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바람

by PolyMental

1. 실패

한줄기 바람이 다가왔다. 뒷목으로 넘어와 서늘하게 흐른다. 턱 아래 성글게 자란 수염이 잠깐 흔들리자, 그는 축축한 공기를 다시금 느끼면서 감고 있던 두 눈을 조금 열어 보았다. 앞은 여전한 어둠. 보이지 않는 전면을 향해 의식을 집중하려 하지만, 어느새 마음이 깨진 자신에 대한 책망이 또아리를 틀자, 짧은 한숨을 쉬고 고개를 살짝 저어본다. 한 낱 미동에도 허물어지는 좌선에 무슨 변명의 말이 필요할까. 상심이 제법 깊어져 간다.

좌선의 무아지경으로부터 점차 돌아오는 감각은 그를 현실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벌레들이 근처에서 재각거리며 움직이는 소리, 등 뒤 어디선가 작게 들리는 한방울씩의 물소리, 좁고 어둑한 굴 속 벽을 흝어오는 바람소리, 가을에만 맡을 수 있는 메마른 안개 냄새, 그리고 오랜 동안 멱을 감지 안아 올라오는 자신의 체취.


한번 벌어진 틈으로 헤집고 들어오는 세상의온갖 것들을 내 몰기라도 할 것 처럼 그는 다시 두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런 의지로는 얼마나 되었는지도 모르는 이 수행에 끝이 올리가 없다. 고개도 저어 보고 입술도 꾹 다물며 마음을 다잡지만, 몸 속 단단히 가두었던 선심(禪心)을 어느새 동굴 바닥에 여기저기 쏟고야 말았다. 이렇게 다시 한 절기를 실패로 마감하려는가. 조급한 가슴은 염려로 인해 더 세게 맥동을 일으켰다. 그는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아 뻣뻣해진 옷깃에 쓸리는 목을 느끼며 체념한 듯 어깨 뒤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어진 입구 저편으로 노릇한 저녁 빛이 물들어 있다.

다 합쳐봐야 서너평 되는 공간이지만 길게 오른편으로여 밤 눈 밝은 사람도 쉽게 자리 잡지 못하는 캄캄한 동굴이다. 그런 곳에서 면벽 좌선을 하기를 벌써 여덟해. 거구의 그이지만 상념은 언제나 좁디 좁은 귓구멍이나 콧구멍으로 쉽사리 찾아 들어온다. 기껏 엄지손가락 마디 하나 함직한 눈거풀인데도 그게 바늘 두께만큼만이라도 벌어지면, 어김없이 무아의 경지는 순식간에 세상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런 반복을 수백 수천 번 되풀이 해도 도무지 길이 트여지지 않았다. 멀리 서쪽으로부터 몇해에 걸쳐 찾아온 동방 대국의 높은 산 자락이건만, 이 영험하다는 산세 속에서 세상과 고립시켜가면서까지 찾아야 할 길은 여전히 대지에 비해 턱없이 작은 자신의 몸 안에서조차 험난하다.

오랜동안 곡기를 끊어 기운이 빠져나간 두 무릎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바들거리는 팔꿈치로 더듬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왔다. 밝은 세상 때문에 두눈을 잠시 찡그렸다가 다시 손을 이마에 대고 보니 역시나 해는 저물어 가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붉어지는 하늘을 보았다.이 가파르게 솟은 산에서 보아도 여전히 높은 하늘 위로 기러기떼가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는 저 기러기 처럼 내 구도의 길도 어느 가야 할 방위를 따라 알아서 흘러 가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솟구치자, 별안간 우울해졌다.

