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tincelle May 13. 2017

오래된 시대정신을 위하여

화쟁, 그리고 사티아그라히





1906년 9월 11일, 지금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인 트란스발에서 집회가 열렸다.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를 중심으로 추동된 진실관철투쟁 ‘사티아그라하’가 탄생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항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날 제출된 결의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의안 4호였다. 



“이 법령에 반대하여 모든 수단을 강구했음에도 통과될 경우, 인도인은 복종하지 않고 그로 인해 당할 모든 고난을 참는다고 엄숙하게 선언한다.”



불복종의 대립항은, 보통 격렬한 저항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데 간디를 위시한 수많은 사티아그라히들은 ‘인내’를 말하였다. 여기서 상식이 깨어진다. 사티아그라하는 분명 저항운동이다.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저항과는 분명 다른 무언가다. 역설적이다.






2015년 11월 14일, 서울의 광화문 일대에서 민중총궐기 집회가 열렸다. 의무경찰로 복무중이던 나는 대사관 경비 업무를 하고 있었다. 불빛이 번쩍거리는 것이 느껴졌고, 멀리서 함성이 들려왔다. 일부 근무지에서는 시위대와의 대치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심상치 않았다. 근무를 마치고 경찰서로 돌아오는 길이 어수선했던 기억이 난다. 부서진 채로 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경찰버스를 보았다. 페이스북에는 폭력의 피해자가 된 동료 의경들의 하소연이 빗발쳤다. 그런데, 의외로 사람들은 경찰을 폭력의 가해자로 지목했다. 백남기라는 이름의 농민은 고압의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맞는 걸까.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마땅히 이성이 들어차 있어야 할 곳인데, 대신 자리하고 있는 건 폭력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말이 생각났다. 그는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 간에, 폭력은 일단 실패”라고 말했다. 피할 수 없는 실패이며, 폭력을 멈추게 하는 유일한 수단 또한 폭력이라는 부연설명은 애써 무시했다. 사방에서 넘실거리며 눈에 들어오던 폭력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지금은 2015년인데. 21세기의 시대정신 역시 폭력이란 말인가?’ 폭력이 내는 파열음이 긍정적으로 기능한다는 합리화 기제는 듣고 싶지 않았다. 세상이 꼭 그렇지는 않다는, 보다 일반적인 ‘정의’를 찾아 내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전역이 눈앞이다. 그런 와중에 ‘화쟁독후감대회’의 공모를 접하게 되었다. 화쟁이라는 단어가 눈에 쏙 들어왔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어렴풋이 배운 개념이지만, 그 사상이 마음에 들어서 기억해 두고 있었다. 화쟁사상은 논리구조상 비슷한 면이 있는 헤겔의 변증법과 같이 배웠다. 그렇지만 변증법은 싫었다. 정과 반을 거쳐 합을 내는 과정. 이분법적 모순율에 바탕을 두고, 대립하는 양쪽이 철저히 투쟁과 모순을 통해서 지양된다는 기본원리가 내 미감에는 폭력적으로 비쳤다. 이에 반해 화쟁사상에서는 대범한 구석이 느껴졌다. 화쟁은 상반되어 보이는 두 가치를 융합하되 하나로 획일화하지 않는다, 양 대립이 그렇게 화이부동의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 사이에 끼어서 갈팡질팡 헤매던 나를 잊고 살았다. 어쩌면, 이번에는 그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간디는 폭력과 비폭력을 평행선처럼 영원히 서로 만나지 못하는 대립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둘은 빛과 그림자처럼, 양면관일 뿐이라 여겼다. 그런 성찰을 가지고 있었기에 폭력마저 비폭력으로 동화시켜 사티아그라하를 지속할 수 있었다. 저항과 불복종. 같이 생각하기 힘든 개념이다. 그렇지만 위대한 성인은 달랐다. 간디는 그런 모순의 칼날을 무디게 하여 화쟁의 그릇에 오롯이 담아내었다. 

 



무언가를 격렬하게 혐오한 나머지 거리를 두고,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열망을 니체는 ‘거리의 파토스’라고 개념화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자기초극의 열정과 계기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는다. 나는 내가 목도한 폭력이 싫었다. 거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고, 이 사회에 부합하는 정의를 찾고 싶었다.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건 없다고들 한다.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보여준 투쟁은 내게 훌륭한 선례로 다가왔다. 그는 비폭력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존경받아 마땅할 그의 고행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보여 주었다. 이는 1500년전 원효가 집대성한 화쟁의 본질과도 맞닿아 있다.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맞닥뜨렸던 시위자와 경찰은 같은 목적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쪽은 사회의 부조리를 혁파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한 편은 그 사회의 치안을 유지하려 했다. 서로의 방식은 달랐지만, 크게 보면 우리 모두가 사는 터전의 갈등을 해결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양측이 극렬한 모순으로 달려갈 필요가 없는 이유다. 그래서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화쟁과 사티아그라하를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망각했던 이 시대정신은, 우리가 오랫동안 간직해 왔던 미래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여기에 담겨 있다. 이 오래된 시대정신을 따라서, 새로운 길을 열어젖히겠다고 다짐한다.





2016년 9월에 쓰인 글. 

매거진의 이전글 인간을 믿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