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하루

by PolyMental

만우절이라 뭔가 그럴듯한 농담들이 뉴스피드에 뜨길 원했지만, 사는 세상이 거짓 투성이라 그런지 무릎을 탁 칠 만한 포스트를 종일 하나도 보지 못했다. 지금까지 겪었던 만우절 중에 최고의 경험은 십년 전 쯤에 있었다. 최고라 해야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하튼 경험의 수위로 따지면 내인생에서 가장 깊이 각인된 하루였다.




커뮤니티


당시에 나는 이런 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영화모임이 유독 재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기 모인 사람들이 대부분 영화를 비롯한 문화계 종사자들이어서 면면이 이채로운 특징이 있었다. 무명 시나리오 작가, 뮤지컬 극단 신입, 분장학원 학생, 영상장비 대여 업체 대표, 동화작가 등 다양했다.


직업도 직업이지만 어느날 술자리서 이야기 터지고 서로 확인해 보니 양성애자와 동성애자 비율도 상당했다. 세간의 정의와 상관없이 자기색이 뚜렷하고 상대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젊은 청춘들이 원래 반체제적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엄격한 잣대에 더 민감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기존질서라든가 꼰대라든가 기득권 같은 걸 농담의 재료로 올렸다. 나름 진보적이고 섹시한 좌파청년의 코스프레를 하기에 그만한 모임도 없었다. 모였다 하면 답답한 세상을 재료로 온갖 창의적이고 기발한 농담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어느 해였나 3월 초순 번개 술자리에서 유력 일간지 신춘문예 도전만 6번째인 무관의 소설가이자, 여기저기에 돈은 많으나 재능과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글을 대필해 주며 먹고 살던 바이섹슈얼 형 하나가 농담을 꺼냈다. 이름보단 무관이형으로 자주 불리던 그가 한달 뒤에 있을 만우절에 세상을 놀래켜 저녁 뉴스에 나오면 재미있겠다는 말을 툭 던졌다. 곧이어 언제나 그랬듯이 기름을 끼얹은 것 처럼 온갖 아이디어가 활활 타오르더니 헤어질 즈음엔 정말로 구체적인 동선과 역할까지 정해진 플래시몹이 탄생해 있었다.




플래시몹


우리는 만우절 정오에 광화문 사거리에서 레이저 총을 들고 외계생명체와 추격전을 벌이기로 했다. 당시만 해도 광화문은 지금 처럼 광장이 아니라 아주 넓은 아스팔트 도로였고 가운데엔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는 좁은 가로수 섬이 있었다. 식사를 하러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12시 10분에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시작하여 신호등이 바뀌면 건널목을 건너 그 가로수섬에 올라 코미디 같은 총격전을 벌여서 이목을 끈 다음 다시 반대편 블록으로 건너가서 동아일보 사옥 앞에 가서 레이저 난사 끝에 전원 사망하는 내용이었다.


나름 사회비판과 정치적인 은유를 끼얹어보고자 시놉시스에 등장하는 건물과 행위에 의미부여를 막 해 놓긴 했는데, 지금보면 그냥 웃기는 소리다. 코스프레 의상 제작에 일가견 있었던 여자애 하나가 의상대여와 수선을 맡았다. 분장학원생이던 아이는 원장님 도움까지 받으며 외계인 분장과 피주머니를 챙겼다. 한 형이 스턴트맨 팀 보조 였던 친구를 데려와 우리에게 총기 다루는 법이나 자빠지는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나는 수줍게 외계인 디자인과 총기를 비롯한 장구류 디자인을 했고 '추격자3'을 맡았다.이 모든 과정과 당일의 난장을 카메라 대여 사장이던 형이 찍어서 남기기로 했다. 신문기자를 친구로 두었던 모임 대표가 그날 사진기자까지 부르기로 했다. 들어가는 비용의 상당액과 가장 걸리적 거리고 힘든 분장의 외계인은 처음 제안했다는 이유로 무관이형이 담당했다.


시간이 아주 촉박 했기 때문에 그해 3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 야근을 마치고 분장 학원의 특수분장 작업실에 가보면 3.1운동 전야에 열악하게 전단지 인쇄하던 선조들 마냥 늘 바쁘고 분주한 멤버들이 있었다. 언뜻 보면 그냥 권총 비스무레하게 만들어진 작은 레이저총에서 그럴싸한 빛과 소리를 내는 도전이 며칠을 갔다. 의상을 만들던 애는 마지막 이삼일엔 거의 잠을 못 잘 지경이었다.


