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도록 푸른 날에는 말이지
음악을 수능 공부하듯이 찾아 듣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K-POP STAR의 박진영 사장님께서 누누이 강조하지만, 음악으로 이끌어주는 음'학'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냥 즐기면서 외연을 확대하기엔 시간도 부족하고 마음의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와중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점령해나가기 시작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리스트를 하나하나씩 지워가는 문학소년이 그런 모습이려나. 미국의 <Rolling Stone> 매거진에서 선정한 '500대 명반'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만만하게 눈에 들어온 것이 경향신문과 가슴네트워크에서 선정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이었다. 아예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있기에 도서관에서 빌려 본격적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리스트의 최상단은 이름을 들어본 아티스트와 앨범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4위와 11위에 올라 있던 '어떤날'만 빼고. 도대체 어떤 팀이길래 두장이나, 그것도 제일 꼭대기에 올려놓은 것일까. 그리고 왜 이런 팀이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일까.
첫 번째 의문은 금방 풀렸다. 어렵사리 찾아간 링크에서 어떤날의 1집을 들었기 때문이다. 미쳤다,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들었다. 담백하고 깔끔하면서도 고조되어가는 순간들이 병존했다. 뒤통수를 강하게 한대 얻어맞은 느낌에 제작 연도를 찾았다. 1986년. 90년대 중반 르네상스를 맞은 한국 인디음악의 모태는 10년 전의 어떤날이었구나.
두 번째 의문은 아직도 제대로 풀리지 않았다. 음악의 소비 양태가 아무리 달라졌다곤 해도, 들국화와 산울림을 아는 90년대생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현세대에게 어떤날의 인지도는 안타까우리만치 미약하다. 아마 콘서트 한번 없이 앨범 두장만을 달랑 내놓고 각자 갈길을 간 조동익과 이병우의 '쿨'함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어떤날은 응당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인디씬의 수많은 밴드들이 그들에게 음악적 빚을 졌고, 우리가 그것을 향유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많은 이들에게 음악은 순간으로 기억된다. 어떤날은 조금 다르다. 어떤날의 음악은 삶의 어느 순간에 꺼내 들어도 그 순간과 조응한다. 와인과 곁들이는 치즈 한 조각처럼, 부추전과 즐기는 막걸리 한 사발처럼. 그들의 음악은 희로애락이라는 상반된 감정들을 감싸 안을만한 포용력을 지녔다.
싱글 한곡만을 꼽는 건 무의미하다. 그렇기에 반드시 앨범채로 들어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한 곡을 꼽자면, '그날'이 어울리겠다. 시리도록 푸른 곡이니까. 오늘같이 맑은 날에 더없이 잘 어울릴 노래이다. 먹구름이 자욱할 내일일지어도, 마찬가지겠지만.
https://www.youtube.com/watch?v=wRdg1nolU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