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드디어 월요일이다. 중등부 출근 첫날이다. 더불어 내 인생의 또 다른 3막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니 3막은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5장 언저리 정도 되겠다. 오전 12시 30분까지 출근이어서 열 시가 넘도록 늘어지게 잤다. 하지만 악몽에 시달렸다. 그리고 눈을 뜸과 동시에 걱정이 앞섰다. 오늘 중등부에서는 어떤 상황들이 펼쳐질까? 법인에 들러서 구청에 제출할 수진동 운영비 정산을 마무리하고 오후 세시쯤 중등부에 도착했다.
K선생님이 나를 맞았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근무란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긴 휴가를 가질 예정이란다. 지금 나도 휴가가 절실하다. 푸른 학교에 와서 4년이 지나는 동안 휴가를 써 본 적이 없다. 아! 에프치 킴, 너 인간적으로 너무 성실한 거 아냐? 그런데 이번 주 금요일까지라고. 이건 아니다. 나는 분명 이번 달 말까지로 알고 있었는데. 하지만 이미 절반쯤 그로기 상태인 선생님은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을 설명해 주고 서류뭉치들이며 자주 쓰는 물품이 있는 곳을 알려줬다.
여기가 내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청소 도구함부터 신발장, 책꽂이 그리고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개인 사물함까지.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일단 중등부는 식판부터 칠판 등등 초등부에 비해서 뭐든지 컸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자 학교 수업을 끝낸 녀석들이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누구세요?"
이미 이야기를 들었을 테지만, 어디선가 한 두 번은 만났을 테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너희들은 나에게 너무나 낯선 존재와 존재들이었다. 중등부는 5시 30분에 저녁을 먹고 6시 10분에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 시작 후 십분, 십오 분, 삼십 분이 지났다. 이건 무슨 분위기? 어라! 쉬는 시간과 공부시간의 구분이 없다. 수업 중 휴대폰 사용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손을 내밀어 달라고 해도 반항기 가득한 두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다시 눈을 아래로 내리깔더니 엄지와 검지를 교차 편집해 가며 버튼을 두드린다. 녀석들은 수업 시간 내내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아직은 이곳에서 존재감이 없는 나! 민망하다. 하기야. 첫날부터 녀석들에게 존재감을 인식시키는 것은 나의 욕심 일터. 상황은 역시 불안하게 예상된 과녁으로 날아가 파지직 제대로 꽂혔다.
초등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상황들이 이곳에선 자연스럽게 벌어졌다. 사무실 겸 교무실은 녀석들의 놀이 공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거렸다! 교무실에 한 대뿐인 전화기는 녀석들의 휴대폰이 없을 때 언제라도 쓸 수 있는 개인 사유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교무실에 들어오는 것과 전화기 사용은 오히려 선생인 내가 녀석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분위기랄까.
8시다. 마침내 중등부에서의 첫날 수업이 끝났다. 종례와 더불어 녀석들과 첫인사를 하는 순서다. 녀석들 앞에서 감겨들어가는 소리로 뭐라 뭐라 하는데 뉘 집 담장의 개가 풍월을 읊으러 왔냐는 듯 저 심드렁하고 무심한 표정들 끝내준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는 욕망에 가득한 눈빛들이 날카롭다.
-1학년.
아직 초등학생티를 벗지 못한 듯 귀염성과 어리광이 엿보인다. 하지만 몇몇은 시니컬한 눈빛이다.
-2학년.
남학생 절대다수다. 이곳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무리인 듯 보인다. 저놈들만 잡으면 이곳을 접수(?)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다. 특이한 점은 여학생은 오로지 한 명이라는 것. 한 명이지만 일대 다!로 상대해도 절대로 지지 않을 것 같은 포스와 절대적인 아우라를 풍긴다.
-3학년.
1, 2학년과는 달리. 제법 듬직한 분위기를 풍긴다. 턱 주변엔 거뭇거뭇한 턱수염이 솟아나고 있다. 능글맞은 눈매와 그에 준하는 웃음들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안면이 있던 여학생들은 제법 아가씨 같다.
-청소.
1 쓸닦. 거쓸. 2 쓸닦. 3 쓸닦. 듣보잡 같은 외계어들이 난무한다. 음냐 음냐 이건 또 뭐지? 혜진 선생님에게 물었다. 1 쓸 닦은 1학년 쓸고 닦기. 거쓸은 거실 쓸기. 뭐! 대충 이런 뜻이란다. 자식들, 이쁜 우리나라 말을 꼭 그렇게 줄여서 써야 하나!
-느낌과 각오
이곳은 뭐랄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랄까? 잘만 다듬으면 멋진 보석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보려 하지만, 글쎄. 그것은 저 높이 계신 신께서도 고민거리일 것 같다. 그래서 H샘을 보냈고 이번엔 나를 보내셨나? 맹세컨대 혼자서는 어림없다! 요즘 상황을 보건대 전지는 하나 왠지 전능은 하지 못하시는 것 같은 신이시여 부디 이 역경을 함께 헤쳐나갈 아리따운 처자 한 명만 튼튼한 동아줄 아래로 보내소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센 놈들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희들보다 더 센 놈이 될 테다! 그래야 여기서 살아남는다. 녀석들과 사부르 사부르 무를 썰던지 배추 포기를 세던지 해야 할 것 같다. 소시지 프랑크 같은 중등부 꼬랑꼬치 녀석들과 옥신각신 엮어나갈 이야기가 나를 두렵게 하면서도 흥분하게 만든다.