그 사이 출연 인원들은 주말마다 광화문에 가서 동선을 따라다니며 시간을 재고 현장에 맞도록 시나리오를 고쳤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되도록 눈에 뜨이지 않게 조심 조심 다녀야 했다. 대강 눈대중으로 어디어디를 뛰어다녀야 하는지, 서로의 간격을 어떻게 맞출지, 사람들이 놀라서 의외의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지, 마지막에 사라질 퇴로는 어떻게 현실화 할지 쉴새 없이 조잘 댔다.




세종 문화회관


몇번의 합을 맞추고 어느새 만우절 전날이 됐다. 농담으로 시작해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행사가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일부러 광화문 역에 내렸다. 시간이 시간인지라 인적이 드물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일단 올랐다. 왼쪽의 경복궁 앞에서부터 도로한복판의 가로수섬을 지나 오른편 끝의 동아일보 사옥까지 내일 있을 플래시몹의 동선을 주욱 흝었다.


그리고 늘 나라의 실속에 비해 쓰잘데기 없는 허세의 넓이라고 생각하던 세종문화회관의 너른 계단을 하나씩 세며 이미지 훈련 속에 걸어 내려왔다. 열여섯 걸음 이내에 인도에 착지해야 한다. 큼지막한 블록의 빌딩 그림자와 가로등 불빛을 번갈아 지나며 나는 마치 도시에 잠입한 테러리스트가 사전 점검을 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지금도 기억한다. 가로등과 가로등의 거리는 30미터, 외계인과 우리의 거리는 5미터 유지, 신호등의 주기는 1분 15초, 사거리 세군데 쓰레기통의 위치, 교통 카메라가 바라보는 범위등 하나하나 되새겼다.


다음날 11시부터 모인 멤버들은 세종문화회관 뒤쪽 공터에서 간단한 끼니를 채웠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의상을 갈아입었다. 날렵하고 각진 게 검은 색 바이크 레이서 복장 비슷했는데 조금 실망스럽게 과장된 장구류 파우치들과 기능 모를 합성수지 조각물이 덜렁덜렁 달려 있었다. 서로 멋적게 웃으며 다시 모였을 때는 12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외계인인 무관이형은 따로 도착해서 건물의 반대편에 숨어 전화통화로만 연락 했기에 완성된 분장 모습을 우리도 보지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고 사람들이 여기저기 건물에서 개미떼 처럼 흘러나왔다. 우리도 시계를 맞추고 한명씩 인파에 섞여 세종문화회관 앞으로 갔다. 내 차례가 되었다. 대로변으로 나갔는데 의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추격자 8이 도착했을 때 우리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정말 거짓말 처럼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적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암묵적인 리더였던 외계인 무관이형도 연락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일 줄 알았던 그 거대한 계단 중간에서 일행 모두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추격조


그 때, 도로변에 철망으로 창문을 모두 메운 회색 버스가 홀연히 오더니 섰다. 그리고 검은색 짚차 하나가 급하게 버스 꽁무니에 정차했다. 버스와 짚차에서 서너명의 검은 옷 입은 무리가 내려오더니 우리에게 뛰어왔다. 그 중 나이가 많아뵈는 아저씨가 물었다.


"니네 추격조지?"


이미 표정에서부터 그렇다고 말하는 얼굴이었지만 당황한 추격자 4는 "네?" 라는 말 밖에 하지 못했다. 우리가 어어? 하는 사이 그들은 다짜고짜 팔을 잡아끌었다. 우리 입에서 '누구세요'라는 말이 채 발아하기도 전에 답이 먼저 튀어나왔다.


"끝났어. 어서 가자."


그 사람들 어깨 너머로 버스에서 경찰인지 군인인지 모를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겁먹은 우리들이 잠시만요 잠시만요 다급하게 말하는 사이 어느새 검은 제복의 청년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계단 아래로 밀어냈다. 팔다리가 움직일 만한 여지를 주지않고 압박했다. 그렇게 강한 힘은 처음 겪었다. 몇명이 그 서슬에 굴렀다. 추격자1은 옷이 찢겼다. 그 와중에 이 소란과 좀 떨어진 곳에서 갈색 면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초로의 남자가 전화기에 대고 연신 "종료. 종료."라고 말하는 걸 똑똑히 들었다.


대로변에서 우르르 끌려갈 땐 나름대로 큰 소리 없이 점잖았지만 버스 안에서는 달랐다. 형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항의하다가 머리통과 명치를 몇대 맞고 조용해졌다. 여자애들은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도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해 주지 않았다. 이유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인간은 공포가 커진다. 머리를 숙인 채 할 수 있는 모든 생각을 다 해 봤다. 이사람들이 누군지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 군인은 아닌 것 같은데 경찰이라기엔 버스나 제복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너무 없었다.


