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라는 이름의 바스러질 껍데기
#1.
국민포괄정당론
정당이 사회를 나눠서 대표하는 것을 잘못으로 보는 시각을 말한다. 특정 사회집단이나 당원만이 아니라, 국민 일반을 대표하겠다는 이야기다. 이런 '국민포괄정당론'을 대변하는 정당이 등장했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분리해 나온 안철수 의원이 만든 '국민의당'이 그 주인공이다. 국민의당은 상이한 스펙트럼을 지닌 정치거물들을 끌어모은 정당이다. 민주당의 터줏대감 김한길과 한나라당의 책사로 이름을 날린 윤여준을 하나의 기치 아래 모을 사람이 있을거란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2.
2012년 대선을 향해 내달리던 안철수의 슬로건은 '새정치'였다. 그리고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구호는 유효하다. 그런데 그의 새정치는 기존 정치판에 대한 부정이 근간이다. 안철수는 정당에 들어가서 문화를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새로이 만들 생각만 했다. 그런데, 백지에서 시작하는 정당은 정말이지 쉽지가 않다. 그 똑똑하다는 유시민도 수차례의 실패에 결국 포기하지 않았는가.
안철수의 새정치는 이미 한번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성공을 향해 달려가는 모양새는 아니다. 개국공신으로 삼으려 했던 김한길과 윤여준은 이미 사실상 이탈했다. 되풀이되고 있는 그의 파국에 빠져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조직'이다. 그는 구태정당이라는 낡은 조직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려 시도하지 않았다. 돌이켜보건대 2010년 이후 안철수에게 넘치도록 풍족했던 것은 여론뿐이었다. 이해는 간다.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이끈 무언가에 매혹되기 쉬우니까. 가만히 있던 와중에 여론의 바람을 타고 서울시장 후보에, 대통령 후보에 압도적 지지율을 기록하며 오르내리던 그라면 더욱 그럴 것이고.
#3.
이해가 간다고 해서 합리적 선택이란 말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정치는 현실이다. 조직을 배제하고서는 정치를 이뤄낼 수 없다. 조직을 동원한 정치가 대중이 혐오하는 지겨운 모양을 띠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래도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바꾸어 보려 했어야 한다. 제대로 정치를 펼치려 한다면 조직은 필수불가결적 존재다. 왜 자꾸 안철수는 정치라는 개념 자체를 재발명하려고 애를 쓰는 것일까. 땀냄새를 싫어하는 그의 중산층적 정치관은 정말로 새로운 정치로 이르는 정도(正道)일까?
#4.
분명 국민의당은 '국민포괄정당론'을 표방하는 정당이다. 그런데 이에는 함정이 숨어 있다. 국민포괄정당이 되기 위해 먼저 밟아 나가야 할 단계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괄정당은 정당체계의 안정성 이후에 나타난 변화다. 기존의 정당체계가 고착화되면 더 이상 유권자들을 동원할 수 없는 국면이 생긴다. 이때 정당 조직이 선택하는 일종의 차선책이 포괄정당이다. 그렇기에 정당이 대중적/조직적으로 단단해지는 과정을 건너뛴 채 무작정 국민포괄정당이 되고자 한다면 문제가 생긴다. 몇몇 사회 명사에 의존하는 허울뿐인 정당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현재의 국민의당이 겪고 있는 진통이다. 천정배, 김한길, 안철수라는 스타 정치인을 제하고 그들에게 무엇이 남는가?
이런 정상적인 발전과정을 건너뛴다면 국민포괄정당은 사상누각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 더 극적인 비유를 들어보겠다. 국민의당은 자본주의를 건너뛴 공산주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많이들 착각하는 사실이지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의 급작스런 도래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공산주의를 자본주의 이후의 단계로 설정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해서 생산력이 충분해졌을 때에야 비로소 공산주의가 자립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음이 급했던 레닌은 농업국가 러시아에 볼셰비키 혁명을 일으켰다. 그가 마르크스의 이론을 곡해했는지, 아니면 이해했음에도 저질러 버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일에는 순서가 있다. 반드시 이행해야 할 단계는 분명 존재한다.
#5.
이견과 정치논쟁, 그리고 갈등은 민주주의의 동력이며 엔진이다. 싸움구경만큼 재밌는 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정치판에서까지 이를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미감에 좋지 않다고 덮어버리고 고개를 돌린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안일수록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한다.
이 모든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일반의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은 위대한 주권자지만, 그렇게까지 전지전능하지는 않다. 우리 국민들을 앞세운다 해서 정치를 재발명할 수는 없다. 중도라는 애매한 경계를 설정해놓고 그 뒤로 숨어서는 어떤 것도 바꿀 수 없다. 모두를 포괄해낼 수 있다는 환상을 포장해 낸 껍데기니까. 겉만 번지르르한 개살구니까.
참고서적
: <정당의 발견>, 박상훈, 후마니타스
<논쟁으로서의 민주주의>, 최장집·서복경·박찬표·박상훈, 후마니타스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