혹시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자신의 이상향이 있었던가. 몇천번째인지 알 수 없는 또한번의 실패는 그를 어두운 좌절의 심연으로 이끌어갔다. 마음이 부서지자 힘마저 흩어져, 자리에 주저 앉은 채 차가운 저녁 공기 보다 더욱 차가운 자신의 뺨을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얼굴을 가리고 앉은 자세로 그는 한참을 있었다. 해가 손톱 뿌리만큼 남기고 산 너머로 달아나려고 하던 시각으로부터 거의 다 차오른 달이 밤하늘 꼭대기에 이르는 시각까지, 얼어붙은듯 앉아있었다. 아마 매일 동굴 앞을 지나던 산 짐승들 조차 어두운 밤 중에 갑자기 나타난 바위로 착각했을것 처럼.




2. 깨달음

하루가 다르게 식어가는 대지가 유난한 늦가을의 어느 아침, 그는 서릿발이 두툼하게 오르는 땅으로부터 한기를 느끼며 어제의 좌절을 잠시 잊은 채 깨어났다. 두 다리는 직각이 되게 웅크리고 몸은 오른편으로 뉘어 바닥에 달라붙듯이 잤던 모양이다. 단 한번도 없었던 굴 밖에서의 아침맞이었다. 그는 찌뿌둥하게 굳어있는 자신의 몸을 일으켜 세웠다. 술독에 빠져 사는 저자의 주정뱅이가 아침에 일어나며 자신을 괴로워 하듯이, 스스로를 부끄러워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 무슨 난잡한 행동이란 말인가.


얼굴에 붙어 있는 흙을 털어내며 묵직해진 뒷목을 누르고몸을 쭈욱 폈다. 산속이라 제법 추웠던지 차갑게 언 흙덩이들은 그의 얼굴에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얼굴에 딱 붙어 얼어버린 조각들을 뗄 때에는 마치 상처 딱지를 뜯는 것 처럼 따끔 거렸다. 이 귀찮은 행위 조차 내 편이 아니구나 생각하면서 내려 앉은 마음이 좀체로 살아나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는 흙을 잡아 뗴던 손길을 멈췄다. 이 후회스러운 행동에 자책을 하면서 일어나다 뭔가 심상치 않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정진 조차 못하는 자신의 부덕함을 탓하려던 마음 속에 느닷없이 의아한 실마리가 잡히고 가닥이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었다. 8년을 한결 같이 똑같은 요령으로 수행하던 일과로부터 벗어난 아침에, 그 일탈 때문만이 아닌 새로운 기운이 가슴을 쓸고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침 볕에 몸을 녹일 생각도 못하고 얼른 동굴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뜻밖의 깨달음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아, 이럴수가, 그토록 간단한 이치를 수해동안 모르고 지내왔다니! 내 분명 바보로구나, 눈 앞에 보고서도 잡을 줄을 모르다니!

쓰러져 갈 듯 중심을 못 잡고 들어간 그는 얼른 벽을 보고 앉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굴 속에 자리를 잡으면서 이 아침에 깨달은 것의 꼬투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원류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는 집요한 길을 빠른 속도록 헤엄쳐 갔다. 너무나 어두워 눈을 뜨건 감건 캄캄한 벽면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눈은 열려 있어도 감긴 것이요 감고 있어도 열린 것이다.

지난 밤, 그는 땅에 몸을 붙이고 잤다. 아침이디자 서릿발에 올라온 흙이 그의 얼굴과 엉겨 마치 한 몸이 된 듯 하였다. 땅과 바위 처럼 그의 몸은차갑게 굳어있었다. 자신이 마치 산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아니, 될 수만 있다면 산의 일부라도 되고 싶었고, 그 산이 기거하는 땅의 일부, 우주의 일부라도 될 수을 듯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간 자신의 수행이 그른 방향으로 갔음을 직감했다. 그순간 땅과 맞닿아 있던 오른쪽 눈으로 차가운 바람이 한 줄 흝으며 지나갔다. 이럴 수가, 이렇게 한번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어차피 들리는 소리, 어차피 맡는 냄새, 어차피 보는 빛. 어차피 의미가 없다. 나에게 다가와 나를 어루만지는 저것들이말로 내 안의 나와 다를 게 무어란 말이냐! 그 것에 의미를 두는 것, 마음을 쓰는 것, 기꺼워하는 것은 인간의 흔들림일 뿐이다.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가 되어버리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가 되어버리고, 미명을 보면 그 빛과 함께 그림자마저 되어주겠노라. 세상에 나와 저는 따로 없으니, 나 아닌 것이 없고 저와 내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본래 한가지에서 돋은 서로 다른 싹일 뿐이다. 그것을 어찌 없수이 여겨가면서까지 모르는 체 해야 하나.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은 모두가 하나다. 저어하지 말자, 받아들이자!




