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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Feb 21. 2016

쥐는 너야

알베르 카뮈, <페스트 La Peste>, 그리고 악의 평범성





악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악의 무고함을 주장하는 이들을.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 항변했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같은 거창한 사례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도처에 널려 있기에 더 큰 충격을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고발문학으로 읽힐 수 있는 작품이다.  






악은 어떻게 규정지어야 할까. 악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설정해야 할까. 자신에게 영혼을 팔라고 꼬드기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정도는 되어야 하나?


, 1926년.



그런 면에서 작중 타루가 회상하는 아버지는 참으로 애매한 존재다. 분명 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판사였던 타루의 아버지는 사회의 이름으로 죽음을 선고하려는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정의감이 투철하고 소명의식이 뚜렷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아버지 밑에서 타루는 지워질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오래전부터 '페스트'로 고통을 앓아왔노라 고백한다. 사회의 악인들을 상대하면서, 그들에게 죽음을 언도하던 그의 아버지는 사회에서 '악역'을 담당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맡아야 하는 그것 말이다.




그렇지만 그런 냉혹한 아버지가 꼬박꼬박 외우던 기차 시간표에서 타루는 이질감을 느꼈으리라. 악은, 그렇게 평범하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순간에 더 비참해진다.





몇년전 연쇄살인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강호순의 사진이 주요 신문의 머릿기사를 장식한 적이 있다. 기사에는 그가 애지중지 길렀다던 강아지와 함께한 사진이 실렸다. 사람들이 그렇다. 십수명을 무참히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집에 돌아가면 한 생명체를 금이야 옥이야 아꼈다는 사실에 소름끼쳐하면서도, 이끌린다. 악의 평범성은 그렇게 묘한 구석이 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된다. 간단한 이유다. 페스트 환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살아가는 사회가 사형선고를 기반으로 세워져 있기에, 그는 그 사회와 투쟁함으로써 살인행위와 맞서야겠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어쨌든 사형도 살인이다. 그렇기에 인간이 '합법적'으로 생명여탈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지금 이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타루는 생각한다. 자신의 아버지같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삶을 이어왔음은, 곧 수천명의 죽음에 대한 간접적 동의라고.  그래서 그는 오랑 시에서 페스트를 접하기 이전에도 페스트를 앓아온 것과 같았다 생각한다. 그 죄책감의 화살은 나역시 살인자였다는 결론에 날아와 박힌다.



더이상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할 바를 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사회에서 찝찝한 목숨을 부지해 왔던 우리가 놓여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이미 저지른 악을 떨쳐내고,  최소한의 악만을 범하기 위하여.








누구나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
그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다.




병균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존재한다. 방심하면 남에게 들러붙게 된다. 나 혼자 덜 건강하고 말 일이 아니기에, 우리는 이를 떨쳐내기 위해 부던히도 애를 써야 한다.







<페스트>에는 악이 존재한다. 그 악은 범죄자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형을 언도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페스트'라는 질병일지도 모른다. 또는 그 질병을 옮기고 다니는 쥐일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라면, 그 모든 것이 악일지도 모른다. 모든 존재가, 모두가, 조금씩은 악을 가지고 있으니까.





평범하다고 해서 납득해서는 안된다. 이것이 타루와 리유가 내린 결론이다. 보건대라는 레지스탕스 활동을 통해서 그들은 당연하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악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온다.






그로 인해 비범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타루와 리유는, 차악보다는 조금 더 나아갔을 것이다. 대단한 한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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