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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Dec 16. 2015

프랑스의 치열함을 그려내다

만화 <68년, 5월 혁명>, 그리고 <쥐>






프랑스에서 68년 5월만큼 고조됐던 한달이 있었을까. 그리고 그 시간이 남긴 유산은 무엇일까. 혁명을 가시적 성과로 판단하는 것은 단안적 태도다. 그럼에도 68혁명은 사회의 이곳 저곳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다. <리베라시옹>지가 창간되었다. 사르트르는 <인민의 대의>를 들고 거리로 나서 시민과 함께하는 지식인상을 구축했다. 페미니즘과 호모섹슈얼 운동이 사회적 추동력을 얻었다. 라르작 마을에서는 시민들이 정부의 군사기지 건설에 맞서 연대를 구축했다.


그 무엇도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68혁명은 정치,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사회의 모든 것을 전복시켰다. 이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사회적, 정신적 코드에 대한 거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랑스의 정신은 68년 5월에 펼쳐졌던 화려한 봄날에 탄생하였다.




<68년, 5월 혁명>은 만화라는 수단을 이용해 격정의 날들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프랑스의 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표현처럼, '제 9의 예술'은 혁명의 흐름을 관조할 수 있게끔 절제있는 표현을 이뤄낸다. 사실 혁명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돌이켜보면 마냥 아름다울수만은 없는 것이다.  


<르 몽드>의 사시社是 중 하나는 기사에 사진을 첨부하지 않는 것이다. <르 몽드>에 실리는 사진은 그 자체가 뉴스며 사건이다. 프랑수아 미테랑이나 피에르 부르디외같은 세계적으로 명망높은 지도자나 석학이 사망했을 때에나 한 번 구경할 수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가져올 수 있는 왜곡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우리가 가진 커뮤니케이션 도구 중 가장 사실적이다. 아니, 사실을 가장 그럴듯하게 재현하는 형태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는 사진의 외형적 특성에 기인한다. 실재했던 순간을 그대로 가져오기에 우리는 이를 여과없이 받아들인다. 적어도 그런 순간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일 테니까!  




바로 그 지점에서 그림에 의한 서술은 힘을 발휘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상을 고발한 아트 슈피겔만(Art Spigelman)의 <쥐>가 좋은 예다.  




<쥐>는 동물을 의인화해서 등장인물로 등장시킨다. 쥐는 유대인, 고양이는 독일인, 돼지는 폴란드인으로 그려진다. 아우슈비츠의 제노사이드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힘들다. 현실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끔찍했기 때문에. 2차대전 종전 이후에 많은 아우슈비츠 관련 매체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은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졌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마련 아닌가. <뉘른베르그에서 뉘른베르그로De Nuremberg à Nuremberg>나 <밤과 안개Nuit et Brouillard >같은 작품은 훌륭한 전쟁 고발영화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보기가 괴롭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인지부조화와 싸워야 하니 말이다.


그렇지만 <쥐>에서 우리는 객체화된 동물들을 통해 참상을 끈기있게 추적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히틀러와 게슈타포의 얼굴이 내내 눈앞에 맴돌지는 않으니까. <쥐> 1권은 출간후 무려 40만부 넘게 팔렸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하는 성과를 거둔다.


만화를 통해 얻어진 거리감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절멸 수용소' 아우슈비츠를 적극적으로 자기화自己化하게끔 만들었다.



<68년, 5월 혁명>은 그 거리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책이다.



이 책은 한명의 전지적 서술자에 의해 씌어진 책이 아니다. 68혁명을 경험했던 각계각층의 사람들, 심지어는 68년 혁명을 직접 겪지 않은 이후세대의 증언까지도 취합하는 형태로 객관성을 확보한다.


구글에 'mai 68 (68년 5월)' 을 검색하면 천편일률적인 그림이 등장한다. 시민들이 스크럼을 짜고 행진하는 모습이라든가, 사르트르같은 지식인이 대중 앞에 서있는 모습, 시위대와 경찰의 대치 상황같은 이미지들. 그만큼 우리가 68년 5월을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도 있겠다. 68혁명은 어느덧 반세기가 지난 일이고 이제는 그 사건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훨씬 많아졌다.








한때 열렬한 마오이스트였던 작중 인물 사미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마오이즘을 떠올린다. 그리고 68년 봄을, 그 5월이 가져온 의미를 반추한다.  


68년 5월은 무엇이었을까.


누군가는 그 시간을 혁명이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운동이라고 말한다. 68년의 5월이 실질적으로 이뤄낸 것에 대한 관점 차이가 다른 명명命名을 부른 것이겠지. 그렇지만 우리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그 봄날의 울림 이후로 프랑스는 다시는 이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주인공은 직선제로 치러진 첫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노태우의 당선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늘상 그랬듯이 부정투표였을거라 자기최면을 건다. '왜 거리가 조용할까? 아하, 혁명의 전야구나. 폭풍의 전은 늘 고요한 법이지. 푹 자두자. '


그러나 다음날, 그 다음의 다음날에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87년 6월은 실패였을까.





68년의 5월은 졌고 6월이 왔다. 찬란했던 봄이 무색하게 드골의 집권당이 다수당을 차지했다. 바뀐 것은 없어 보였다.


한해가 지나고, 69년의 미국에서 우드스탁 페스티벌이 열렸다. 68혁명 이후 유토피아가 도래하지 않았듯이 우드스탁 이후에도 세계평화는 이루어 지지 않았다. 그래도 이 역시 의미가 있다. 한때나마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것이다.



결과가 가시적이지 않다 해서 68년의 프랑스와 87년의 대한민국이 실패한 것은 아니다. 남은 것은 無가 아니였으며, 달라진 것은 시대의 지평 그 자체였다.  




혁명은 대검大劍이다. 한 번 휘두를 때의 파괴력이 지나치게 커서, 굳이 건드리지 않았어도 될 부분까지 부숴 버린다.  


혁명은 태풍이다.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쓸어 간다. 그렇지만 쓸려나간 에너지는 사회의 다른 부분으로 옮겨 나간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새 판을 짤 수 있다.




과거와 새로움 사이에는 그날의 유작밖에 없다!

(다니엘 콩-방디, 유럽의회 의원)



어느덧 중견 정치인이 돼버린 68혁명의 촉발자 다니엘 콩-방디의 회고는 우리를 뭉클한 감상에 젖게 만든다. 그 시간이 남긴 유산은 우리 세대의 몫이다.


부유浮流하는 감성을 배제한, 촉촉함과 건조함의 경계에 있는 책 <68년, 5월 혁명>. 여기에서 우리의 것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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