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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Feb 25. 2016

프로듀스 101과 마이너리거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올까요?




콜-업. 메이저리그 베이스볼(MLB)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표현이다. 콜업은 마이너리거들을 메이저리그로 승격시키는 '부름'을 말한다. 모두들 주지하고 있다시피, 메이저리그는 별들의 전쟁터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다. 미국, 캐나다, 카리브해 연안의 북중미, 극동아시아 일대의 야구 꿈나무 중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선수의 비율을 말하자면 소숫점 여러개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메이저리거는, 데뷔만으로도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 여겨진다. 일례로 미국의 방송사에서 광주일고에 취재를 온 적이 있었다. 최희섭-김병현-서재응 트리오가 활약하고 있을 때였다. 한 고등학교에서 한명 배출하기도 힘든 메이저리거가 무려 3명씩이나, 그것도 동시에 뛰고 있었으니 신기할 만도 했다. 그렇기에 마이너리거들은 오매불망 콜업될 날만 기다린다. 그리고 콜업은 그자체로 이미 절반의 성공이다.




서재응, 김병현, 최희섭







안타깝게도, 모든 분야가 데뷔만으로 그런 성취를 거머쥐게 해주지는 않는다. 요즘 화제거리를 몰고다니는 <프로듀스 101>을 보자. 더블킥 엔터테인먼트의 허찬미는 데뷔를 두번이나 했다. 심지어 SM에서 소녀시대로 데뷔할 '뻔'했던 역사도 있다. 무려 '그' 소녀시대다. 그렇지만 9년 후, 허찬미는 10년차 연습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한참 어린 동생들과 부대끼며 온갖 수모를 겪어내고 있다. 그나마 붙기라도 하면 다행이겠는데, 1차 순위발표에서 15위에 그쳤기에 반전을 꾀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MBK엔터테인먼트의 기희현과 정채연은 다이아라는 그룹으로 이미 데뷔를 했지만 잠정탈퇴라는 카드까지 빼들어가며 프로그램에 합류했다. 이렇게까지 절박하게 해야 하는 이유는 무얼까.




프로듀스 '101'이지만, 우리는 단지 몇몇 소녀만을 기억할 뿐이다



간단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중들의 '부름'을 받을 수 없으니까. 이 부름은, 그리 순순히 따라오지 않는다. 야구선수들의 그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기나긴 연습생 생활을 마치고 팀을 꾸려 걸그룹으로 데뷔하는 것은 유망주 선수가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 마침내 메이저리그에 오르는 것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다.





걸그룹의 성공을 진단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 '인기'라는 가치로 압축된다. 그런데 이 '인기'라는 걸 얻는게 그리 녹록치 않다. 정답이 적힌 족보도 없으며, 도달하는 과정도 굉장히 임의적이다. 물론 SM의 레드벨벳이나 JYP의 트와이스같은 그룹은 인기스타의 지위로 그들을 인도하는 순탄한 길을 걷겠지만, 이들은 극소수의 예외라 보는 편이 알맞다.  이런 '탑 티어' 걸그룹을 걷어내면, 그 밑에 버글대는 수많은 소녀들을 만날 수 있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트와이스





<프로듀스 101>은 그렇게 장막이 걷히고 남은 연습생들을 전지적 시점에서 조망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주 대놓고 말이다. 사실 그동안에도 걸그룹의 명멸은 대중들에 의해 결정되어 왔다. 간접적으로 말이다.  우리는 밝은 부분만 보아 왔다. 혹은 그러고 싶었거나. 매주 'HOT DEBUT'라는 타이틀을 달고 음악방송에 나온 걸그룹 중 우리가 기억할만큼이라도 자리잡은 소녀들이 몇명이나 될까? 그 나머지는 모두 사라지고 잊혀졌다. 차라리 잊혀진 이들은 조금 낫다. 잠깐이나마 기억에 박혔다는 말도 되니까. 어차피 이 세계가 그렇고 그런 것이라면, <프로듀스101>은 국민에게 소녀들의 생사여탈권을 부여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아주 성공적이다. 비난의 목소리가 있긴 하지만 그걸 묻어버릴만큼 파급력이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라는 말이 있다. 걸그룹이 '인기'를 먹고 활동한다면 프로야구선수는 '돈'을 위해 운동한다. 십수년동안 한 구단에 몸담은 프랜차이즈 스타라 해도 더 높은 금액을 제시한 구단의 오퍼를 받으면 백이면 백, 뒤도 안돌아보고 옮겨가곤 한다. 데뷔를 하고도 인기를 얻기위해 기약없는 몸부림을 지속해야 하는 소녀들과 달리, 마이너리거들은 메이저리거가 된 순간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사원복지가 철저하기 때문이다. 단 하루라도 메이저리그 선수로 등록이 되면 은퇴후 평생 '연금'을 수령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연금의 액수는 활동한 기간에 따라 결정된다. 성적은 전혀 관련이 없다. (성적이 일정 정도는 나와야 빅리그에 붙어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아주 무관하지는 않겠지만) 때문에 '그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전소미 화이팅