2009년 7월 11일
"김인철 선생님이시죠?"
"네."
"외갓집 마을인데요. 내일 캠프 예정대로 오시는 거죠?"
양평 신론리에 있는 외갓집 체험 마을이었다. 실장이라는 사람이었는데 내일 진행될 캠프 때문에 전화를 했단다. 이번 여름캠프는 성남동, 수진동, 그리고 중등부인 신흥동이 함께 캠프를 진행하기로 했다. 사실, 중등부는 캠프를 별도로 진행해야 했다. 하지만 전임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휴가를 낸 상태였고 나는 신흥동으로 오고 이 주일째다. 따로 캠프를 준비할 시간도 여력도 없었다. 무엇보다 경비 마련이 급선무였다. 그렇다고 캠프를 안 할 수는 없기에 초등부와 캠프를 같이 가기로 했던 것이다. 실장이라는 사람에게 캠프에 참가할 인원과 숙박 상황, 그리고 진행될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그렇게 일정을 확인하고 한창 오케스트라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따르르릉.
"신흥동입니다."
"여기 외갓집 체험마을인데요 김인철 선생님 계신가요?"
아까와는 달리 이번엔 묵직한 사내의 음성이 들렸다.
"네! 전데요."
"내일 캠프 때문에 확인 전화했습니다."
"방금 전에 실장이라는 분과 통화했는데요?"
"네? 누구랑 통화하셨다고요? 저희는 처음 하는 건데요?"
"아까 분명히 실장이라는 여자분과."
"처음 하는 거예요."
어라? 뭔가 이상했다.
"거기 양평 외갓집 체험 마을 아닌가요?"
"맞는데요?"
"신론리 아닌가요?"
"맞아요."
"아까 분명히 확인 전화를 하셨다니까요."
"무슨 소리예요. 저희는 처음 한다니까요."
혹시.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맘으로 물었다.
"체험 마을이 거기... 말고 또 있나요?"
"그럼요. 저희 말고도 두 곳이 더 있어요."
"........"
아뿔싸! 중복 예약이었다. 예전에 갔던 곳이라 답사를 가지 않은 게 문제였다. 그 사이에 체험 마을이 더 생겨 버렸던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졌다. 교무실 밖에서는 오케스트라 수업이 한창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 순간부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내의 채근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말을 하고 나서 그 실장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을 했다. 실장이라는 사람은 이야기를 듣고 나더니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않겠냐며 이왕 이렇게 된 거 서비스 잘해 줄 테니 그쪽을 취소하고 우리 쪽으로 오란다. 그러면서 자기네가 원조고 그쪽은 우리네 상호 훔쳐다가 쓰는 불법이라고 대놓고 비난을 해댔다. 그러니까 정리를 해보자면 성남동 선생님이 예약을 한 곳과 내가 예약을 한 곳이 달랐던 것이다. 하긴 조금 이상하긴 했다. 숙소와 프로그램 때문에 전화를 할 때마다 받는 사람이 매번 달랐었다.
"캠프를 하루 앞두고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가 있지? 우와 미치고 팔짝 뛰겠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 봐도 뾰족한 수가 나지 않았다. 하얘진 머릿속은 마치 구정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탁하고 멍했다. 급기야 정수리에서는 검은 연기 같은 것이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가고 싶지 않다는 녀석들과 부모님을 일일이 상담하며 겨우 설득해 놓았는데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만 나왔다. 고민 끝에 성남동 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선생님도 당황한 듯 음성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해! 빨리 한쪽을 취소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눠서 가든지 결정을 봐야죠."
하지만 실장이라는 사람은 막무가내요 요지부동이었다. 날짜를 확인해 가며, 사람을 바꿔가면서까지 자기네 쪽으로 와야 된다고 했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면 예약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헷갈릴 수밖에 없지 않냐고 따져 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위약금 이야기까지 꺼냈다. 잘못하다간 캠프를 하루 남겨두고 못 갈 수도 있었다. 다시 성남동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아직 결론 못 내렸어. 내가 전화해 볼까?"
선생님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내가 답답한 듯 자기가 직접 전화를 해보겠단다. 유하면서도 강할 때는 강한 선생님이셨다. 남자로서 면이 서지는 않지만 계속 질질 끌며 해결할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공을 넘기는 편이 좋을 듯싶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한 시 간이 한 달 같았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선생님 나한테 밥 사줘야 돼! 그 사람들이랑 싸울 뻔했어. 다행히 다른 쪽에서 취소해 주기로 했어. 욕 좀 먹었지만."
천만다행이었다. 여자의 말 빨은 남자의 자존심보다 세다는 사실을 이렇게 실감 하나. 캠프를 하루 남겨두고서 진을 다 빼버린 느낌이었다. 두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오갔다. 이렇게 신고식을 치르는 건가. 중등부 아이들과는 아직 많이 낯설고 불편하다. 선생인 나부터가 그런데 그 선생에게 익숙해져 할 아이들은 오죽할까! 힘들게 준비한 캠프를 통해서 뭔가 하나를 건지길 바란다면 그런 아이들과의 낯섦이 조금은 익숙함으로 돌아서는 것일 것이다. 아니 선생님도 아이들도 그래야 한다. 부디 이번 여름 캠프는 우리들 서로의 빈칸에 채워 넣을 추억과 이야깃거리를 가득 만들어 오기를 그리고 그것은 서로에게 완전 빙고! 완전 빙고가 되기를 빈다.
2009년 7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