3. 하산

아침나절에 얻은 그의 깨달음은 그 끝을 보기까지 채 일년도 안 걸렸다. 짧고도 강렬했던 수행의 기간은 그에게 종종 지끈거리는 편두통을 가져오기도 하였지만, 세속의 희노애락에 언제라도 담담할수 있는 마음을 선사했다. 그는 차가운 동굴 속에서 때로는 무념무상으로 바위가 되었다가, 풀이 되었다가, 산새소리가 되었다가, 이름없는 풀벌레가 되었다가 하곤 했다. 그리고 때로는 그것을 중생에게도 설파 하기 위해 차분하지만 깊은 고뇌를 통해 정리하여 갔다. 워낙에 심신의 모든 기를 다 쓰는 폭풍과도 같은 시간이었으므로, 기력이 날로 쇠하는 게 정상이었건만, 신기하게도 신체적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생각지 못한 특별한 능력마저 생겼다. 깨달음을 얻기 전날 밤, 땅에 대고 잤던 그의 오른쪽 귀가 그 어떠한 소리라도 명징하고 듣게 된 것이다. 언제나 희미하게만 들리던 동굴 속의 낙숫물 소리가 그의 오른쪽 귀로 들어오면 여름철 강가에 뛰어드는 아이들의 자맥질 소리 처럼 큰 울림이 되었고, 바람소리도 그 세세한 기압의 흐름마저 실 가닥을 손으로 풀어내듯 분별감이 생기고 정확해졌다. 이제 그의 바램대로 세상의 모든 징후가 그와 함게 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게 인식되었다. 면벽 좌선의 결과, 보통의 중생들은 얻을 수 없는 귀한 경지게 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리고 좋았던 것은 돌덩이 처럼 단단해진 혀였다. 이전에 묵언 수행을 해 봤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느낌이 그때와 다르다는 것을 그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의 입안은 그야말로 동굴속 처럼 단단히 봉해져 갔으며 마치 동굴 속의 자과도 같은 입안의 혀는, 제2의 수행자가 되어 바위처럼 되어갔다. 아아, 부처의 가르침은 경계를 긋는 것에 있지 아니하고, 세치 혀에도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혀가 수행자 자신과 같아져 감에 마음은 더욱 더 담대해져 갔다.

담대한 마음은 그로 하여금 얼굴에 무념의 표정을 짓게 하여 스스로 만족스러웠다. 비록 아무도 없이 저 혼자만 있는 동굴이었으나 그 어떤 고통이나 기쁨에 사로잡히지 않은 일관된 마음으로 지내자 특별히 속세의 표정이 나올 일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풍모가 점차 부처의 그 것과 같아지려 한다는 것을 깨달아갔다. 이제 언제라도 중생을 향해 가슴으로 안는 온화한 낯을 지닐 수 있게 되었구나 싶었을 때, 무려 9년에 걸쳐 정진한 수행을 거두고 산 아래 사찰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숭산(嵩山)은 오르기는 어려우나 내려가기는 역으로 쉬운 곳이다. 산에서 주운 기다란 고목가지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의지하여 발길을 산 아래로 향한지 반나절 만에, 그는 북위(北魏)에 새로이 새겨지는 불심의 법당에 도착하게 되었다. 조용한 안 뜰에 다다랐을 무렵, 저 멀리 머리를 파르스름하게 민 젊은 승려가 기다란 비를 들고 경내를 쓸고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몸집이었다. 그와 젊은 승려가 서로의 인기척에 눈이 마주쳤다. 젊은 승려가 잠시 머뭇거리며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이내 두눈을 크게 뜨고 한달음에 달려오며기쁜 목소리로 반겼다.

