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만들어 내는 생각을 떠올리며
https://www.youtube.com/watch?v=GeUP5zXKx3A <혼자 추는 춤>.
싱글을 구매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라 믿는다.
머리털이 쭈뼛쭈뼛 선다. 신경줄이 닳아버릴 만치 좋다. 언니네 이발관이다.
이발관 노래는 가사 하나하나가 가슴을 저민다. 그런데 정작 밴드의 리더 이석원은 가사를 가장 나중에 붙인다. 놀랄 노릇이다. 가사와 노래가 이렇게 합이 잘 맞는 밴드를 찾기란 쉽지 않으니까. 차라리 가사를 먼저 써놓고 멜로디를 붙였다고 하는게 더 어울리겠다 싶을 정도로.
오늘은 나의 스무번째 생일인데 참 이상한건 멀쩡하던 기분이
왜 이런날만 되면 갑자기 우울해지는걸까
난 정말 이런날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오늘은 나의 스무번째 생일이라 친구들과 함께 그럭저럭 저녁시간
언제나 처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 이유도 없이 왜 이리 허전할까
나 이런 기분 정말 싫어 너희들의 축하에도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어제와 다른것은 없어 그렇지만 기분이 그래
내일이 와버리면 아무것도 아냐
오늘은 나의 참 바보같은 날이었어 친구들과 함께 저녁시간 보낸후
언제나 처럼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별 이유도 없이 왜 이리 허전할까
나 이런 기분 정말 싫어 너희들의 축하에도 이런 기분 정말 싫어
별스러운 축하에도 이런 기분 정말 싫어
<생일기분>, 비둘기는 하늘의 쥐(1996)
괜스레 우울해지고 싶을 때면 1집의 <생일기분>을 듣곤 한다. 가끔 찌질할정도로 꼬인 그 감성이 생각날 때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곡을 듣고 멜로디가 가사를 받쳐준다고 생각할 것이다. 훅이 있는 노래도 아니고, 멜로디를 통해 가사가 일차적으로 형성한 불편한 감성을, 재차 몽글몽글 피워 내는 모양새니까. 사실 그 반대인데.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선후관계다.
보통 생각을 하고 말을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말을 하면서 생각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있다. 글이 글을 낳듯이, 정신없이 쏟아내는 말 속에서 생각이 가지런히 정리되는 사람이 있다.
이발관의 노래는 편집증적인 사운드의 정립 속에서 태어난다. 그 병적인 집착은 노래에 어울리는 가사를 피워낸다. 멜로디를 위한 멜로디가 결국 가사까지 만들어낸다.
생각해보면 이발관 노래에는 하나같이 기가 막힌 제목이 붙어있다. 미움의 제국, 어제만난 슈팅스타, 가장 보통의 존재. .. ... .... .....
어떻게 보면 애도. 라는 제목은 지나치게 심플하다. 제목만으로 특징을 예단(豫斷)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그 오만하리만치 짧은 제목이 노래를 너무나 잘 나타낸다.
5집에서 이석원은 앞으로 킬링 싱글 내지 죽여주는 훅을 넣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곡이 완성도에 올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후 7년이 더 지났다. <애도>와 <혼자 추는 춤>이 오랜 기다림 끝에 나왔다.
이발관은 본인들의 목표를 멋지게 이뤄냈다. 완벽한 곡들이 나왔다. 그런데 한편으론 속은 기분이 든다.
가사가 안들릴만큼 멜로디도 지나치게 좋다. 완성도를 떠나 그냥 이것들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노래다.
CD가 갈릴 때까지 들어도 질리지 않을 곡이 나왔다. 두곡이나.
더 즐거운 사실이 있다.
The best is yet to come.
아직 기다릴 순간이 남았다. 정규 6집이 곧 나올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것들을 쉽사리 내놓지 않는 이발관의 지독한 습관을 생각한다. 조금만, 아니 어쩌면 몇년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힘든 기다림을 조금만 더 참아 보자. 우리가 맛볼 최고의 음악이 익어가고 있음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