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식이밴드와 정의당, 그리고 김어준
정의당이 뜨겁다. '여혐'논란에 휩싸인 뮤지션, 중식이밴드와 함께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넷상에서 이에 대한 성토와 비토(veto)가 줄줄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들은 당차원의 뚜렷한 해명도,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어쩌면 않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나는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넘기고 싶지도 않다. 오랫동안 진보진영에 내재되어 있던 오류가 다시 한번 불거진 것이다. 그저 타이밍이 조금 안 좋았을 뿐이다.
정당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다소 딱딱하지만 사전적 정의를 따르자면, 정치적인 주의나 주장이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가 정당이다. (네이버 사전)
이 한 줄의 정의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캐치해 내야 한다.
1. 정당은 정권을 잡기 위해 존재한다.
2. 정당은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정권을 잡기 위해 정치적 이상이 필요한 것일까,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권이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그 둘 모두일까? 정답은 없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그렇기에 사전에도 '정권'과 '이상'을 잇는 말로 '그리고(and)'라는 접속사를 사용한 것일 테니까. 둘 사이에 상하관계를 논한다는 것은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정의당은 슈퍼스타K7을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진 '중식이밴드'에게 총선 로고송을 맡겼다. 심상정 의원은 중식이밴드를 선택한 이유를 그들의 배경과 정서에서 찾았다. 이제는 계급이라고 칭해질 만큼 일반화된 흙수저라는 출신 배경, 그리고 그런 현실에서 느껴내고 담아낸 울분의 정서가 그들의 음악에 담겨 있다고 했다. 그는 중식이밴드의 음악을 통해 정의당이 젊은이들과 닿을 면적이 넓어지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의도는 좋았다. 정의당은 2030 유권자를 공략해야 하는 정당이다. 그렇기에 애초의 의도대로였다면, '흙수저 인디밴드' 중식이밴드와의 콜라보는 괜찮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의당은 중식이밴드의 색깔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그들의 패배의식과 연민은 전적으로 남성 중심적이었으며, 곡 중 상당수에 '여성혐오' 정서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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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까지 내서 대학보낸 우리 아버지
졸업해도 취직 못 하는 자식
오늘도 피씨방 야간알바를 하러 간다
식대는 컵라면 한 그릇
하루의 첫 담배는 날 행복하게 하지
담배도 끊어야 하는데
어디서 돈벼락이나 맞았으면 좋겠네
나의 기타 나 대신 노래좀 불러줘
빚까지 내서 성형하는 소녀들
빚갚으려 몸파는 소녀들
홍등가 붉은 빛이 나를 울리네
이 노래가 나를 울리네
...
중식이밴드, <Sunday Seoul>
얼핏 보면 20대 전체를 흙수저로 칭하고 있는 듯 보이는 곡이다. 그렇지만 곰곰이 뜯어보면 그 와중에도 우열이 나뉜다. 남성들은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할지언정 피시방 야간알바같은 합법적 모양새를 띠는 반면 이에 대응하는 여성들은 창녀라는 주변인으로 일반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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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보지마
그런눈을 하지마
니가 다른 누군가와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지마
왜 자꾸 성질이나지
나랑 사귈때에 너는
저런 체위 한적 없는데
화면으로 보니까
내꼬추가 더 크다
니가 나를 떠나 만난 사람
죤놔작은 변태 섹이야
야동보는 나도 뭐 그래
나는 외로워서 그래
밤에 잠안와서 그래
그래
...
중식이밴드, <야동을보다가>
일반적인 한국 남성의 성의식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곡이다. 헤어진 연인과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한 '리벤지 몰카'를 관음하면서 낄낄대는 가사라니. 본인이 찍어서 유포한 게 아니니까 상관없다고? 유포나 소비나 도긴개긴이다. 이런 노래를 절규하며 불러제끼는 밴드에게 로고송을 맡기는 정당은 제정신이 아니라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손 놓고 불구경만 하고 있는 정당은 뭐라고 하는 게 적당할까?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고 싶다면 정권을 잡아야 한다. 앞에서 밝혔듯이 선후관계의, 우열관계의 문제가 아니다. 그 둘은 서로를 떼놓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그런데, 정의당은 정권 획득에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본인들의 코어팬덤인 2030 세대가 줄줄이 떠나가는 마당에 이렇게 두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중식이밴드 사건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보자면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든다.
