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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Dec 17. 2015

탐독과 편독의 경계에서

무언가를 남겨야만 할까?



#1. 


르몽드는 제목을 참 잘 짓는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펴낸 <나쁜 장르의 B급문화>를 읽는다. '마니에르 드 부아'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기대에 부응하는 책은 아니었다. 그럴듯한 제목에 홀려 기대 수준을 높게 잡았다. 세월의 흐름 속에 빛바랜 글들이 많았다. (본 책의 글들은 쓰인 지 10년 이상 지난 것이 대부분이다.)  다른 것들은 왜 아니겠냐만은, '대중문화'는 특히나 더 '시간'에 민감한 가치이니까. 그럼에도 빛나는 지점이 있었다. 'B급 문화'라는 테두리 안에서 평소 우리가 좀체 접하기 힘든 텍스트들을 엮어 냈다는 점.  그중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교원 출판사에서 펴낸 어린이용 전집, '아이작 아시모프가 들려주는 우주이야기'로 내게도 익숙한 작가다.  자신의 유년기와 함께한 '펄프 픽션'에 대한 글이었다. 




#2. 



펄프 매거진, Pulp Magazine. 


20세기 초반에 유행했던 싸구려 소설 잡지를 부르는 말로, 1896년 미국에서 처음 출판되기 시작해 1950년대까지 유행했다. (위키백과) 


내용은 그야말로 장르문학의 종합 선물세트. 모험물, 탐정물, 미스터리물, 판타지, 호러, 오컬트, 로맨스, SF, 서부극, 전쟁물, 영웅물 등등 닥치는 대로 쑤셔 넣었고 강도, 살인, 성, 폭력, 약물을 소재로 하는 등의 자극적인 범죄물도 판을 쳐서 전체적인 질은 종이질에 비길 만큼 낮았다. 그래서 펄프 픽션이라는 단어는 저질, 싸구려 소설이라는 뜻으로 굳어버렸다. (나무위키)


우마 서먼의 관능만으론 요악할 수 없는 영화


많은 이들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로 '펄프 픽션'이라는 단어를 기억할 것이다. 아시모프가 추억하는 조악한 잡지 펄프픽션과,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은 같은 주제를 공유한다. 


아시모프는 진정한 의미의 polygraphe(다방면의 기고가)였다.  5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고, 도서 분류법의 일종인 듀이 십진분류법의 10가지 분류항목 모두에 그의 책이 들어 있다니까 말이다. 그는 고백한다. 마르지 않는 샘에서 물을 길어 올리듯 글을 쏟아낼 수 있는 배경엔 펄프 매거진이 있었다고. 활자에, 읽을거리에 대한 갈망을 주체하지 못하던 어린 소년에게 펄프 매거진은 싼 가격에 독서욕을 충족시키기 좋은 매체였다. 훗날 저명한 과학자 및 저술가가 되어 그는 자신을 '결정'한 시간들은 펄프 매거진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청소년기 이후에 읽은 다른 장르의 책들 역시 헤아릴 수 없을만치 많은데도 말이다. 펄프 매거진이 결정지은 그 순간 이후로 그는 더 이상 이전과 같을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목적 없는 이끎에 우걱우걱 쑤셔 넣은 싸구려 활자는 아시모프식 글쓰기의 모태가 된다. 


 <펄프 픽션>은 '펄프 매거진'에서 제목과 각본상의 모티브를 얻은 영화다. 타란티노는 펄프 매거진만의 특징을 스크린에 독창적으로 옮겨 내었다. 보다 자세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이다. (존 트래볼타가 말이다...! 음..! ).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타란티노의 작품 <킬 빌>에 대해 '취향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 사례'라는 평을 남겼다. 타란티노의 세계를 잘 요약한 한마디다. 그는 뚜렷한 자기 주관과 철학, 코드로 똘똘 무장한 감독이다. 비디오 가게 점원을 하면서 안 본 영화가 없을 정도로 온갖 영화를 섭렵하고 다녔다는 타란티노의 탐식은, 펄프 매거진에 푹 빠져 살았던 아시모프의 그것과 맥이 같지 않을까. 




