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시민, 그리고 민중과 인민의 쓰임
영어의 people, 불어의 peuple를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뭐가 좋을까.
논쟁이 필연적으로 따라올 주제다. 지금은 그때그때 눈치껏, 입맛대로 사용하고들 있지만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는 역시 '국민國民'이다. 이 단어에서 인간은 국가의 부분집합이다. 국가는 하나의 실체로 기능하며 인간 이상의 권위를 지닌다. 그런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 예속을 바라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시민市民'은 어떤가. 물론 좋은 단어지만, 범위가 다소 국한된다. 시티즌(citizen)과 시투아엥(citoyen)같은 단어도 결국 해당 사회의 구성원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시민'이 풀뿌리 민주제를 이루는 기초적 결사체임을 확인하는 정도의 의미일까. 가장 민주주적인 단어지만 일반적인 활용엔 다소 무리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저렇게 쳐내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인민人民'과 '민중民衆'정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 단어들을 좀체 사용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사실, '넌씨눈'이 아니라면 안 쓰는게 이롭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말이다. 손톱만한 정치성의 드러냄마저도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 이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리에게 '인민'은 곧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이다. 자동적으로 북한과 연결된다. 다음은 구글에 '인민'을 검색한 결과다. 우리에게 인민은 곧 북한이고 북한은 인민의 집합체다. 인민은 사실상 '빨갱이'에서 크게 떨어져 있는 단어가 아니다.
때문에 '사람 인人'자를 사용하는, 사실상 제일 알맞는 워딩임에도 우리는 이 단어를 무시할 것을 강요받다. 민중도 마찬가지다. 인민에 너무 학을 떼니까 차선책으로 사용하는 어휘인데, 이마저도 막혀가고 있다. 어쩌란 말인가. '민중총궐기' 를 위시한 소위 '반사회세력'에서 즐겨 사용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게 우리에게 남는 선택지는 없어진다.
결국 남는건 하나다. '국민'. 결코 'people'로 환원될 수 없는 개념. 사회가 사람에 선행함을 상징하는 단어. 이를 언제쯤에나 던져버릴 수 있을까나.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의 언설은 우리말로 바꿨을 때는 처음의 그 뜻대로 온전히 전해지지 못한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과 아예 다른 말이다. 후자의 '인민'은 사람으로 치환되어도 어색하지 않지만, 전자의 '국민'은 사람이라는 단어로 대체될 수 없다. 국민은 사람보다는 국가와 더 가까운 단어다.
'저녁이 있는 삶'이 내 미감엔 더 좋았다. 그래도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도 충분히 괜찮았다. 우리 정치계에서는 거의 처음이었으니까. 국가보다 사람을 먼저 들고 나온 캐치프레이즈가.
그 정당은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민족과 더불어', '국민과 더불어'라는 문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들의 근본이념은 크게 어디로 가지 않았겠지만, 불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르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더 씁쓸하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남는 것은 국민뿐이란 말인가.
(커버 이미지 출처: http://theodysseyonline.com/tcnj/the-fascinating-features-people/219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