JYP엔터테인먼트의 전소미는 콜업이 잠시 늦춰진 유망주다. 소미는 2001년생의 어리디 어린 소녀기에, 야간에는 연예활동을 할 수 없도록 법의 보호를 받는다. 아마 <식스틴>을 통해 트와이스로 데뷔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마이너리그로 치자면 전소미는 베이스볼 아메리카 (BA) 선정 유망주 리스트의 최상단에 이름이 오른 유망주다. 소위 말하는 '탑티어'다. 이정도 레벨이면 어차피 뜨게 되어 있다. 근 몇년간 BA에서 선정한 1~5위의 탑티어 유망주 중에서 콜업당해 올라간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데뷔도, 성공도, 시간문제다. 조금 늦게 터져도 상관없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는 1라운더 린스컴을 몇년간 잘 굴려먹어 우승까지 두차례 차지했다. LA 다저스는 이런 린스컴을 걸렀다. 그렇지만 아무도 그들을 책망하지 않았다. 린스컴을 거르고 다저스가 선택한 선수는 바로 그 '클레이튼 커쇼'였으니까. 커쇼는 린스컴보다 다소 늦게 데뷔했고, 실력 발휘에 시간이 좀더 걸렸지만 역사상 최고의 투수가 되는 길을 걸어 가고 있다.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저정도 랭크의 선수들 사이의 커리어라면 더더욱 그렇다. 트와이스가 린스컴이고 전소미가 커쇼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린스컴 - 커쇼 (출처: ESPN)







그래도 보여준게 적지 않다




인기투표를 싸그리 쓸어가는 대찬 후배들을 보고 씁쓸해 하고 있을 존재가 있다. 더블킥의 허찬미다. 빅리그에 두차례나 콜업되었지만 이렇다할 것을 보여주지 못한 채 마이너리그로 다시 내려와 마지막 칼을 갈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예전같지가 않다. 더 잘난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다. 받아온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며 나이를 먹어가는 선수를 야구에서는 '노망주'라고 한다. 허찬미는 노망주가 되기 직전의 경계에 놓여 있다. 이번에도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나가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른다. 아직 메이저리거의 '연금'같은 보험을 들어놓지 못한 그녀의 마음은 조급할 것이다. 발전 없는 늪에 빠져있다가 뒤늦게나마 불펜으로 전향해 빛을 발한 루크 호체이버가 될지, 99년도 BA랭킹 1위를 차지하고도 그저그런 선수로 커리어를 마감할 브루스 첸이 될지는 그녀에게 달려있다.





마이너리그는 계단식 구조다. 루키-싱글A-더블A-트리플A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보통 최고수준 유망주들은 트리플A를 거의 건너뛰기에 꼭 저 구조가 실력을 절대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바로미터가 되기엔 충분하다. 2015년에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연상케 하는 슬래시라인을 보여준 브라이스 하퍼. 그는 마이너리그를 단계별로 차례차례 폭격하고 콜업된 선수였다. 그의 성공은 예견돼 있었다.




프로듀스 101에도 랭크가 있다. A부터 F까지. 101명중 불과 11명만이 데뷔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생각한다면, 사실상 B랭크 밑의 소녀들은 가능성이 희박하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소녀들은 어떻게든 한단계라도 올려보려고 안쓰러울만치 애를 쓴다. 다행히도, 초기의 낙인은 벗겨낼 수 없을만큼 절대적이진 않다. 레드라인 엔터테인먼트의 김소혜가 좋은 예이다. 김소혜는 연습생으로는 낙제다. 초등학생 연습생만도 못한 실력이다. 노래로 보나 춤으로 보나 데뷔할 수 없는 정도의 수준이다. 그래서 처음의 진단에서 F랭크를 받았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한가지 툴(tool)이 있었다. 매력이다. 김소혜는 매력이라는 원툴 선수지만 이를 십분 활용해 1차 결산에서 11위라는 기적적인 성과를 거둔다. 이 과정에서 김세정이라는 조력자를 만나 노래와 춤을 눈뜨고 못봐줄 수준에서 약간이나마 발전시켰긴 했지만 말이다.  