추격자 8명을 제외한 다른 일행들도 걱정이 됐다. 특히 혼자 떨어져 있다가 연락이 끊긴 외계인 형이 가장 염려스러웠다. 온갖 안 좋은 상상들이 끊어지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우리더러 의자 사이로 고개를 숙이라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울음소리가 더 커졌다. 누군가 닥치라고 빽 소리를 지르자 차안엔 무서운 정적이 지배했다. 운동화 아저씨만 어딘가와 중얼중얼 통화를 할 뿐이었다.




질문 안됩니다.


버스가 좌회전 우회전을 두어번 했을 때 달리는 속도가 느려졌다. 창 밖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앞을 보니 그 검은 옷 사람들도 창밖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있길래 나도 고개를 살짝 들어 내다봤다. 웬 군중이 엄청나게 모여 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인파들 사이에 여기저기 깃대와 펄럭이는 깃발들이 나부꼈다. 내가 들었던 소란스러움은 그 사람들에게서 나는 함성소리였다. 아 여기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서 세종문화회관 앞이 한산한 거였나. 그런 생각을 할 때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고개 숙여!"


처음 가보는 시골 같은 곳에 버스가 섰다. 기본적인 옷가지를 제외한 모든 걸 뺏고서 내리라고 했다. 그 옷이란 것도 추격자 의상이라 황량한 논두렁과 메말라보이는 먼산을 배경으로 한 창고들 사이에 서 있기엔 너무 안 어울렸다. 옆을 보니 우리 버스 뒤에 다른 버스가 한 대 더 있었다. 준비를 맡고 건물 뒤에서 대기하던 우리 일행들이 내렸다. 우리 두 그룹을 한군데로 모았다. 가까이서 보니 모두들 눈물로 퉁퉁 부운 얼굴이었다. 그러나 외계인을 맡은 형이 없었다. 서로 작게 "무관이형 어딨어? 못봤어?"확인했지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그 쪽도 우리일행 속에 있을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4월의 찬바람이 뺨을 때리는 가운데 우릴 모아 일렬로 세웠다. 짚차 조수석에만 타고 내리는 중년 사내가 서류철을 보며 우리앞으로 왔다. 그리고 한명씩 이름을 불렀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이름을 부르자 한명씩 대답을 했다. 그 남자는 이름에 대답을 하면 전화번호와 주소를 묻고 확인 했다. 아 이게 뭐지? 말로만 듣던 정보부서 그런 건가? 우린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혼란스러웠다.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을 다 확인하자 운동화 아저씨가 가운데로 와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여러분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겁도 나고 화도 날 겁니다. 큰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 다 압니다. 좀 전에 보신 것 처럼 저희가 여러분 인적 사항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죄를 지은 건 아니지만 사회에 혼란을 가져다 줄 뻔 한 것을 저희가 미연에 방지한 겁니다. 불편하셨더라도 저희가 하는 일이 국가와 사회를 위하는 거라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양해 해 주기 바랍니다. 이제 집에 돌아가시고 오늘 일은 깨끗이 잊으시기 바랍니다. 일상으로 복귀 하시고 앞으로 이런 상황이 없도록 주의바랍니다."


이런 상황이란 대체 뭔가. 아니 그보다, 우리의 무엇이 문제였나. 일행 중 누군가가 용기를 내서 질문하려고 입을 들썩인 모양이었다. 운동화 아저씨 눈길이 가자 서류철 남자가 재빨리 "질문 안됩니다."라고 강한 어조로 낮게 말했다. 모두들 침묵했다. 버스가 우리를 남겨두고 떠났다. 버스가 떠나자 여자애들이 그제서야 풀썩 주저앉아 하늘이 무너지듯 마구 울어댔다.




행방


길을 따라 걸어서 잘 닦여진 대로를 만나고 도시 느낌의 건물들 앞에 이정표를 보고서야 그 곳이 김포의 폐공장지대라는 걸 알게 됐다. 우리는 서로 별 의미없는 말들과 질문을 반복하며 걸었고, 무관이형은 어떻게 된 거냐며 오들오들 떨었다. 지갑은 빼앗겼지만 다행히 돈과 카드는 돌려주었기 때문에 어느 허름한 국밥집에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무관이형이 걱정되는 가운데 우리들 사이에선 오늘 겪은 걸 어디에 알리면 안되겠다는 의견이 모여졌다. 운동화 아저씨가 협박조의 말은 없었지만 우리에 대해 낱낱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거 자체가 입다물고 살라는 뜻 아니겠냐고 나름 상식적인 결론을 내린 것이다.