"아이구- 선사님! 선사니임! 드디어 내려 오셨군요!"

가까워지며 바라보니 그 젊은 승려는 자신이 떠날 때에만 해도 목소리가 변성기에 이르러 때까치 처럼 길쭉하기만 하던 소년 승려 "혜가"였다. 사뭇자신의 수행이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린 것임을 다시금 실감 할 수 있었다. 그 오랜만의 만남임에도 그는기쁘게 활짝 웃을 수 없었다. 이미 희노애락의 경지를 초월하여 사사로운 마음에 표정이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온화한 눈빛만을 보내고 있는 자신이 더욱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혜가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 아니었다. 반갑게 달려오던 이 젊은 승려는 짐짓 실망한 것인지 어쩐 것인지 오던 서슬을 멈칫거리며 조금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아직 사바의 고뇌가 들어찬 마음이 들킬 것이 절로 염려되는 것인지 두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몸을 외로 틀며 눈길을 피하는 것이다. 아, 부처의 경지에 오른 이를 대하는 중생들의 저 처연하고 남루한 자아여. 이제 면벽좌선을 통해 중생을 밝은 곳으로 이끌려면 많은 설법들과 노력이 필요하겠구나 짐작이 들었다.

"그래, 혜가야. 잘 있었느냐."

"네 선사님, 오랜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부처님의 뜻이 늘 함께 하셨습니까."

"오냐, 많은 깨달음을 얻고 왔느니라."

혜가가 잠시 그의 두눈을 바라보더니 입술을 움찔거린다.

"네 그런데 선사님, 저기 혹 산에서 무슨 미온한 일이 있으셨던 건....?"

역시 자신을 바로보지 못하는 세속의 승려로서는 그의 부처같은 얼굴이 적응이 되질 않는 것이다. 그의 이 몽매한 질문을 들으니 절로 그 간의 수행이 어서 중생들에게 결실로서 맺어져야 함을 다짐하게 된다.

"아니다, 노선사님께서는 어디 계시느냐. 내게 짐도 없으니 지금 가서 문안 인사를 드려야 겠구나."

"아, 네네. 지금 큰스님께서는 법당에 계십니다. 그리 가시겠습니까?"

"그래야지. 내가 떠날 때 노선사께서 많이 걱정 해주셨느니라."




4. 구도의 마지막 고비

두사람은 발길을 법당으로 향했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소림사의 법당은 아름다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눈에 익은 낡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앞에 서서, 그는 안을 들여다 보았다. 낯익은 구부정한 등이 보인다. 혜가가 신을 벗고 종종 걸음으로 들어가 큰 스님의 귀에 대고 몇마디 속삭거렸다. 그러자 그의 스승이자 이 소림사의 주지승인 큰스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 처럼 밝게 웃으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옆에서 혜가가 거들어 몇발자욱 앞으로 떼며 다가오자, 오랜 시간 동안 면벽좌선을 하고 득도에 이른 그의 마음 속에서도 저 깊은 곳에서 얼마간의 요동이 치지 않을 없었다. 그러나 이내 평온한 마음이 되어 무려 아홉해 만에 뵙는 노스승의 얼굴을 바라 보았다.

스승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은 웃음을 띄며 그와 거의 안을 수 있는 데까지 느릿 느릿 왔다. 그런데 눈이 침침한 노승에게 오랫동안 산 속에서 좌선수행을 한 제자의 얼굴이 또렷이 들어오자, 갑자기 소스라치는 얼굴로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무슨 변고요?! 아니 어쩌다가 얼굴이??!!"

혜가의 반응을 보고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이런 당혹스러운 어법에 당황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네? 아니, 저 하하, 이는 제가 부처의..."

"어히구~ 이런 보리달마! 아니 숭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내가 어쩐지 요 근래 들어 꿈자리가 뒤숭숭하여 염려가 되더라니!"