지난 2012년의 총선에서 민주당은 팟캐스트 '나는꼼수다'로 네티즌 사이에 절정의 인기를 누리던 김용민씨를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했다. 그런데 이후에 과거 인터넷방송을 진행하며 김구라씨와 했던 막말이 구설수에 오른다. 파장은 생각보다 컸고, 빠르게 번져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끝까지 김용민의 공천을 취소하지 않았다. 확실히 인과관계를 논할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길만한 요소가 굉장히 많았던 선거에서, 거짓말같이 참패했다.
사실 김용민을 끝까지 데리고 간 것은 어느 정도 참작해줄 만한 여지가 있었다. 그는 민주당이라는 정당의 최대 지지기반중 하나인 '네티즌'의 확고한 지지를 받는 정치인이었으니까. 그런데 중식이 밴드는 아니다.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뮤지션, 그 외에는 무엇으로도 정의되기 힘든 이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음악 전반에는 혐오정서 내지는 열악한 젠더의식이 깔려 있다. 이 와중에도 단지 그들이 '루저'고 '흙수저'라는 이유만으로 당의 이미지를 대변해도 좋다는 것인가?
정당을 홍보하는 로고송을 부를 가수를 뽑는 건 무슨 목적일까? 아마 자신들의 메시지를 좀 더 소프트한 방식으로 널리 알릴 수단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정의당의 메시지는 굉장히 안 좋은 방식으로 사방팔방 퍼져 버렸다. 정의당의 핵심 지지층인 2030 세대와 여성은 젠더 문제에 결코 둔감하지 않다. 눈감아줄 생각도 없다. 웬만한 문제에는 꿈쩍 않고 콘크리트로 버텨주는 여권의 지지층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 그런 부동층이 전체 유권자의 30-40%에 육박한다. 애석하게도 정의당은 그런 거대한 팬덤이 없다. 그들의 팬층은 대개 뚜렷한 지향성을 지닌 젊은 유권자다. 그렇기에 그들은 정의당의 실정을 호락호락 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더민당. 그럼 나는 녹색당. 어, 나는 노동당!' 이런 식으로 빠져나갈 선택지를 그들은 넉넉히 가지고 있다. 그럴 여력과 개연성 역시 충분하다. 단 하나의 결격이라 해도 그걸 집단 전체의 성질로 치부하고 이탈할 수 있는 유권자들이란 이야기다.
결국 정의당이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면 이는 '흙수저밴드' 하나 살리자고 총선을 말아먹자는 일이 되는 셈이다. 한 표라도 더 얻어보려던 초기의 목적은 물론이고, 그들의 정치적 메시지까지 부정적 이미지에 매몰되는 것이다.
김용민과 <나는 꼼수다>를 같이 진행했던 김어준 얘기를 덧붙이고 싶다. 김어준은 동지/연대의식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그는 진보세력에 대해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지’들의 작은 실수는 웬만하면 눈감아주자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PD수첩이 빼도박도 못할 보도자료를 내놓을 때도 꿋꿋이 황우석을 지지하던, 그런 사람이다. 때문에 인터넷 방송 시절 내뱉은 막말 퍼레이드에도 불구하고 김어준은 두 눈을 딱 감고 김용민을 포용했다.
김어준의 문제의식은 이거다. '보수층은 훨씬 심한 사안에도 눈과 귀를 막고 콘크리트로 일관하는데, 어째서 우리만 그리 민감해야 하느냐?' 정치공학적으로, 그리고 진영논리로 보자면 얼추 들어맞는 얘기다. 이기고 싶으면 그래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김어준이라면, 사방에서 십자포가 날아오는 와중에도 정의당을 지지해달라는 어설픈 해명글을 올린 중식이밴드를 내쳐야 한다는 주장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리라.
그렇지만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상당수의 진보는, 그런 '가재는 게 편'놀이를 좋아하지 않는다. 도덕성 문제에서 우위를 점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일단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면 아무리 같은 편이라고 해도 너그러이 포용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게 들어맞더라도 한 부분에서 핀트가 어긋나면 내 편이 아닌 것이다. 정의당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하고 체계 잡힌 진보정당이며 대다수의 의제를 선점하고 있다 해도, 젠더 문제에서 이런 저급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한, 비례표를 줄 수 없는 정당이 되는 것이다.
정치를 대나무처럼 꼿꼿이 할 수는 없다. 이상을 위한 정치라 해도, 뿌리는 현실에 디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치관에 관해서만큼은 대쪽같아야 한다. 힘들고 귀찮더라도 그래야만 한다. 정치적 이상을 꿈꾼다면, 깨끗이 인정하고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이런 둔감한 일관으로는 절대 <제3의 정당>으로 거듭날 수 없다고 감히 단언하겠다. 구름 위를 활보하느라 현실의 힘을 움켜쥐지 못하는 정당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