원룸에 돌아 왔을 땐 자정이 다 되었다. 녹초의 뜻이 뭔지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웬지 무섭고 서글픈, 아주 야릇한 감정에 힘들어 하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회사에 지각했지만 평범한 척 행동했다. 하루종일 어제 광화문에 관한 기사 같은게 없나 인터넷을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직장 동료들과 야근 전에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을 때 마침 식당 주인이 티비채널을 저녁 뉴스에 맞췄다. 한두 꼭지가 지났을 때 나는 공기밥 뚜껑을 벗기던 손동작에서 멈추고 모니터를 뚫어지게 보았다. 여자앵커가 '어제 도심 한가운데서 모의총기로 무장한 정체 불명의 무리를 검거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는 소식을 단신처리로 읊었다. 뒤이어 '이들은 최근 고조되는 안보불감증과 관련해 첩보를 입수한 정부당국에 의해 현장에서 연행 되었으며 배후가 누구인지 조사 중'이라는 말을 덧 붙였다. 인상적인 것은 버스에 타는 우리들 모습이 멀리서 흐릿하게 찍힌 사진이었다. 그제서야 퍼뜩 우리를 찍기로 한 사진기자는 어떻게 됐을까 떠올랐다. 그이는 어딘가에 숨어 있었겠지만 그 사람들이 몰랐을 리 없었을 것이다.


다음날 낮에서야 무관이형과 멤버들이 연락이 될 수 있었다. 저녁에 몇명이 모였다. 너무 걱정된 나머지 그형을 붙들고 운 사람도 있었다. 그날 자기가 막 계단 쪽으로 가려고 나서는데 우리가 버스에 억지로 태워지고 있었단다. 그래서 겁을 먹고 서 있는데 웬 남자둘이 와서 자길 붙들고 후미진 곳에 있는 차에 강제로 태웠다는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우리와 같았다. 의정부 어디쯤엔가 내려줬다는데 이런 저런 걸 몇마디 물어보고는 머릴 한대 쥐어박고선 쓸데없는 짓 하지말고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화기도 압수되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단다.


이후 이삼일 정도 인터넷 기사에 우리 이야기가 떴다. 며칠 사이에 티비뉴스에선 종적을 감췄지만 어찌됐든 실패한 플래시몹임에도 정말 만우절 장난이 한번이라도 뉴스에 나오긴 나왔다는 사실이 우리로선 신기했다. 우리대신 여전히 조사를 받고 있다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신문 정치란에서 간간히 안보와 보수담론을 주제로 우리 이야기가 다루어졌다. 그리곤 이삼주 지나자 늘 그렇듯이 슬그머니 사라져갔다. 그 사이에 염려와 달리 우리에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한달쯤 뒤에 각자 한번씩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자마자 끊은 걸 제외하면 정말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무탈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모임은 심드렁해졌고, 무엇보다 무관이형이 그 때 너무 크게 충격을 받아서 두문불출 하자 술자리가 뚝 끊겼다. 그리고 다들 메신저로만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우리는 그 때의 일을 정말로 잊어버리기 시작했다.




무관이형


그렇게 지내던 몇년 뒤, 무관이형이 티비에 나오자 그 날의 멤버들끼리 채팅방에 모여 웬일이니를 연발했다. 그는 놀랍게도 어느 유력정치인의 보좌관이 되오있었다. 대략 일년 전쯤에 마지막으로 연락한 사람 말로는 이런저런 원고 초안이며 연설문 같은거 봐주다가 영입된 거 같다고 했다. 그런데 진짜 화제가 된 것은 따로 있었다.

술자리에서 침을 튀겨가며 반 수구성향과 지적인 진보청년임을 자처하던 사람이 보수정당 정치인을 보좌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몇년 사이에 어떻게 사람이 변할 수 있는지가 주제가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몇년 전 광화문 사건이 발단이 된 건 아니겠냐는 말이 나왔다. 합리적인 추론은 할 수 없지만 왠지 감정이 설득되는 이유였다. 그날의 채팅 이후로 다시 그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다. 다들 그냥 사는 게 바쁘니 용건이 없으면 할 이야기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연히 무관이형을 만난 건 그로부터 또다시 몇 년이 지나서였다. 강남에 있는 친구네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던 중이었다. 중간에 건물 밖에 있는 화장실에 가는데 어딘지 낯익은 실루엣이 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다. 상대도 동시에 느꼈는지 멈칫햇는데 서로 밝은 불빛에 비춰보니 무관이 형이었다.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는 길이었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서로 반갑게 웃으며 악수도 하고 끌어안기도 하며 번잡스럽게 인사를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부터 티비에서 형을 본 적 있다는 말도 전하고 그랬다.


