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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Jan 27. 2016

병역의 카르텔

어쩌면 미필적 고의


희비가 갈린다. 붙었다는 함성이 들린다. 떨어진 사람들은 침묵한다. 페이스북에 합격 인증샷이 올라온다. 11월 초마다 캠퍼스에서 매년 보이는 풍경이다. 그래, 캠퍼스다. 고등학생들이 수능을 치를 무렵 남자 대학생들은 1년만에 또다른 합격을 절실히 기다린다. 카투사 추첨을 말이다.




꼭 카투사만 이런 것은 아니다. 의무경찰, 의무소방, 그리고 공군 합격도 정도는 약간 덜하지만 비슷하다. 기뻐하고, 축하해주고, 부러워한다. 왜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꿀을 빨 수 있으니까








조선일보에서 2014년에 내놓은 통계자료다. 의무경찰의 경쟁률이 20:1을 넘긴 것을 관찰할 수 있다. 공군도 10:1에 육박하는 경쟁률이다. 물론 육군도 높은 경쟁률이다. 그러나 의경-공군의 경쟁률과 육군의 경쟁률은 숫자뿐만 아니라 내용도 다르다. 전자가 고르고 골라진 선별된 인원들의 각축전이라면, 후자는 밀리고 밀려 어떻게든 들어가려는 마음급한 예비장병들의 모임이다.




다음은 Jtbc의 시사대담프로그램 <썰戰>의 한 장면이다.




약간 거친 일반화긴 하지만, 대체로 맞는 이야기다. 머리가 좋고 집안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혜택을 누리기 훨씬 수월하다.


훈련소에서 의무경찰 자원들은 따로 분류된다. 그리고 육군 훈련병들과는 다른 장소에서 훈련을 받는다. 논산 훈련소 우리 소대에는 '인서울' 아래가 없었다. 열네명중에 'SKY'만 네명이었고, 나머지도 서울소재 유명 대학에 재학중이었다. 누가 봐도 선별된 인원이다. 무작위로 선발했다면 절대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없다. '인서울' 끝자락 대학교에 진학중인 동기가 볼멘소리를 터뜨릴 정도였다. 그친구도 상대적으로 보면 대한민국 입시판에서 상위 10% 안에는 들었을 친구였다. 그렇지만 분대원의 절대다수가 상위 3% 안에 속하는 상황에서는,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학벌'만'을 기준으로 의무소방과 의무경찰, 카투사를 선발한다는 것은 음모론에 가깝다. 적어도 2016년에는 말이다. '의경고시'라는 말을 듣던 의무경찰은 추첨제로 전환되었다. 한때 사시, 행시, 외시, 카시라는 말까지 붙었던 카투사는 오래전부터 일정기준의 영어점수(이마저도 높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TOEIC 780은 지나친 기준이라 보기에는 어렵다.)를 넘기면 뺑뺑이를 돌렸다. 非SKY를 찾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였던 공군은 수능과 내신기준이 너무 높다는 비판을 받고 선발방식을 바꿨다.


장벽은 분명 존재했지만 적어도 보이기는 했다. 기준이 다소 높았어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지방대'에도 TOEIC 780정도를 충족시키는 학생은 굉장히 많다. 의지와 노력이 수반된다면 지원할만하다는 이야기다. 의경은 더욱 그랬다. 아예 학벌 기준선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텔은 형성되었다. 불평등의 연결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과정이 투명하게 열려 있다 해서 결과가 반드시 그렇게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무슨 말일까. 이는 '정치적 평등'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이론상으로는 그렇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 다른 정치적 권능을 가지게 다. 타고난 환경과 속해 있는 집단에 따라 소유하는 힘, 접근성, 그리고 정보의 질이 갈린다. 장,차관급 고위 공무원과 국회의원의 출발점은 대개는 일반인들과 다르다. 정치적으로 평등하지만 정치적 권능은 천지차이다. 결국 이름뿐인 평등이 되는 것이다.




일반고 학생들은 대체로 육군으로 군복무를 선택한다. 별 고민 없이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 대세다. 딱히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도 없다. 어떻게 해보면 '꿀을 빠는' 군대로 빠질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지만 주위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한번 다녀오는 군대, 제대로 다녀와."




특목고 학생들은 자신의 미래를 꼼꼼히 설계한다. 1분 1초의 시간도 허투루 보내기는 싫다. 그래서 '꿀을 빨면서' 자기계발을 하고 싶어 한다. 설사 그곳이 군대라도 말이다. 주변의 선배들, 친구들은 이미 그런 길을 따라 자유도가 높은 의경, 의방, 카투사, 공군에 입대했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준비를 해서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수행한다. 귀찮아서, 시점이 애매해서, 복학이 밀릴 것 같아서 속편하게 육군에 지원하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일갈이 따라온다.


뭣하러 고생을 사서 하냐?





눈에 띄는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이 낳은 '차이'는, 차별에 가까운 계급도를 그려낸다. 속된 말로, '끼리끼리 노는'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출처: http://news.smpa.go.kr/enewspaper/articleview.php?master=&aid=476&ssid=1&mvid=34)







미필적 고의  [dolus eventualis, 未必的故意]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어떤 범죄결과의 발생가능성을 인식(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결과의 발생을 인용(認容)한 심리상태.  



'아무나 의경이 된다면 나는 의경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표어가 보인다. 의무경찰 홍보 페이지에서 긁어온 자료다. 불편하다. 저 의기양양함이. 남들과 다르다는, 저 일종의 선민의식이 거북하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능력대로 대우받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고. 그게 문제다. 누구에게나 동등히 적용되어야 할 '의무'의 영역에까지 시장의 논리가 적용된다는 점이 말이다.




어쩌면 이는 미필적 고의일 것이다. 시장논리에 의해 또하나의 카르텔이 형성될 것을 뻔히 알았음에도, 이를 방조한 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단 말이다. 이에 메스를 들이대지 않은 '높으신 분들'이여. 그대들의 설계는 이토록 정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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