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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Mar 15. 2016

Satisfaction과 Screwdriver의 추억

조악했던 사운드였지만





스크류드라이버(screwdriver).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를 탄 칵테일이다. '레이디킬러' 칵테일이라는 이명을 가진 술이기도 하다. 무미무취한 보드카에 오렌지 주스를 섞어서 그런지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내게는 '레이디킬러'라는 말은 다른세상 얘기처럼 좀체 와닿지가 않는다. 마냥 즐겁게만 기억하기엔 좀 애매한 추억 때문이다.








벌써 3년 전이다.  내가 다니게 될 학교에 이미 다니고 있던 친구를 찾아갔다. 지방 출신이었던 관계로 자취방이 있는 친구였다.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데 술이 빠질 수야 없지. 그런데 이녀석이 안어울리게 칵테일을 마시자는거다. 자기가 바텐더로 일하면서 배운게 좀 있다고. 오호, 그렇다면야...?



그래서 나온게 스크류드라이버였다. 그런데 이게 아주 골때리는 칵테일이었다. 천원짜리 오렌지주스에 만원짜리 초저가 보드카를 썼기 때문이다. 친구놈의 논리는 괴상했지만 그럴듯한 데가 있었다.



"그 원래 스크류드라이버라는게 말이지. 엄동설한에 일하는 러시아 일꾼들이 만든 음료란 말이야. 그래서 싸구려 저질 보드카랑 오렌지 주스를 섞어 마시는게 그들의 의지를 잇는거라고. "




술의 기원까지 파헤치던 사려깊은 그 친구는, 스크류드라이버를 딱 한모금 마셨다. 사실 알코올을 못 하는 놈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다음날 일어나보니 얼굴이 방바닥에 붙어있었다. 변변찮은 안주도 없이 보드카를 물처럼 들이켰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분명 21세기의 마르크스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그 이후는 기억이 없다. 아마 술기운이 훅- 올라와서 픽 쓰러졌나보다. 너무 신났나보다. 생각없이 마셨다.




왜 그렇게 신났을까. 왜 그렇게 확 취해버렸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1호선 지하철에서 전날의 기억을 곰곰이 되돌려 보았다. 꽤 심도 있는 얘기들을 했던 것 같은데 이미 증발한 터였다. 우리 또래의 '깨시민'이 무얼 해야 하는지 대충 결론이 났던 것도 같은데. 아쉬웠다.



떠오르는 거라곤 징징 울려대는 기타리프뿐이었다. 생각났다. 칵테일을 한잔 비우고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었다.  롤링스톤즈의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https://www.youtube.com/watch?v=nrIPxlFzDi0





5평남짓 되던 자그마한 자취방이 들썩였다. 열악하기 짝이 없는 노트북의 내장 스피커였지만 그순간만큼은 합주실의 마샬 앰프 부럽지 않은 출력이었다. 그랬다.







키스 리처즈는 'Satisfaction'이 완성된 곡이라는 생각을 한번도 해보지 않았단다. 그도 그럴것이 'Satisfaction'은 잠못이뤄 뒤척이던 차에 귓가에서 윙윙거리던 멜로디를 옮겨놓은 일종의 가안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만족을 못하겠다고 외쳐대는 가사를 썼는지도 모른다.



그날 나눴던 얘기들을 아직도 매듭짓지 못했다. 그래서 그날의 술자리는 붕- 뜬듯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나는 키스 리처즈와 달리 그 기억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없다. 가끔은 그렇게 분위기에 취해 무언가를 잊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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