지하의 바에 동료들과 놀러왔다고 했다. 그가 보좌하던 정치인이 대선에서 떨어졌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몇년전과 다른 선택을 한 이야기가 그 자리에서 나오는 게 싫었으므로 나는 그런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았다. 일단 화장실 가는 통로에 서서 긴이야기를 하기 뭣하니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명함을 교환했다. 언제 꼭 만나서 술한잔 하기로 말을 덧붙이며 웃으면서 돌아섰다.


그 때, 갑자기, 내 발을 멈췄다.

한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생각이 아주 가느다란 실 처럼 머리 속에서 연결 됐다. 나도 모르게 몸을 다시 돌려 그 형을 불러 세웠다. 난 그 날의 대화를, 우리 사이의 공기를 전부 기억한다.


"형. 무관이형!"


무관이 형이 비스듬한 조명 그림자에 몸을 반 걸치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돌아섰다.


"어? 왜?"


"형 그 때....그, 광화문에서 그 날요."


"응? 음...아!... 그 날? 우리 플래시몹 하던...?"


"응 그 날요. 그 때 막 등장하려다가 우리가 버스에 올라 타는 거 보고 섰다고 했잖아요."


무관이 형이 여전히 미소를 뛴 채 조금 다가왔다.


"응 그랬지. 그런데?"


"그, 그런데....우리가 그 계단에서 형한테 전화했었는데....? 그러니까 형이 우릴 보고나서 잡히기 전에 이미 형은 전화를 안 받았....."


아마 그의 눈에도 내 얼굴이 뭔가를 깨달은 표정이란 걸 느꼈으리라.


"어 그게 왜? 꺼진 거? 아마 내가 순서를 착각했거나 배터리가 다 됐었나 보지."


그는 여전히 침착한 표정으로 좀 더 다가왔다. 난 머리 속에서 경고음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그땐 형이 말하길 핸드폰을 압수당해서 걸 수 없었다고......거, 거짓말이죠?"


"음? 뭐가 거짓말? 핸드폰 꺼진 거 아니면 압수당한 거?"


이미 그의 얼굴에서 표정은 사라져 있었다.


"우리가 전화 했을 때 이미 형 연락 안됐어. 우린 전화기 꺼졌다고 말한 적 없는데...형 꺼둔 거에요? 일부러?"


"허허 아 얘가 참...오랫만에 만나서 무슨 소리야. 야 왜그래?"


그 몇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게 아니었다. 나의 무의식이 공포를 피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눌러 두었던 조각이 갑작스럽게 내 목구멍으로부터 튀어나왔다.


"우리가....우리 애들이 김포에서 풀려났을 때, 그 사람이 형 이름 안 불렀어. 그래! 그, 그냥 한명씩 호명 하고 대답 하는데 그 사람들은 우리 얼굴 몰랐다고! 사진도 없이 대조하느라 이름 부르고 주소 맞나 확인 한 거였단 말이야. 그럼 형 이름도 나왔어야지! 왜 거기에 형 이름이 없었죠? 어째서?"


흥분에서 다다다 쏟아냈다. 그가, 불과 20분전 까지만 해도 무관이형으로 알던 사람이 한발짝 더 다가왔다. 침이 꼴깍 삼켜졌다. 내 목젖이 움직이는 걸 눈치 챘을까.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번 더 물었다

.

"왜...왜? 왜 그랬어요?"


그가 씩 웃었다. 그리고 다시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의 윗입술이 뭔가 말하려는 것 처럼 움찔 하다가 말았다.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한박자 쉬고 말했다.


"이유 같은 게 어디있어."


내 어리둥절한 표정이 재미나다는 듯이 다시 한번 웃더니 그가 몸을 돌려 건물 밖을 향해 걸어갔다. 나는 발바닥이 땅에 붙은 채로 그의 뒤통수를 향해 소리치는 게 고작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형! 무슨 뜻이냐구!"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열고 나갔다. 난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끼면서 제자리에서 계속 소리질렀다.


"무관이형! 어디가! 대답하구 가! 야이 씨발노마! 개새끼야! 왜그랬어! 대답해! 대답하구 가 개새끼야!"


조명을 등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돌아봐도 내가 우는 걸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 건 이름 붙이자면 몇년간의 울음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나온 건데 오줌도 마렵고 오열은 서럽게 터지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만우절 시리즈 -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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