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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시간

흘러가는 속도

by San

# 자전거 속도


최근에 전기자전거를 한 대 샀다. 내 돈으로 산 첫 자전거라서 그런지 첫 차를 샀을 때보다 더 마음이 간다. 자동차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구입했지만, 이 자전거는 사기로 마음먹은 것부터 구입하기 까지의 모든 과정이 내 선택이라 그럴거다. 지금 근무지가 집과 가까운데 차로 출퇴근을 하자니, 1km 정도를 이동하려고 이 큰 기계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사실은 30분 정도 더 일찍 일어나서 걸어서 출근을 해도 되지만, 그건 또 자신이 없었다. 환경에 대한 약간의 죄책감과 좀 더 일찍 일어나서 걸어다니기는 싫은 나의 게으름. 그 사이에서 나는 자전거를 사기로 했던 것이다. 이로써 내 인생의 자전거는 총 다섯 대가 되었다. 첫 번째는 미취학 시절 탔던 세발 자전거, 두 번째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타던 보조바퀴가 달린 어린이용 네발 자전거, 세 번째는 5학년 때 엄마가 사 주신 18단 기어가 있던 두발 자전거, 네 번째가 일본 교환학생 시절에 없는 돈을 끌어 모아 샀던 중고 자전거, 그리고 마지막이 지금의 전기자전거이다. 나열하고 보니 각각의 자전거와 연결된 추억들이 새록새록하다.


두발 자전거를 산 지 며칠 만에 중학생들에게 도둑을 맞아 슬펐던 기억, 일본에서 자전거를 불법으로 주차를 해 둔 탓에 철거를 당했던 날의 마음. 일어 사전을 찾아가며 시청 직원과 통화를 할 때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10월의 한 주말, 자전거를 차에 싣고 엄마 근무지로 향했다. 강변을 따라 국토종주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있는 곳이라 느긋하게 자전거 타기에 딱이다. 햇빛은 쨍쨍했지만 시원한 가을 바람이 불었고 바람은 간간이 꽃향기도 실어왔다. 곳곳에 서 있는 단풍이 든 나무와 높고 푸른 하늘, 그리고 낙동강변 억새의 조합이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드문 드문 지나갔는데 반대편에서 오는 자전거를 마주치면 목례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한 차례 지나가고 나니 도로 위에는 한동안 나 밖에 없었다. 전기 자전거의 전원을 끄고 조금 더 천천히 페달을 밟았다. 나 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속도를 줄이고 보니 새로운 것들이 보였다. 날아다니는 나비와 새, 풀벌레, 물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이었다. 자전거 길 위로 시선을 돌리니 도로 한 중간에 멈춰서 있는 메뚜기, 사마귀들도 보였다. 그러고 보니 자전거 도로 위에 로드킬 당한 곤충들의 자국이 여기 저기 있었다. 빠르게 달릴 때 보이지 않던 생명들이 눈에 보이니 자연히 밟지 않으려고 바퀴를 이리 저리 피할 수밖에.


길 건너는 뱀







# 삶의 속도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달팽이, 재빠르게 사라지는 뱀, 이렇게 각자 타고난 저마다의 삶의 속도가 있다. 한 예로 회양목은 성장속도가 느린 대표적인 나무다. 놀랍게도 회양목의 직경이 약 25cm가 되려면 거의 600~700년이 걸린다! 성장속도가 빠른 플라타너스나 미류나무와 비교했을 때 놀랍도록 성장속도가 느리지만 회양목은 어떤 환경에서든 잘 자라고 목질이 치밀하고 무늬가 아름다워서 도장을 만들 때 사용된단다. 조경수로 많이 사용되는 나무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앞으로 회양목을 만나면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내고 있는 그 나무가 더 소중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인간에게 주어진 속도는 뭘까? 인간은 다른 동식물과는 달리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극복하는 특이하고도 특별한 존재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만들어 낸 인간의 속도는 물리적으로 그 변화의 폭이 엄청나다. 걸을 때는 시속 3~5km, 로켓을 타면 시속 3만km까지도 나온다. 게다가 문화적인 차원에서도 늘 정해진 기준 시간이 있다. 20대가 되면 너나할 것 없이 대학에 입학을 하고 졸업 후에는 취직, 결혼을 하는 식의 '평균적'인 루트 말이다. 8시까지는 출근을 해야 하고, 며칠까지는 업무 처리를 완료해야 한다는 등의 수많은 기준들이 하루와 일주일, 한달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기준에 맞추려고 자신의 속도보다 빠르게 가기가 쉽지 천천히 걷거나 잠시 멈추어 서 있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다.


삶의 속도가 빠를 때는 주변의 존재보다는 나의 상황에만 집중하기 마련이다. 자동차를 시속 100km로 몰면서 자꾸만 옆을 보면 위태로운 것과 같이, 길 위에 서 있는 풀벌레와 길가의 들꽃이 보이기는커녕 전방주시가 최우선인 것처럼. 이렇다 보니 어떤 때는 열심히 집중해서 잘 달렸던 나를 응원해 주고 싶기도 하면서도 또 어떤 때는 '그 때 조금 속도를 줄이고 주변을 한번쯤 돌아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 글을 쓰다가 친구 H와 삶의 속도가 0이 되는 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H는 대학에서의 한 수업을 떠올리며 ‘주변의 아름다움을 관찰하고 압도될 때가 비로소 삶의 속도가 0이 될 때’ 라고 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의 지하철 출입구를 빠져나와 예기치 못한 시점에 성가족성당을 마주했을 때, 어느 여름날 동이 틀 무렵 아무도 없는 불국사 경내를 내려다보았을 때, 언젠가 퇴근길에 차 안에서 석양을 바라보았던 순간이 그랬다. 이 압도의 순간에는 우주와 내가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최진석 교수는 그것을 ‘인간의 언어를 비롯한 모든 체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그 시간과 공간에 몰입할 때 속도는 0으로 멈추거나 또는 무한한 시간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나만의 삶의 속도를 체크하고 완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마음 속에 속도계가 하나 있었으면 한다. 자신만의 페이스를 지키며 성장하는 회양목처럼!


그날 자전거의 속도로 흘러간 시간은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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