#3. 

사르트르는 <말>을 발표하고 노벨문학상에 선정된다. 수상은 거부했지만.
정신상태로 보아 플라톤주의자가 된 나는 지식에서 출발해서 사물로 향했다. 나로서는 사물보다도 관념이 한결 현실적이었다. 왜냐하면 내게는 관념이 먼저 주어졌고, 더구나 사물로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세계를 만난 것은 책 속에서였다. (<말 Les Mots>, 장 폴 사르트르)


<말>은 20세기 최고의 지성 사르트르가 남긴 자신의 유년 시절이다. 그는 책장 속에서 태어났으며, 존재의 의미를 부여받았고, 세상을  열어젖혔다. 플라톤은 현실이 이데아(Idea)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어린 사르트르는 그 말을 자신 나름대로 해석한 것 같다. 그에게 이데아는 책 속의 활자였다. 현실은 책을 좇아가는 그림자에 불과했다. 


사르트르는 '영광의 30년'을 이끈 지식인으로 기억된다. 그는 프랑스의 '앙가주망' 정신을 누구보다 충실히 보여준 시대의 등불이었다. 이뿐이 아니다. <존재와 무>, <변증법적 이성 비판>을 통해 실존주의 철학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든 철학자가 아녔던가. 그렇기에 그의 독서기(讀書記)는 우리네들과는 결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읽은 것이 다르니까 다른 사람이 되었겠지.'


아니었다. 그는 그저 손에 걸리는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을 뿐이었다. 마치 세상에 존재하는 글자를 읽어버릴 기세로.  <말>에서 지금도 추리소설을 어느 철학책보다도 더 즐겨 읽는다고 말하던 사르트르. 그는 가려 읽는 편독(偏讀, 치우칠 편) 대신 빠짐없이 읽는 편독(徧讀, 두루미칠 편)을 실천한 진정한 탐독가였다. 할아버지는 영특한 자신의 손자가 소설 나부랭이에 빠져 산다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선비 기질이 다분했던 그에게 진정한 독서의 정의는 조금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사르트르는 그  '하잘것없는' 독서를 통해 실존에 후행하는, 본질을  만들어냈다. 정제되지 않은 독서였음에도 그는 작가로서의 에고Ego를 서재에서 틔워 냈다. 



#4.


언젠가는 알제리에 가겠다. 카뮈의 자취가 말살되었을지라도.


<최초의 인간 Le Premier Homme>은 알베르 카뮈가 우리에게 남긴 최후의 자취다.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 사장이 빌려준 차를 타고 가던 카뮈는 나무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냈고, 명을 달리했다.  <최초의 인간>의 초고는 사고의 충격으로 현장에서 한참 떨어진 장소까지 날아간 가방에서 발견되었다. 


카뮈와 사르트르는 프랑스를, 나아가 전 세계를 대표하는 실존주의 작가였다. 둘은 우호적 교분으로 관계를 시작했지만 이후 알제리 전쟁을 기점으로 노선이 달라진다. 사람들이 두 작가를 세기의 라이벌로 인식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초의 인간>과 <말>은 둘의 관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닮아 있다. 둘 모두 실존주의를 모태로 하지만 사상의 세부내용과 사회적 움직임에서 방향을 달리했듯이, <최초의 인간>과 <말> 역시 자전적 소설이라는 기본적 사실만 일치한다. 소설의 주인공이 사르트르라고 명시되었으며 그의 자아가 깨어나는 과정을 초점화한 <말>. 이와 달리 <최초의 인간>에서 카뮈는 자크Jacques라는 새로운 인물의 탈을 쓰고 있으며 소설 역시 좀 더 시간의 흐름이 긴 일대기적 형식을 취한다. 


같은 점을 하나 더해야겠다. 두 소설 모두 유년기의 독서에 대한 기억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미래에 작가로 성장하는 아이답게, 둘 모두 탐독의 미덕을 스스로 체득한다. 