"네? 그게 무슨 말이십니까? 제가 비록 아홉해 동안 수행하느라 기력이 쇠하긴 했어도 도통 무슨 말씀이신지..."

그의 답변에도 불구하고 노승은 울먹이는 소리로 계속 말했다.

"이보게 달마, 자네가 이역만리 타향까지 와서 이리 되면 내 어찌 자네 왕가에 얼굴을 들 수가 있겠소? 어이구 이런 어히구 이런.."

"아니 여봐라 혜가, 큰스님께서 왜 이러시느냐? 내 없는 사이에 무슨일이 있었느냐?"

"아니 저기, 그게 아니라 달마선사님, 아까도 말씀드리려다 차마 결례일까 말씀 못드렸사온데...지금 달마선사님 얼굴이....저기...어, 얼굴이.."

"응? 왜 말을 제대로 하지 않느냐. 무슨말이냐. 내 얼굴이 어찌 되었다는 말이냐."

"아 저기 그게...오른쪽이 심하게 서글피 울고 있는 듯 하옵니다. 많이 일그러지신..."

"뭐라? 무슨 소리냐 나는 부처의 마음을 얻고 내려왔느니라, 내 얼굴은 부처의 마음이 드러나서 네가 지금, 아니 노스님, 끙차~, 거기 주저 앉으시면 안되구요, 제 얼굴은 그러니까 부처의 혜안과 같아서 아직 적응이, 두분이, 지금, ..."

"이봐 달마 자네 정녕 모르는가? 자네 지금 얼굴이, ..그 얼굴이...귀신이라도 왔다 간 것 같으네, 이를 어째..."

스승인 큰 스님마저 같은 소릴 하자 그는 정말로 뭔가 다급해짐을 느끼게 되었다.

"혜가야, 저기 큰 불상 옆에 있는 작은 불상좀 가져와 보거라 얼른."

혜가가 달려가 번쩍이는 작은 불상을 가져오자, 금동으로 입힌 표면에 달마는 자신의 얼굴을 비쳐보았다. 그런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준수한 용모의 자신은 온데간데 없는게 아닌가. 대신 한쪽 이마가 주저앉아 서역인 특유의 부리부리한 큰 눈도 함게 짜부라진,입술도 헤괴하게 아래로 틀어진 귀면상 같은 자신이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9년간의 수행으로 얻은 게 부처의 인상이 아니라 고작 일그러진 얼굴이라니!

정녕 달마는 자신의 얼굴이 이다지도 헤괴망측하게 변하였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뿐 아니라 놀라서 짓는 표정이 얼굴의 왼편에만 있고 오른편은 여전히 무덤덤하게 우울해 하고 있다. 이리저리 얼굴을찡그리고 구기고 펴봐도 왼편에서만 표정이 살고 오른편은 미동도 않고 울상이다.

그렇다. 그간 자신의 얼굴에 희노애락의 표정이 서리지 못했던 것은 동굴 속에서 희노애락 없이 생각에 골몰하느라 표정을 지을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 차가운 밤 이슬을 맞고 자고 난 그 깨달음의 아침 부터, 그의 얼굴은 표정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에 열중한 나머지, 얼굴에 이상이 온 것을 확인 할 풍부한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었기에 발병 사실을 몰랐다. 그리고 증세를 알았다면 모를까, 초기에 진작 긴급히 의술을 행하지 않으므로서 가을밤의 추위가 앗아간 표정이 제자리로 돌아올 기회 또한 놓쳤다. 이 모든 것을 모른 채, 그는 구도의 끝을 향해 달려가며 표정을 잃어가는 자신이 부처로 화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작은 금불상의 그나마 평평한 가슴에, 달마는 자신의 얼굴 반쪽을 비쳐보았다. 한동안 그는 불상을 바라보며 얼굴을 떨구었다. 주지스님이 뭐라 뭐라 주저앉아 웅얼거리는 동안 혜가는 묵묵히 그런 달마선사의 곁에 서 있었다. 원래 그러한 표정이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작은 불상의 울룩불룩한 표면때문에 그런것인지, 불상에 반사된 달마선사의 표정은 지금껏 혜가가 본 적 없이 웃지도 울지도 않는 뜻 모를 표정이었다.
작은 금동불상의 얼굴은 인자한 미소를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 승려 옆으로 한 줄 바람이 흘러간다.
여린 나뭇가지 하나, 살짝 흔들린다.


