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s on K's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xXfNpk-ARXA
90년대 브릿팝을 연상시키는 음악을 하는 팀, 그래피(Graphy)의 <Little Monster>를 들었다.
브리티시 팝의 느낌이 물씬 난다. 내가 참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이다. 뭐랄까, 흔히들 브릿팝 하면 떠올리는 여러 밴드들의 장점이 고루 섞여 있는 모양이다.
찰랑거리는 기타 사운드가 마음에 든다. 더 스미스의 조니 마가 생각난다.
리듬이 경쾌하다. 오아시스의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앨범에 담겨 있는 'Hello'나 'Roll with It'이 떠오른다.
나직이 읊조리는 보컬이 즐겁게 박힌다. <The Bends>를 낼 때까지의 톰 요크도 그려진다.
그렇지만 음악을 진지하게 평하는건 나중으로 미루고 싶다. 처음이니까. 그들, 정확히는 그래피의 기타리스트 'K군'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기타를 치는 K군과 알게된지가 어느덧 4년이 훌쩍 넘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만난게 처음이었는데, 뒷풀이 자리에서 존메이어와 오아시스 얘기를 하며 서로 말을 텄다. 음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리였다. 기억에 남는거라곤, 장기자랑을 시키니까 뜬금없이 '라 밤바'를 불러제끼던 옆테이블의 동기 정도일까.
그때까지는 K군에게 대단한 관심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냥 '음악을 꽤 진지하게 좋아하는구나' 정도였겠지.
한달쯤 후, 내가 속해 있던 과별 밴드 소모임에 그가 신입 부원으로 들어왔다. 수줍어하며 펜더를 꺼내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아 보였다. 잔뜩 흥분한 고학번 선배들 사이에서 그는 수년간 단련했을 온갖 기예를 선보였고, 모두들 열광했다.
확실히 그의 실력은 일반적인 취미 수준을 한참 넘었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교에 이런 레벨의 연주자는 흔하지 않다.
궁금했다. 과연 이 친구는 무얼 하고 싶을까?
맥주잔을 기울이며 물었다.
너는 앞으로 뭐 하고 싶어? 음악으로 나갈거야?
아니, 난 음악은 아니야. 좋지만 이걸로 돈은 못 벌거같아.
그냥.. 나중에 직장인 밴드 들어가서 계속 기타칠 정도만 되면 좋겠다.
다소 의외였지만, 가장 현실적인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국에서 밴드로 스타가 된다, 돈을 번다를 떠나 생계 유지를 하는게 어디 쉬운가.
다른 동기들보다 유독 현실적인 K군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런 그가 이중전공으로 경제를 골랐다는사실에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K와 함께 했던 새내기배움터에서의 즐거운 공연을 마지막으로, 나는 기타를 놓았다. 군대에 가야 했다.
그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K는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K는 열심히 기타를 치고 있다. 늘 그랬지만, 여태까지와는 결이 좀 다른 진지함이다.
그는 밴드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온 이래로 항상 밴드에 소속되어 있긴 했지만, 전부 학교 내의 동아리 수준이었다.
이제는 다르다.
클럽 <빵>에서 매달 공연을 하고, 이머겐자에서 경연을 하며, 정식 음원까지 있는 밴드의 세션으로 들어갔다.
K는 그렇게, 진짜 음악인으로의 길을 선택했다.
왜냐고 물었다. 너 원래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지 않냐고.
답이 돌아왔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모범적인 답안.
그냥, 이렇게 끝내기 아깝더라고. 후회할 것 같아서. 하는데까지 해보고 싶었어.
자기가 할 수 있는데까지 해보고 싶었다는 동기, 참 뻔하다. 그래서 확 와닿는다.
배나온 아저씨들이랑 같이 직장인 밴드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던 4년 전의 K.
그랬던 그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밴드 그래피의, K의 앞날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