋그릇에 냉면이 담겨 나왔다. 손가락에 묵직하게 감기는 수저와 젓가락이 기분이 좋았다. 함흥냉면처럼 코를 찌르는 향은 없었다. 



담백했다. 덤덤했다. 너무 밍밍해서 건조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계산을 하러 가는데 카드를 긁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학생에게는 꽤 비싼 가격이었다.


'냉면 한그릇 먹으려면.. 과외 한번....학원 알바 두시간...' 



그렇게 다시는 평양냉면집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문화가 상대적이듯이, 맛 역시 개인의 취향에 따라 갈리게 되어 있다. 그렇기에 요즘 평양냉면이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방식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소수의 셀럽들이 '특징적' 취미로 평양냉면을 탐미하는 미식 활동을 자랑한다. 알면 알수록 빠져들지 않을 수 없는 최고의 맛이라 극찬한다. 이는 낙수효과처럼 대중들에게로 내려온다. 평양냉면 사진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도배된다. '나도 먹어봐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덕분에 전국에 몇 안되는 '제대로 된' 평양냉면 전문점은 문전성시다.



평양냉면이 정말로 맛있는 음식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 이미 수많은 미식가들의 검증을 거친 음식이다. 그렇지만, 평양냉면을 찬미하는 사람들 모두가 그 맛을 '제대로' 알고 그러는지는 의문이다.



'벌거벗은 왕' 우화가 생각난다. 착한 사람 눈에만 보인다던 벌거벗은 왕의 옷. 그리고 자신이 악한 사람일까 두려워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던 사람들. 평양냉면 식도락을 다니면서 마냥 즐겁지 못할 이들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왜냐고? 남들이 그렇게 좋다는데 자기 혼자만 '미각적으로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야 트렌드에 발맞춰 나아갈 수 있으니까.






맛이 어떻든 간에 음식이 이런 식으로 문화권력으로 쓰이는 건 굉장히 위험하다. 더군다나 평양냉면이란게 사실 그리 만만하게, 누구나 향유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가격. 보통 만원은 가볍게 넘는다. 대략적으로 만이천원~ 만오천원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면'음식 한 그릇으로는 결코 싼 값이 아니다. 애슐리같은 유명 프랜차이즈 뷔페에서 배터지게 포식할 수도 있는 가격이다.



게다가 접근성도 좋지 않은 편이다. 대개의 평양냉면 맛집은 시내 구석구석에 숨어있고, 더러는 교외에 있는 경우도 많다. 역세권 어디에서나 가볍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란 것이다. 몇몇 맛집은 직접 자동차를 몰고 가지 않으면 찾아가는 것 자체가 큰 과제다. 



이미 이 지점에서 평양냉면 탐방기를 일반적인 취미 생활이라 말하기는 힘들다. 이런 측면에서 부르디외가 말했던 아비투스 개념을 끌어올 수도 있을 것이다.


아비투스는 같은 집단이나 계급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적인 인지, 개념, 행위의 도식 혹은 내면화된 구조의 주관적이지만 개인적이지 않은 체계로서 간주되며, 경제의 계급구분과 계급구성원들의 문화적 상징 및 생활양식 간을 매개하는 구조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비투스 [Habitus]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국학자료원)




앞에서도 말했듯이, 평양냉면은 가격대가 만만찮다. 최저시급을 받고 편의점에서 두 시간은 꼬박 일해야 겨우 한 그릇을 사먹을 정도다. 그리고 평양냉면은 담백한 풍미를 자랑하는 음식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매니아를 자청하는 사람들도 '한번에' 그 맛을 깨친 사람은 드물다. 지속적으로 노력을 해야 맛을 들일 수 있는 음식이라니. '미식'이란 취미생활에 그정도로 투자할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아닐 것이다. 



차라리 중산층들이 즐기는 '그들만의 미식생활'로 보는 편이 더 일반적일지 모른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하게 면발과 국물을 음미하며, 그들만의 문화적 상징생활 양식의 경계를 치고 싶어하는. 그런 여유로울 수 있는 이들이 주로 즐기는 문화라고 말이다. 








겨우 냉면 한 그릇을 가지고 이렇게 야박하게 분석의 틀을 들이대는 내가 야속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고급진' 음식 맛보면서 자부심까지 즐기고 싶어하는 이들에 대한 반감이 조금 컸나보다. 아닌게 아니라 내 입에는 육쌈냉면도 충분히 맛있다. 


평양냉면을 즐기는 건 자유지만, 취향을 자랑하며 남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만큼의 가치를 지니는 문화인지는.. 글쎄. 의문이다.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6062609007290686


커버 사진 출처: http://egloos.zum.com/hsong/v/2416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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