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힘들 때 도망치지 마라
어쩌다 사회복지사가 되었나요?
가장 힘들 때 도망치지 마라.
홍역 같은 한주가 지났다. 요 근래 들어서 가장 정신없고 힘들었던 시기였다. 일주일 전에 그만두겠다고 하셨던 P선생님은 초등부로 가셨다. 아아~ 그렇지 않아도 평가제로 내 온몸의 세포는 바짝 경직되어 있는데. 나도 P 선생님처럼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도대체 이곳에 있어야 할 이유를 하나도 못 찾겠다. 도망치고 싶다. 도망치고 싶다. 부득불 숲으로 들로, 바다로 강으로. 지금 이 순간 나를 지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없는 곳으로 흙처럼 바람처럼 사라져 버리고 싶다. 하지만 힘들다고 도망쳐 버리면 결국 나는 비겁자다. 스스로에게 비겁자가 되는 것, 내 안에서 솟구치려는 비겁함이 더 두렵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도망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있어서 후회는 단 한 번으로 족하다. 가장 힘들 때 도망치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라. 그것이 너의 자존심이고 또한 진정 너다운 모습이다. 나약해지려는 시간은 네가 그것에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찾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러니 기대조차 하지 마라. 얼마 전부터 여학생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P 선생님도 떠나기 전 그것이 가장 염려된다고 했다. 어떻게든 갈등을 풀어보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급기야는 녀석들이 친구와 사촌오빠를 불렀다.
"너희들 싸움이 부모 싸움될 수도 있어!"
타이르고 타일렀다. 하지만 학년을 넘어 그동안 쌓였던 녀석들의 갈등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결국 녀석들은 지난 금요일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피해자와 가해자는 나랑은 상관이 없다. 푸른 학교 와도 상관이 없다.
피해자는 병원에 누워있고 가해자는 경찰서에 드러누웠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사소한 일들까지 터져 나왔다. 그동안 쌓여있던 갈등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내가 없던 곳에서 내가 모르던 사건들이 또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올지 몰랐다. 오후 세시가 넘으면 부모에게서 전화가 빗발친다. 출근하기가 두렵다.
출근 전 병원에 들렀더니 주치의는 요즘 스트레스를 많이 받느냐고 물었다. 운동도 안 하는 것 같다고.
"선생님, 왜 우리 아이가 맞은 거죠?"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안 되겠어요. 오늘부터 그만 보낼래요."
내 연약한 심장은 유리처럼 차르르 부서진다. 입안이 바짝 마르고 혓바닥은 쩍쩍 갈라진다. 들리는 바로는 부모들끼리 맞고소가 들어간 상태다. 문 밖에 선 사람들은 그 문의 손잡이가 너무 차가운 걸까? 일어나지 못한 채 문도 열지 못한다. 차라리 잘 되었다. 이참에 새롭게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어차피 선생님이 바뀌고 나면 항상 그만두는 아이들은 있으니까.
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렇게 그만두는 아이들은 또 어떻게 될까? 상처 받고 떠나간 한 아이의 이름이 나의 연약한 아킬레스건에 아프도록 새겨진다. 두 달 가까이 마음을 짓누르던 평가제는 끝났다. 결과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서로 다른 장소에서 드러누운 저 차가운 문 밖의 사람들은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2009년 9월 12일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다.
내일 모처럼 극장에서 영화를 볼 생각에 아이들은 제법 들떠 있는 듯 보인다.
"정승필 실종사건"
게시판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보더니 재미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도 얼굴은 호기심 가득이다. 3학년 2교시 수업 시작 직전에 다툼이 있었다. p가 s의 말들 듣더니 갑자기 정색을 하며 책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p는 s의 놀림이 기분이 나빴단다.
선생인 내 앞에서 자기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마구 분출하는 p에게 나도 화가 났다. s는 s대로 지난번에 p가 자기 부모님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었던 일로 화가 났었단다. 수업 시작 전부터 두 녀석이 말랑말랑하니 초를 쳤다. 아닌 날도 있지만 월요일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s와 p는 수업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도 나와, 다툰 s와 p의 눈치를 보며 계속 어정쩡했다.
종례 후 s와 p를 불러 상담을 했다. s는 눈물을 흘렸다. p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나는 숨이 막혔다. y와 h와의 일도 나왔다. 20일 전이었다. 발단은 다른 이름으로 보낸 문자로 인해 생긴 아이들 간의 갈등, 오해였다. y와 h는 항상 모든 사건과 관련이 있었다. s는 상담 내내 계속 눈물을 흘렸다.
그녀와 가장 친한 h로 인해서. 아니, 상황이 그럴 뿐 누구의 탓이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상황을 정리하는 것은 늘 나의 몫이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힘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가진 무엇 중 하나를 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남에게 칭찬 한마디에 인색할까?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힘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남이 가진 무엇 중 하나를 가져오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왜 남을 비난하고 헐뜯을까?
축복이 필요한 시기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겠지만 찬바람이 부는 이맘때쯤은 이름 불러주는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한마디가 필요하다. 근데 내일 볼 '정승필 실종사건' 재밌어야 할 텐데.