상어~ 상어~






마이너리거들은 서로간에 동료의식이 강하다. 눈물젖은 빵을 같이 씹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언제가지나 같은 지평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당장은 같이 고생하더라도, 언젠가는 내 옆에 있는 저 친구가 빅리그에 콜업되어 스타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서로는 어렴풋이나마 그걸 알고 있다. 누가 더 먼저 불려갈 것이고, 누가 더 성공할지를. 왜 모르겠는가. 애당초 지명된 순서가 다르고, 체격이 다르고, 던지는 공의 빠르기가 다를 것인데.




빅리그에 진출하기 전에도 이런 격차를 뼈저리게 확인시켜 주는 무대가 있다. 바로 '퓨처스게임'이다. 마이너리거들의 올스타전이다. 추신수 선수도 경험한 바 있는 무대다. 해당년도 퓨처스 게임에 얼굴을 비추는 유망주들은, 높은 확률로 다음해에는 메이저리그의 그라운드를 누비게 된다. 빅리그의 단장과 감독에게 미리 선보여지는 쇼케이스라 보아도 좋으리라.


크로포드와 조이 갤로. 둘 모두 소속팀에서 애지중지 하는 선수들이다.





아마 프로듀스 101에서 선발된 11명은, 퓨처스게임에 선발된 마이너 올스타와 같은 존재일 것이다. 높은 확률로 빅리그에서도 '포텐'이 터질. 김세정이나 강미나, 주결경 정도의 연습생이라면 설령 프로듀스를 통해 데뷔한 결과가 신통치 않더라도 이후에 원래 준비하던 '본진'으로 돌아가 다시 나오면 그만이다. 여유가 있는 것이다. 본인들의 능력도 뛰어나고 소속사도 든든하다. 때문에 앞으로 뽑힐 11명은 이미 어느 정도의 성공은 깔고 시작하는 '연예인'들이다.











꽤나 막막한 현실이다. 데뷔도, 인기도, 성공도 이미 임자가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완전히 놓기에는 이르다. 역대 최고의 포수 슬러거 마이크 피아자(Mike Piazza)같은 케이스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아자는 야구선수로는 낙제판정을 받은 선수였다. 부유한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빽'으로 테드 윌리엄스에게까지 타격 레슨을 받고서도 62라운드 1390번으로 뽑혔다. 20라운드 밖의 선수는 사실상 메이저리그 입성이 힘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는 메이저리그의 그라운드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명예의 전당에까지 입성했다.  피아자는 풀타임 15년 동안 단 한 시즌도 100삼진을 당하지 않으면서 통산 3할 타율을 유지한 400홈런 타자다. 굳이 포수 출신으로 한정짓지 않더라도 그는 손가락에 꼽을만큼 꾸준하고 강력한 타자였다. 마이너리거 시절의 피아자는 원 툴 (one-tool) 선수였다. 그에게는 타격뿐이었다. 그렇지만 그 도끼는 매우 강력했고, 그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당해에 1390번째로 뽑힌 선수가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선수가 될 것이라 그 누가 예상했을까.





퓨어(?)히터, 마이크 피아자. 약물논란은 제쳐두..자.





101명중에 61등 안에도 못들어서 조기탈락을 했다고 해도 끝은 아니다. 미약할진 몰라도 희망은 남아 있다. 그걸 실현시키기는 것은 이제 개개인의 몫이다. 기본적인 안무 하나 소화해내지 못했어도 데뷔조에 들 가능성이 높아진 김소혜처럼, 유망주 취급도 못받는 하위라운드 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명예의전당에 자신의 동판을 새긴 피아자처럼, 누군가는 자신에게 씌워진 한계의 굴레를 벗어 던질 것이다.







쨍 하고 해뜰날, 그 누군가에게는 돌아올 지도 모르겠다. 기약없는 희망이기에 포기하고 싶다면 그건 본인의 자유다. 맞다. 잔인하다. 그렇지만 이미 그정도는 감수하고 시작한 일 아닌가.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그래도 전소미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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