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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Feb 13. 2016

분개할 일에 분개하기

새누리당 예비후보 조은비, 그리고 옐로 저널리즘





정치는 모름지기 정당 정치인이 하는 것이 가장 알맞다.




본인이 속한 정당의 이념을 꿰뚫고 있어야 한다. 권력 획득 의지 역시 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유권자들에게 그들이 주창하는 정책이 높은 확률로 실현될 것이란 믿음을 줄 수 있으니까. 그런 정치인이어야 신뢰가 간다. 정치꾼에 대한 환멸은 이해하지만 결국 정치라는 행위를 증오하는 이들의 정치는 예견된 실패로 이어진다.





전문 '정치꾼'이 아니라면, 최소한 한 분야의 전문가였으면 좋겠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각 분야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의회에 올라가는 것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니까. 사회명사들의 영입전 위주로 흘러가는 정치판에서 심상찮은 퇴행의 징조가 보이기는 하지만, 어쨌건간에 그들 역시 정치판에서 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졌다.  






유튜브 영상에서 캡쳐.




예비후보 조은비는 이중 어떤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동국대 관광레저경영학과를 졸업해 플로리스트로 일했다는 이력이 끝이다. 새누리당원으로 활동했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스물일곱이다. 해봤자 몇년이나 했겠는가. 이런 인물에게 의석을 배당할만큼 대한민국이 그리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미달'의 예비후보다.







그렇지만 조은비에게는 참정의 자유가, 피선거권이 있다. 정치를 가벼이 여긴다고, 끼어서는 안 될 자리에 끼어 들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잘못을 범하지는 않았다. 전후 맥락상 오해받을 소지가 다소 있긴 하지만, 본인이 직접 '얼짱'이라는 워딩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간 것은 미디어다. 생각해보자. 이런 보잘것 없는 후보가 왜 미디어의 타겟이 된 것일까.











2012년의 부산 사상구에는 손수조가 있었다. 조은비는 얼핏 보기에는 손수조의 재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둘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비교적 준수한 마스크를 가진 20대의 여성 새누리당 정치인이라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손수조는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조은비는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출신이다. 학벌로 사람을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다른 경력을 보인 적이 없는 20대 후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유권자들이 믿고 볼만한 거의 유일한 '스펙'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회적 시선으로 볼 때 손수조는 엘리트다. 조은비는 평균 이하의 재원이다. 더군다나 손수조는 박근혜가 직접 대선후보 문재인의 카운터로 점찍은 인물이었다.그는 정식으로 국회의원 공천도 받았으며 선거전까지 치러냈다. 박근혜 대통령은 손수조의 유세를 위해 부산 시내에서 오픈카를 타고 카퍼레이드까지 벌였다.



카퍼레이드 유세전을 벌인 손수조와 박대통령. (사진출처 데일리안)





조은비는 예비후보다. 피선거권이 있다면 누구나 예비후보자 등록기간에 선거관리위원회에 신청할 수 있다. 새누리당은 조은비에게 예비후보 자격을 부여하지 않았다. 그는 공천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며, 공천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딱 이정도 선에서 그칠 소모성 선거자원인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조은비는 제2의 손수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20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14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 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 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월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정말 얼마큼 작으냐……      



조은비는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비판받고 있다. 아니, 비판이라기보다는 비난에 훨씬 가깝다. 그는 새누리당의 전략적 기획물도 아니고 그럴만한 재원도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정치판에 나왔다는 점이 유일한 잘못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색안경은 조은비 본인이 내보인 적도 없는 섹스어필을 만들어냈다. 한 개인에 대한 과도한 폭력이다. 동시에 에너지 낭비기도 하다. 그럴 시간과 열정이 있으면 정당정치의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응원의 박수라도 보내주자. 그리고 이에 편승해 기사거리를 양산해 낸 옐로 저널리즘에 돌을 던지자.








부디 상처받지 않길 바라며







분개할 일에 분개하자.






소잡는 칼을 쥐 잡을 때도 들 필요는 없다.  우리의 분노는 더 합당한 일을 위해 쓰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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