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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에서 오는 불편함

내 생각이, 내 말이 맞잖아?

by San

최근 직장에서 나를 내적 고민에 빠트린 일이 하나 있었다. 이 경험은 몇 해 전 연수에서 강사 분이 한 말을 떠올리게 했다.



“사람이 다른 건 다 참아도 생각이 다르면 참, 견디기 어려워요.”



오랫동안 인권을 연구하고 활동해 온 분의 말이라 농담 삼아하는 말 한마디에 왠지 모를 진정성이 느껴져서 더 기억에 남았다. 사실 초등학교 교사는 비교적 자율성이 확보되는 직업이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육이야말로 사람의, 사람을 위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이 아닌가. 학생, 동료 교사, 보호자, 학교 관리자 등. 그중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와 협업을 해야 할 때, 내면의 강력한 자기중심적 사고가 드러난다. 평소에는 상대의 입장을 생각할 줄 아는 꽤나 이성적인 사람이라 해도 경계에 부딪히는 그 순간 '나'는 어딘가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이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다름을 현명하게 다루지 못해 생긴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개인적 해외 경험과 교실에서 만나게 되는 각양각색의 아이들이라는 요인이 합쳐져 다문화이해교육에 대한 관심이 시작되었다. 연수를 듣고, 개인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 가치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학생들과 효과적으로 나눌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결과로 나온 수업 사례를 들고 여기저기에 강의도 다녔었다. 그렇다 보니, 누구든 그렇겠지만 나는 특히 '공격적인 나'를 만날 때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럽다. '나도 크게 다르지도 않은데 학생들이나 선생님들 앞에서 떠들고 다닐 자격이 있었나?'라는 생각이 드니까. 물론 이론이 실천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이런 생각이 달가울 리는 없다. 그럼에도 딱히 숨기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당시에 이어진 생각과 느낌을 있는 대로 한번 쭉 나열해 보려고 한다.



'내 생각이 더 맞고 이 방향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닌가?'

'누가 내 말이 맞다고 했으면 좋겠다.'

'사람이 좀 부정적이네.'

'좋든 싫든 어차피 할 거면 좀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거 아냐?'


다른 사람을 통해 확인받고 공감받으려고 하는 마음. 나를 보호하고 옹호하기 위한 방향으로 자꾸만 마음이 향했다.



사실 원래의 문제는 단순했다. 수업과 직업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가치를 두는 지점이 달라서였다. 하지만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자기중심적 생각들은 부정적 감정을 확대시켰고, 결국엔 한마디로 하면 거의 '난 니가 싫다.'가 되어버리는 것! 이 유치함을 포장하려고 나는(사람들은) 이성적으로 납득할만한 이유를 붙이고 붙이고 또 붙일지도 모른다.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기보다는 내가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려는 나를 마주하고서야 나는 이 생각의 고리를 끊어 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급할 건 없으니 좀 더 여유를 갖고 상황을 대해 보기로.


내가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는 주체가 되는 것은 의외로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나 순식간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버리는 한 생각 한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 결국엔 '선량한(하고 싶은) 차별주의자'를 만드는 건 아닐까? 언어나 문화적 차이로 서로에 대한 정보가 충분치 않거나 사회적 지위가 비대칭적인 경우에는 더욱더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인간관계에서 "내가 저 사람에게 더 잘해주는 것 같아."라고 느끼는 사람이 실제로 상대를 배려하는 비율은 51%라고 한다. 그럼, 상대는? 49%. 결국 밖에서 보면 큰 차이가 아닌데 '나'를 중심에 두다 보니 "내가 99%를 해주는데 왜 쟤는 1%만 하는 거야?"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는 말이다.


시일이 꽤 지난 이 시점에서, 나를 고민에 빠뜨린 상대에게 소소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글을 마무리해 본다. 이 불편함이 좁은 내 마음의 경계가 조금은 깎여져 나간 과정이었기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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