자크는 알제의 변두리 소도시에서 단연 빛나는 존재였다. 다행히도 그의 재능을 알아본 교사가 있었다. 선생은 자크와 그의 친구 피에르를 책임진다는 조건으로 도시의 상급학교로 보낸다. 실제로 카뮈가 고등교육을 받게 된 데는 그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스승 제르맹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도시로 떠난 자크와 피에르는 도서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공부에 매진한다. 독서,를 공부라 할 수 있다면 말이다.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도시로 유학을 보낸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여가 내지 잡기에 가깝지 않았을까.)


자크와 피에르는 최상의 것들과 더불어 최악의 것들도 집어삼켰다.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든 구절이다. 자크와 피에르는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읽어 나갔다. 도서관에 있는 모든 책을 읽어나갈 기세로.  피에르도 만만찮았지만 카뮈, 아니 자크의 독서는 정말이지 집요했다. 때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책도 있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한번 집은 책인 이상 자크는 절대 놓지 않았다. 설사 거기에서 얻을 결과물이  보잘것없어 보일지라도 말이다. 그들 역시 독서에 특정한 목표를 전제하지 않았다.










#5.


훈련소를 마치고 부대에 전입을 왔을 때였다. 프로필에 들어갈 간단한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단다. 코팅해서 소대 침상에 붙여놓는 용도로 말이지. 사실 자기소개서라기엔 거창한 양식이었는데, 아마 한때 유행했던 '십문십답'정도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다. 항목 중 마지막은 '군생활 목표'였다. 그렇지 않아도 늦게 온 군대였기에 남들과는 다르게 지내고 싶었다. 무언가를 이루고 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입대 반년 전부터 무얼 목표로 할지 고민해왔다. 잠시 생각하다 답을 적어 종이를 냈다.


독서기(讀書記)를 통해 내가 열망하는 모습 되기




#6.


이번에는 '목적의식이 설정된' 독서를 하나의 과업으로 삼았기에, 이를 통해 내가 항상 바라 마지않던 형태의 인간이 되기를 희망하기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고전(古典)에 손을 뻗치고 있다. 

polygraphe, <나는 고전을 읽어낼 수 있는가?>  (https://brunch.co.kr/@polygraphe/1)




군대에 들어온 후 처음이었다. 제대로 된 형식을 갖추고 글을 쓴 일이. 그 첫 글에서, 나는 탐독(耽讀) 대신 편독(偏讀)을 말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독서를 한다고 외쳤다.  '바라  마지않던 형태의 인간', 실천하는  지식인이라는 멀디 먼 이상에 닿기 위해서. 지적 허영이 없다고는 못하겠다. 어찌 보면 씁쓸한 자기고백이다. 내가 사표師表로 삼고 지향하던 모델들은 탐독에서 탄생했으니까.




불안한 독서를 하고 있다. 무언가를 얻어 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생겼다. 내게도 그저 책을 읽는 행위 자체로 즐거울 때가 있었다. 그걸 통해 무언가를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200권을 채우고 싶었다



읽은 책에 번호를 붙이고 있다. 올해의 몇 번째 책인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읽었는지. 좋은 습관이지만 한편으로는 꾸준히 권수를 채워야 한다는 쓸데없는 압박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런 성실성에 회의를 느낀다.





살면서 가장 글을 많이 쓴 해였다. 그중 상당수는 안타까운 흔적이다. 어떻게든 남겨보려고, 현실과의 작은 연결고리라도 보일라 치면 필사적으로 붙잡고 글을 써 내려갔다. 집착하는 독서다. 무의미할까 두려워한다. 돌이켜 볼 때 남은 게 없는 찝찝한 기분이 싫다.






#7.


글을 갈무리하며 아시모프와 사르트르, 그리고 카뮈를 생각한다. 그들의 여정에서 작은 위안을 찾는다. 그런 위로를 얻으려고,  자문자답이라도 하고 싶어 쓴 글이다. 



목적이 선행하지 않아도 변화할 수 있음을, 필요조건이 아님을 곰곰이 되새김질해본다.  어쨌건 간에 이 시간들이 나를 결정지을 시간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8,




천천히 판을 짜자고,  조급해하지 말자고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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