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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Oct 30. 2017

불편함과 바름의 사이에서

진정으로 바른 정당이 되고 싶다면


*많은 이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할 논쟁적 게시물입니다. '프로불편러'를 좋아하시지 않는다면 읽지 않으시는걸 권장합니다.


**바른정당에 대해서는 악감정이 전혀 없습니다.  

청년정치인에 대한 수요가 많은가 보다. 그도 그럴것이 지난 수개월간 20-30대는 좀비같이 따라붙던 '정치혐오'의 망령을 멋들어지게 떨쳐 버리지 않았는가. 이에 정치판도 젊어질 때가 왔다,라는 메시지를 각 정당도 읽어낸 것 같다. 민주당과 바른정당을 위시한 주요 정당들은 '청년정치인'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열심히 홍보중이다.


의도는 좋다. 그런데, 난 그새를 못 참고 또 불편해져 버렸다. 이래서 일상 생활이 되겠냐고 물으실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맞다. 일상생활이 힘들 지경이다.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선입견-편견-혐오 기제들이 눈에 아주 쏙쏙 들어와서 힘겹다. 마치 눈앞에 실벌레가 떠다니는 비문증을 앓는 것 같달까.

아래 그림은 바른정당의 '청년 정치학교' 모집 포스터다.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밝혔지만 나는 해당 정당에 아무런 악감정이 없으며, 이들이 딱히 앞장서서 성차별이나 여성혐오를 재생산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지적할 것들을 넘기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본 포스터는 여러모로 클리셰 덩어리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나쁘게 말하면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


먼저 남성이 들어가 있는 왼쪽 사이드는 하늘색으로 그려져 있는 반면에, 오른편의 여성은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정도는 누구나 제기할 만한 문제다. 하다 못해 요즘은 어린아이 신발을 사줄때도 하늘-분홍색을 구분짓지는 않는데. 아주 기초적인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 있겠다. 심지어 바른정당의 로고는 하늘색이다. 남성 사이드의 색깔과 완벽히 일치한다. 이런데도 굳이 핑크색을 써서 두 편으로 갈라야 했는지 의문이다. 분홍바다 가운데 도드라지는 바른정당의 하늘색 로고가 안쓰럽다.

여기까지 읽어 냈다면 그래도 '불편함'에 대해 어느정도 면역이 되어 있는 분일거라 생각한다. 그러면 내친김에 좀더 태클을 걸어보겠다. 그림의 구성은 당연하게도 '왼편-남성 / 오른편-여성'의 모습이다. 아마 이게 무엇이 문제냐고 지적할 사람들이 더 많겠지만, 이는 가볍게 넘길 사항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절대다수는 오른손잡이기에 보통 시선의 방향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옮겨가기 마련이다. 두 사람이 있다면 자연스레 왼편의 사람에게 먼저 시선을 두게 된다는 말이다. 사소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을 먼저 쟁취할 수 있음은 결코 작지 않은 권력이다. 미디어에 비치는 이미지를 보자. 거의 모든 방송사의 뉴스에서 남자 앵커는 여자 앵커의 왼편에 자리잡는다. 과연 이것이 우연일까? 그렇다면 jtbc 뉴스룸의 손석희 사장이 안나경 아나운서를 자신의 왼편에 두고 브리핑을 한게 이슈가 된 이유가 무얼까. 이는 분명 우리 사회에 은밀히 녹아든 남성위주 헤게모니의 일부다.

많이 참으셨다. 이제 거의 끝물이다. 마지막으로 그림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말 쓸데없어 보일 트집일지도 모른다. 그림에서 남자는 무표정이다. 여자는 미소를 띠고 있다. 항상 웃음을 팔아야 하는 수많은 직업여성들 - 스튜어디스부터 마트 계산대 직원까지-이 생각난다. 정치의 영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남자는 안경을 쓰고 있다. 여자는 아니다. 하다못해 이것까지 시비를 거냐고? 글쎄. 대학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학내 캠퍼스에 안경을 쓰고 다니는 여자 학생들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 그만큼 여자들이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에 그런거 아니냐고? 그것도 어느정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은 어째서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을까. 나는 고위직 남성이 렌즈를 착용한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내가 그들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우OO 수석이 착용하는 안경의 도수가 어마어마하다는걸 간파하고는 의문이 들었다. 마이너스 8디옵터의 시력을 자랑하는, 눈을 콩알만하게 만드는 고도근시 안경에 콤플렉스를 느끼는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렌즈를 지속적으로 착용하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찮다. 안구건조증이 생겨 눈이 계속 마르고, 따가우며, 뻑뻑해진다. 인공눈물을 달고 살아야 한다. 난시가 심할 경우 소프트렌즈로는 시력이 완전하게 보정이 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누군가는 안경을 쓰지 않는다. 버티다 못해 차라리 라식 수술을 할 지언정.


정치인들이 외모에 굳이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의정활동만 잘 하면 됐지. 그렇지만 나는 애초부터 신경쓸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 더 신경쓰인다. 구속수감된 이후 아이라인을 그리지 못하고 렌즈를 더이상 끼지 못해 안경낀 초췌한 모습으로 조롱당하던 조윤선을 떠올려 보자. 나는 눈썹을 그리지 않고 본회의장에 출입하는 여성 위원을, 그리고 기초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욕을 먹는 남성 국회의원을 단 한번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에겐 얼굴 위에 걸치는 안경이, 다른 이들에게는 안구를 덮는 렌즈가 디폴트로 여겨진다. 설마 한쪽 성별이 유달리 시력이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남자는 구두를 신고 있고 여자는 하이힐을 신고 있다는 건 더 말하기도 입아프니까 굳이 자세히 풀어 쓰진 않겠다.

무뎌지는건 쉽다. 불편해지는건 귀찮고 어렵다. 따라오는 거부감 역시 당연하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바른" 길을 걷고 싶다면 이런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자주 하던 이야기인데. 너무 좋은 반면교사가 있어서 쓴소리를 길게 했다. 언짢으실 바른정당 지지자들분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래도 바른정당 정도 되니까 이런 글도 쓰는 거라고 말하면 위로가 될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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