5. 아 따거



"따리리리리리리리맄"

알람이 멈춘 소리가 귀를 때리듯 들렸다.

간호사가 개인 칸막이의 커텐을 젖히며 말했다.

"침 뽑겠습니다."

적외선 램프의 따스하고 붉은 열기 아래 잠시 몽롱하게 피우던 그의 공상은 알람소리에 그만 멈추고 말았다. 더불어 달마대사의 얼굴이 그 모양이 된 것은 순전히 찬데서 먹고 자고 하면서 몸 관리 안하다가 생긴 안면신경 마비일 거 떠올린 달마도도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간호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때로는 한손을 때로는 두손을 써가며 능숙하게 꽂혀 있던 침을 뽑아냈다. 오른 쪽 귀 옆에 놓인 금속제 그릇에는 가냘픈 침들이 하나 둘 냉정하게 떨어지면서 창창 거리는 소리를 울렸다. 그 소리는 메아리 없이 더욱 소용돌이 치곤 귓전에 크게 맴돌았다.

안면신경 마비, 그러니까 양학에서는 벨 마비라고 하고, 우리가 익히 아는 단어로는 구안괘사(구안와사)라 부르는 증세는, 몇가지 특이한 증세가 동반한다. 그 중 하나가 작은 소리 조차도 크게 울리는 것이다. 이 불편하고 남다른 소음공해 속에서 침을 다 뽑고 나서, 그는 얼굴을 조금 씰거려 보았다. 눈거풀을 움직일 신경이 마비되어 눈이 감기지 않는다. 해서 바람이 불어도 눈 흰자위가 시원하게 느껴질 뿐 방어를 못한다. 신경이 마비된 쪽은 얼굴을 당기는 힘이 없으니 축 쳐져 울상이 되고, 반대편은 여러 표정이 생기니 아무래도 종종 비웃는 듯한 괴상한 인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증상이 있던 초기에 얼굴과 함께 일부가 얼얼하게 마비되어 느낌이 예사롭지 않던 혀끝을 볼에 이리저리 찔러보았다. 여전히 약간의 이물감이 있긴 하지만 처음 발병한 이 주 전 토요일 보다는 확연히 차도가 있다. 정말 오랫만에 사다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든다.

만일 그가 첫날 그저 피곤해서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면, 한의원 원장의 말로는 치료기간이 3주는 더 걸릴거라 했다. 그러나 미리 다져진 그나마의 체력과 밤마다 핫팩을 이고 지고 자면서 꾸준히 약을 먹고 침을 맞은 결과 우려했던 것 보다 빠른 속도로 정상이 되어가고 있다. 우울하게 일그러진 반쪽 얼굴만큼 마음도 우울해지는 한주간이 지나, 이제 하루하루가 다르게 나아가는 얼굴이 제 마음 먹은대로 찡그려지자 그저 평소와 같아졌다는 것만으로도 기쁨이 넘친다. 그는 문득, 만일 달마대사가 증세를 깨닫자 마자 산 아래 한의원으로 갔다면 우리가 이야기하는 달마대사의 휘광은 그 면적이 조금 줄어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층 치료실에서 내려와 이주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어 얼굴이 익숙해진 직원과 가볍게 인사를 한다.

"잘 받으셨어요? 오늘 진료비 4천 4백원입니다."

의원 문을 열고 나오며 맞는 서늘한 봄바람도, 지난 주 보다는 덜 무섭다.
만우절 봄 바람이라서 그런가.







만우절 시리즈 -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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