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소명으로의 책임
안철수 대표가 또 한 번 물러났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 리베이트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서다.
그는 이미 여러 번의 사퇴를 대중들에게 보여 주었다.
정계에 정식으로 입문하기 전이었지만, 2011년에 박원순 현 서울시장에게 시장 후보를 양보했다.
2012년에는 문재인과의 경합 과정에서 돌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고 '안철수의 진심캠프'를 접었다.
2014년 3월에는 신당 창당을 포기하고 새정치민주연합으로 합당해 들어갔다.
같은 해 7·30 재·보선 패배 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직을 사퇴했다.
이미 여러 번 반복된 패턴이기에, 그리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안철수는 막스 베버와 그의 책임윤리를 언급하면서 사퇴의 변을 남겼다.
이에 최근 골몰하던 생각이 겹쳐져 떠올랐다.
요즘 내 머릿속을 활보하는 사람이 둘 있다.
한 사람은 안철수가 언급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대한민국의 제 15대 대통령을 지냈던 김대중이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다. 그렇지만 난 이 둘이 연결점을 공유한다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그는 누구라도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의 내공을 지녔던 지식인이었다. 동시에 마지막 기회였던 15대 대선에서는, 군부독재 시절의 권력자 김종필과 연합했다. 'DJP'는 그의 지지자라면 선뜻 납득하기 힘든 승부수였다. 그런 반전의 카드를 던질 줄 알던 정치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야당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갖춰야 한다.
-김대중-
문제의식과 현실감각.
이 두 가지 테제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나온 신념윤리와 책임윤리와 연결될 수 있다.
문제의식은 신념윤리에, 현실감각은 책임윤리로.
먼저 베버의 주장을 최대한 간단히 요약해 보자.
신념윤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결과가 나쁘면 책임을 세상의 부조리함, 타인의 무지, 또는 신에게 전가한다.
책임윤리는 정치행위가 야기할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가 끌고 온 항목이다. 그는 국민의당 대표 사퇴 의사를 표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는 책임지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책임윤리’를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제가 정치를 시작한 이래 매번 책임져야 할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져 왔고
이번 일에 관한 정치적 책임은 전적으로 제가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과연 '정치인' 안철수는 막스 베버의 책임윤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정치인 안철수는 자신의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의 정치>에 나온 가치를 너무 곧이곧대로 따르고 있다. 답답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한국적 정치 지형에서 신념윤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책임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 정치는 이념 대립의 역사 때문에 지나치게 신념 윤리에 사로잡혀 있다.
생각이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한다.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증오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어
상대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고
자신의 편에게는 관대한 기준을 들이댄다.
하지만 이는 너무나 편협한 의미의 해석이다. 이 발언으로 해석하건대, 안철수는 정치인의 '신념'이란 덕목을 하나의 이데올로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신념윤리는 대립각을 세우는 이념의 힘겨루기로 매도될 만한 개념이 아니다. 정치인이라면 타협하지 않고 반드시 지켜 나가고 싶은 가치관이 있기 마련이다. 신념 윤리는 그런 소신의 고수를 의미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막스 베버는 신념윤리를 정치윤리의 한 축으로 삼았다. 그가 책임윤리를 좀 더 강조하고, 역설한 것은 사실이나, 그가 구상한 정치철학은 신념윤리를 배제하지 않는다.
책임윤리가 없는 신념윤리는 분명 위험하다. 정치인의 행위와 결정에는 권한 대신 권력이, 집행 대신 폭력이 따라온다. 더 나아가, 권력에 의한 가치 배분은 일반 대중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지만 정치인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자신이 정해 놓은 '한계선'이 있어야 한다.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책임'이라는 화두 아래서만 갈팡질팡하다가는 정치인이라는 직업이자 소명을 내팽개치게 된다.
결국 신념윤리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이루기 위해서는 책임윤리와 같이 이루어져야 할 덕목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소명으로서의 정치>를 집필할 당시의 베버가 말했던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현대에 와서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현대 정치학에서 말하는 대표/책임의 연계로 넘어오면 베버가 말했던 그것과 맥락이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베버는 정치인 개인의 윤리 문제에 초점을 두었다. 비판의식을 조금 거두고 본다면, 아마 안철수의 사퇴는 그런 베버의 견해를 직접적으로 차용했다고 볼 여지도 있겠다. 이번에 국민의당에서 터진 비리 의혹은, 곧 당 차원의 윤리 문제로 직결되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베버가 활동하던 19세기~20세기 말의 세상이 아니다. 정치라는 행위가 가지는 의미는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만치 커졌다. 정치가 정치인들이 오롯이 전유하는 재화에서 벗어나, 대중이 쥐어준 권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대표하고, 책임을 진다. 그들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과 그를 선출한 투표자와 지지 세력을 대표한다. 그리고 그들의 통치행위와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인은 신념윤리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도덕적 근본주의라고까지 비칠 수 있는,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건 그 사람을 이루는 근간이자, 유권자들이 정치인에 바라는 기대 수준이기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했던 '서생의 문제의식'이 바로 거기에 대응된다.
그런데, 그런 문제의식만으로는 정치를 해 나갈 수가 없다. 이건 학문이 아니니까. 현실이니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실감각 역시 가져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상인의 현실감각'을 떠올릴 수 있다. 장사꾼 마인드를 디폴트로 가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매번 계산기를 두들겨 가며 타협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처럼 현실에 밝을 필요는 있다. 그런 현실감각은 책임과 연결된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보통 책임도 지지 못하니까 말이다. 현실을 알아야 책임을 질 수 있고, 책임은 곧 현실로 다가온다.
사퇴가 책임윤리의 실현이라 말하는 안철수 전 대표의 언행에 난 공감할 수 없다. 차라리 그의 사퇴는 신념에 가깝다. 자신이 정해 놓은 선에서 벗어나서, 타협할 수 없기에 물러난다는 그런 물러남으로 느껴진다. 당대표라면, 현실에 몸을 내던지기로 결심한 정치인이라면 이럴 때야말로 정말 정치적 역량을 보여줌으로써 책임을 질 수도 있어야 한다.
정치는 그리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평균대 위를 조심조심 걸으며 이상과 현실을 끊임없이 저울질해 나가야 한다. 그런 정치현실 속에서, 실제로 결과를 만들어 내는 능력은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덕목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언어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격언은 곱씹어 볼 만 하다.
더 좋은 것과 더 현명한 것, 둘은 같은 것이다.
책임과 신념은 같이 가야 한다. 어느 쪽이 더 좋고, 더 현명한 선택일지 가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책임으로서의 소명, 그리고 소명으로의 책임. 그 둘이 같은 것이란 걸 정치인들은 알아야 한다.
<더 읽어보기 & 참조 & 출전>
http://news.joins.com/article/20241548
http://territorialmasquerades.net/politics-as-vocation/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577199&code=11171211&cp=nv
http://news.joins.com/article/20251506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343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