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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incelle Mar 17. 2016

<태양의 후예>와 해태 타이거즈

재미있어서 치명적인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인기가 심상찮다.  tvN을 위시한 케이블채널과 종편방송이 지상파의 입지를 위협할 만큼 성장한 지 오래다. 시청률 15%만 넘어도 '대박' 소리를 듣는 게 요즘 드라마다. 그 와중에 28.3%라는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육군사관학교 관계자들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3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학교답지 않게, 요즘 육사는 이전 같지 않았다. 입시생들 사이에서는 경찰대학교와 공군사관학교의 인기가 훨씬 높다.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으며 이대로만 가면 '별'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꽃미남 대위 송중기의 열연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나는 <태양의 후예>를 보지 않는다.




분명 <태후>는 재밌는 드라마다. 작가 김은숙의 '드라모그라피'를 살펴보자. <파리의 연인> <신사의 품격> <상속자들> <시크릿 가든>... 내놓는 작품마다 브라운관을 요란하게 뒤흔든 화제작이 되었다. 분명 김은숙은 '잘 팔리는' 드라마를 아는 작가다. 클리셰 덩어리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건 줄줄이 베스트셀러를 쏟아내는 작가들에게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수식이다. 소설가 기욤 뮈소가 대표적인 예다. <구해줘> <종이여자> <7년 후> 같은 일련의 작품을 관통하는 하나의 형식이 존재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기욤 뮈소를 읽는다. 잘 팔리는데, 그게 뭐 대수일까. 그런 클리셰나마 찾지 못해서 버려지는 작품이 한두 편이어야 말이지.


기욤 뮈소






그런데 그 '재미'가 문제다.








3S 정책이란 말을 한번쯤은 들어들 봤을 것이다. 세개의 S는 각각 섹스(sex), 스크린(screen), 스리고 스포츠(sports)를 뜻한다. 80년대의 대한민국은 3S정책을 분리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5월의 광주는 무수한 피를 흘렸다. 위에서는 이를 철저히 틀어막으려 기를 써 보았지만, 이미 정권의 대의명분은 훼손된 상태였다. 그래서 전두환정권은 마치 로마시대의 '빵과 서커스' 같은 3S정책을 들고 온다.  로마 제국은 시민들에게 한달치 분량의 빵과 콜로세움의 격투 티켓을 주었다. 빵이나 먹고 서커스나 보면서 정치는 잊으라는 최면이다. 제 5공화국은 <애마부인>시리즈같은 에로영화로 섹스와 스크린을 장악했다. 그리고 88올림픽을 유치함으로써 금이 간 정권에 도금칠을 했으며, 프로스포츠의 출범을 통해 국민들의 의식을 마비시켰다.



사실상 3S정책의 핵심은 프로스포츠, 그중에서도 '프로야구'의 출범이었다. 연고제를 특성으로 하는 프로야구는 소외된 특정 지역의 민심을 가라앉히기에 그만이었다. 그래서 경남의 롯데, 경북의 삼성에 필적할 만한 그룹이 전무한 호남에서도 야구팀은 창단되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울며 겨자먹기로 창단에 나선게  과자를 주로 팔던 해태다.



해태 타이거즈는 잘 나갔다. 아주 많이. 해태는 프로야구 출범 이후 첫 16년간 무려 9차례의 우승을 차지했다. 치를 떨 정도의 강팀이었고 악바리 근성으로 똘똘 뭉친 무서운 조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어째서 늘 해태만..?'이란 의문부호도 종종 따라 붙었다. 그리고 이 의문은 다음과 같은 음모론을 같이 달고 왔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광주 시민을 달래주기 위해서 해태를 의도적으로 밀어 주는 것이 아닐까.'



광주의 무등야구장에선 늘 '목포의 눈물'이 불렸고, 그 눈물겨운 합창의 끝은 '김대중'을 연호하는 것으로 끝나곤 했다고들 말한다. 가진게 없는 광주 시민들에게 해태와 김대중은 전부였다. 그런 눈물겨운 연대는 민주화의 쟁취와 함께 사그라들기 시작하다가 97년에 막을 내렸다. 97년은 김대중대통령이 역사상 첫 정권교체를 이룬 해다. 그리고 해태 타이거즈가 마지막으로 우승을 차지한 해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몰랐을 리 없다. 자신들을 위로해주던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가, 자신들이 증오하던 이의 선물이라는 것을. 그래도 그들은 이를 거부할 수 없었다. 이런 감정이입이 오로지 설움에 기반한 정서라고 보는 것은 오독일 것이다. 어쨌건 간에 프로야구는 재밌었다. 그렇기에 시민들은 해태 타이거즈의 선전을 기원하고 프로야구의 번창에 기뻐했던 것이다. 그렇게 들뜨다 보면 처음의 마음은 다소 흐려지게 마련이다.





재미는, 이성을 마비시키곤 한다.






<태양의 후예>의 방영일만을 목놓아 기다리는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 이 드라마에 미약하게나마 투영되어 있는 쇼비니즘의 존재를. 송중기가 송혜교의 말을 끊고 애국심에 대해 연설을 늘어놓을 때면 어김없이 장엄한 BGM이 깔린다. 그렇지만 멋있는걸. 흠잡을 데 없이 잘생긴 송중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기에 평소라면 들은 척도 안했을 말이 너무나 멋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애국가에 맞춰 싸움도 중단하고 경례를 하던 황정민과 김윤진을 보고 조소를 금치 못하던게 우리들이였는데, 송중기와 송혜교에 대해서는 그게 잘 안 된다. 모양새가 나니까. 의심을 제기하는게 이상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빼면 드라마 자체는 참 재밌으니까.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목에 파견되어 있긴 하지만, 파병부대가 왜 생겼겠는가. 그 이전에 발생했을 참극에 대해 우리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저렇게 활기차게 굴러가는 부대에서 폭탄의 파편을 어떻게 연상한단 말인가. 난민들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는 송혜교에게서 어떻게 어디엔가 묻혀있을 그 아이들의 부모를 연결짓는단 말인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면서도 온몸으로 즐거워하는 국군 장병을 보면서 이들이 징병당한 자원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기는 힘들다. 송중기같은 중대장이 있다면 나도 군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겠다라는 이상한 환상만이 생길 뿐이다.



재미는, 문제의식을




<태양의 후예>를 소비하는 행태 자체를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겨우 드라마 하나 보면서 이렇게까지 심각해질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바보상자'의 치명성에 대해선 한번쯤 생각해봄직 하다. <태후>가 KBS라는 공영방송에서 제작됐다는 사실을 곱씹어보면 더더욱 그럴만하다.





콘텐타 매거진 Contenta M에도 올라간 글입니다.



http://magazine.contenta.co/2016/06/%ED%83%9C%EC%96%91%EC%9D%98-%ED%9B%84%EC%98%88%EC%99%80-%ED%95%B4%ED%83%9C-%ED%83%80%EC%9D%B4%EA%B1%B0%EC%A6%88-%EC%9E%AC%EB%AF%B8%EC%9E%88%EC%96%B4%EC%84%9C-%EC%B9%98%EB%AA%85%EC%A0%81%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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