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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Mar 28. 2016

아름답지 않은 선택도 있단 말인가

국민의 수준을 재단하는 선관위에게 드림




4월 13일, 투표합시다





언니, 에센스 하나도 꼼꼼하게 고르면서





순백의 옷을 입은 설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진다. 그 미모에 홀려 생각없이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칫한다. 잠시만, 뭐라고? 너무나 얼탱이가 없는 문구다. 그런데 이걸 만들어서 배포한 기관이 무려 '중앙선관위'다. 분노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건 그닥 좋은 자세는 아니라 생각하기에 몇마디 부연을 늘어놓겠다.











이 광고의 타겟층은 명확하다. '언니'다. 여기서 일단 유권자의 절반이 스르르 빠져나간다. 왜 오빠가 아니고 언니인지부터가 의문이지만, 그건 잠시 제껴두도록 하자. 올해 22살인 95년생 설현양이 할머니, 아주머니, 이모가 아닌 '언니'라고 부를만한 대상은 넓게 잡아야 40대 초반까지의 여성일 것이다. 그렇다. 광고를 제작한 선관위 측에서는 2030 세대의 여성들에게 투표를 독려하고 싶었던 것이다. 젊디 젊은 여성분들아, 자신을 가꿀 시간에 한표라도 더 행사하세요. 뭐 이런 느낌이랄까.





 





투표 안하는 젊은 여성



이런 프레이밍은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다. 가깝게는 2012년의 제 19대 총선 직후 퍼졌던 '8% 괴담'이 있다. 대선에 투표권을 행사한 20대 여성의 비율이 겨우 8%라는 소문은 살이 붙어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간단하게 논파해보겠다. 다음은 선관위에서 2012년에 발표한 19대 총선의 연령별/성별/시도별 투표율이다.


자료츌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 http://blog.naver.com/bestmin21/220659079145



20대 여성의 전국 투표율은 39.9%라고 나온다. 어디서 이런 가당치도 않은 괴담이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사실무근의 모함에 불과했다. 심지어 30대로 올라가보면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1.6%가량 더 높다! 위의 표를 보건대, 남성이 여성에 뚜렷한 비교우위를 가질만한 연령대는 없다고 보는 편이 옳다.









'에센스'라는 어휘를 콕 집어서 사용한 것도 내 미감에는 심히 불편하다. 화장이란 행위 자체를 쓸모없는 행위로 치부하며 비하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자기 피부에 바르는 에센스좀 꼼꼼하게 고르면 어디가 덧나는가? 그러지 않고 상표 보고 명품 화장품을 집어들면 합리적 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빼애액거릴거면서. 더군다나 화장품 열심히 고른다고 생각없이 투표하란 법도 없다. 아니,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지. 사실 설현이 일반적인 2030여성보다 꼼꼼하게 에센스를 고를 확률이 훨씬 높지 않을까? 선관위는 요즘 최고로 핫한 하이틴스타를 내세워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사려깊은 투표경향까지 가지고 있다'는 '개념녀' 프레임을 씌워낸다. 그리고 이는 억울하게 매도되어온 2030 여성과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선관위가 국민에게 어필하며 계몽할만한 범위는 '투표'라는 행위의 제고에서 그쳐야 한다. 제대로 된 투표를 하라고 종용하는 순간, 국가기관이 국민의 판단능력을 불신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니까 말이다. 이와중에 이런 성차별적 인식까지 곁들여 낼 필요는 없는데. 금상첨화다 싶을정도로 지나친 친절이다. 혹시 이런 분노를 유발해 우리의 투표를 이끌어내려는 큰 그림을 그린거였다면, 다음에는 이런 구호를 부탁하고 싶다.





형, 롤 랭겜 한판 더 돌릴 시간에 공보물 읽고 제대로 된 투표를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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